출판도시 속 '책갈피' 파주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BeMyGuesthouse-13]-경기 파주출판도시 지지향
◆문화도시가 된 국가산업단지
독서의 계절을 맞아 지난 주말 경기도 파주출판도시를 찾았다. 문화 이미지가 강한 이 도시는 실은 국가산업단지다. 우리나라 출판인들은 이미 1989년에 출판도시 기본구상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1998년 파주출판도시 착공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출판인들은 국가산업단지라는 건조함을 탈피한 '인간성 회복을 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출판산업 데이터를 적용한 도시계획을 세우고 건축계 거장인 민현식, 승효상 씨를 건축코디네이터로 기용했다.

◆종이예술의 고향, '지지향'
지지향이라는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종이예술의 고향(紙藝之鄕·지예지향), 다시 말해 종이로 만든 예술품인 책이 태어나는 파주출판도시를 상징한다. 파주출판도시가 출판인들이 기획한 한 권의 거대한 책이라면, 지지향은 독자(방문객)들이 쉬어 갈 책갈피라 할 만하다.
이 숙소는 지혜의숲과 함께 복합문화시설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이하 아시아출판센터)' 안에 들어서 있다. 아시아출판센터는 지하 1층~지상 5층, 3개동, 연면적 7만㎡ 규모다. 이 건물은 독특한 공간구성 등을 높게 평가받아 2004년 제14회 김수근건축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정식 숙박료는 트윈룸 12만~13만원(부가가치세 별도, 이하 동일), 3인실인 한실과 트리플룸은 각각 13만~14만원, 14만원이다. 물론 여행사나 인터넷소셜마켓 등을 통하면 조금 더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다.
조식은 일요일 아침에만 제공되는데, 날짜를 맞춰 간 덕분에 레스토랑 '다이닝노을'에서 호텔식 뷔페로 먹을 수 있었다. 식단 자체는 평범한 아메리칸 블랙퍼스트지만 갈대샛강이 보이는 전망은 훌륭했다.
◆지혜의숲, "숲을 거닐 듯 책 고르세요"
대형 서가 지혜의숲은 총 100만권 소장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는데 현재 15만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외 부속시설인 정보도서관에 5만권가량 더 비치돼 있다고 한다.
지혜의숲은 1~3관으로 구성되는데 관마다 운영방식이 다르다. 1관은 학자, 지식인, 전문가들이 기증한 도서가 기증자별로 소장돼 있고 운영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로 가장 짧다. 2관은 출판사별 기증도서가 비치돼 있고, 오전 10시~오후 8시에 개방된다. 3관은 출판사·유통사 도서코너로 여러 분야 도서와 외서가 24시간 일반에 개방된다.

가령 비치된 PC에 '베를린이여 안녕'이라는 책을 검색하면, '한승옥-지혜의숲1'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1관의 한승옥 기증자 코너에 이 책이 있다는 말이다. '한승옥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국문학'으로 표기된 빨간색 명판을 찾으면 천장까지 이어진 책장에 가득 놓여진 수천 권 책이 눈에 들어온다. 이 수천 권 중 한 권이 찾는 책이라는 것만 알 뿐, 이 책을 찾을 다른 실마리는 없다. 지혜의숲 관계자는 "지혜의숲은 책을 보존한다는 소장 목적이 강하다"면서 "1관의 경우 기증자 배열도 가나다 순이 아닌 기증을 먼저 한 순서로 코너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선 그야말로 숲을 거닐듯, 서가를 쭉 돌아보면서 읽을 책을 정하는 게 현실적이다. 이곳에서 만난 숙박객 조 모씨(43)는 "특정한 책을 보겠다고 정하고 온 건 아니고 좋아하는 장르 중에서 둘러보다 보이는 책을 골랐다"면서 "책을 고르는 데 20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의 북카페들
파주출판도시에서는 열림원 헤세, 효형출판사 눈, 김영사 행복한마음, 길벗어린이 책소풍, 양서원 라플로르 등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북카페가 많다. 여행 당시 실제 방문한 북카페는 3곳이다.
열림원이 운영하는 '헤세 커피'는 아시아출판센터 바로 건너편에 있는데 언덕처럼 조성된 정원이 일품이다. 이 정원을 오르니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를 비롯한 파주출판도시 전망을 볼 수 있는 야외 테라스 공간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야외 테이블 2곳가량을 제외한 내부 공간은 전망이나 인테리어 면에서 평범한 편이다.

효형출판사 건물 1층에 있는 북카페 '눈'은 외부 테이블 공간도 많고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한 편이다. 효형출판사 건물 2층은 서점, 3층 출판사, 4층은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북카페에서는 자사 도서를 정가에서 1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도시건축전문가가 보는 파주출판도시
여행 마지막 일정에 북카페 눈에서 '메트로폴리스 파리, 메트로폴리스 서울'이란 책을 샀다. 대도시 파리와 서울을 집, 서점, 카페, 공원, 백화점, 영화관 등 6가지 항목으로 비교한 책이다. "파리에는 왜 서점이 약국보다 많을까, 서울의 대형 서점은 왜 대부분 지하에 있을까" "파리의 카페는 왜 마음대로 거리를 차지할까, 서울의 카페는 왜 커피를 비싸게 팔까" 등 흥미로운 내용들을 역사와 통계, 도시정책 등으로 풀어냈다.
파주출판도시를 이 책이 제시한 6가지 키워드로 분석하면 어떨까? 이런 호기심이 생겨 저자 최민아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에 인터뷰를 청했다. 그는 파리8대학교 건축학 박사학위와 국립 파리 파빌레트 고등건축학교 정부공인건축사 학위를 취득하고, 파리와 서울에서 다양한 도시·건축 설계를 진행한 도시 전문가다.

카페에 대해서는 "거대한 서가인 지혜의숲이 책이 주는 경건한 느낌을 전달하는가 하면 가구점이나 서점 등과 연계된 카페도 많아 책의 도시와 걸맞다"고 말했다. 그는 "공원 분야의 경우, 철새가 찾는 한강과 내륙의 실개천, 저류지 등 파주의 수공간을 잘 살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원처럼 조성됐다"고 덧붙였다.
백화점, 영화관 등 상업시설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최 박사는 "사업 초기 만들어진 '이채쇼핑몰'이 나중에 개장한 롯데프리미엄아울렛에 의해 중심상업지 역할을 빼앗겼다"면서도 "대신 지금은 이채쇼핑몰 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밤 시간에 도시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아시아출판센터 내 명필름아트센터는 이 도시만의 문화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인의 고민과 꿈
사실 파주출판도시 설립 배경에는 출판인들 공동체 구성이라는 이상과 함께 현실적 이유도 자리잡고 있다. 서울의 출판·인쇄 중심지인 을지로, 충무로 일대 지가가 1990년대 크게 오르면서 당시 출판업자들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던 것.
이런 연유에서 파주출판도시에 대한 우려도 일각에선 나오고 있다.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출판인들이 서울에서 떨어져 지내다 보면 이들이 발행하는 책들도 현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지 않겠냐는 것. 비슷한 예로 얼마 전부터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대해 "정부 부처들의 세종시 이전 이후 중앙공무원들의 외부 접촉이 줄었고, 이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나오고 있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파주출판도시의 한 출판인은 "출판 작업은 출판사 개별 작업이라 여러 출판사들을 한곳에 모아 놓는다고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는다"면서 "출판사 직원들이 작가들과 미팅을 하기 위해 매번 서울로 나와야 하는 고충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9월 15~17일 파주출판도시 일대에서 '파주북소리2017' 축제가 개최된다. 이 축제에서는 김훈, 방현석, 정이현, 천명관, 김연수 등 소설가들의 '독(讀)무대 낭독공연'과 황석영 소설가, 정호승 시인 등 10여 명의 문인이 참여하는 '작가와의 만남' 코너 등 작가들과 직접 호흡할 기회가 마련된다. 건축문화제, 입주사들의 강연, 재즈OST 콘서트 증 다채로운 행사도 펼쳐질 예정이다.
[이윤식 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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