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의 UFC Express] 퍼거슨의 주짓수, 이제 맥그리거를 겨냥한다

조회 02017. 10. 11.

지난 주말 개최된 UFC 216의 메인이벤트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전에서 토니 퍼거슨이 승리를 거두며 벨트를 허리에 둘렀습니다. 이로서 퍼거슨은 10연승을 기록한 동시에 라이트급 챔피언 코너 맥그리거와 맞붙을 권한을 거머쥐게 되었네요. 이번 칼럼에서는 퍼거슨의 승리를 되짚어보며 향후 맥그리거와의 매치업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번 대회가 PPV 판매나 입장 수익 등 흥행에서 얼마나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라스베가스 총기 난사 참사 때문에 대회 취소 루머도 공공연히 돌았던 데다, 메인 이벤터였던 토니 퍼거슨이나 케빈 리, 코메인 이벤터였던 플라이급 챔피언 드미트리우스 존슨 모두 코너 맥그리거 같은 PPV 판매왕과는 거리가 멀기에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를 웃음 짓게 할 숫자가 나왔을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이번 대회는 명장면의 연속이었고 특히 퍼거슨과 리의 잠정 타이틀전은 라이트급 선수들의 레벨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걸 보여주었던 명승부였습니다.


경기 초반 우선 돋보였던 건 케빈 리의 어마어마한 그래플링 실력이었습니다. 변칙적인 주짓수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퍼거슨이 마운트 포지션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는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리어 네이키드 초크의 달인 마이클 키에사를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잡아낸 바 있는 리의 그래플링은 ‘진짜배기’였습니다.

마운트 포지션에서 깔려 고전하던 퍼거슨의 모습

하지만 소나기를 견뎌낸 퍼거슨이 우월한 체력과 자신감 있는 타격을 앞세워 리를 계속 압박하자 경기의 흐름은 서서히 바뀌어 갔고, 결국 3라운드에 퍼거슨이 트라이앵글 초크로 탭을 받아내며 경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 퍼거슨의 주된 승리 요인으로 살펴볼 부분은 그의 뛰어난 주짓수(그래플링) 실력입니다. 비록 UFC 선수는 아니지만 재야의 최강자 및 톱 그래플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벤 아스크렌이 경기 후 SNS에서 “2017년에 누가 가드에서 탭을 치냐?”며 케빈 리의 패배를 비판했는데, 아스크렌의 논지대로 요즘 정상급 종합격투가들의 경기에서는 하위 포지션에 있는 선수가 서브미션 기술을 성공시킨다는 게 극히 어렵긴 하지만, 이번 패배로 케빈 리의 그래플링 실력을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얘기한대로 이번 경기 1라운드에서 리가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라이트급의 톱 그래플러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했으니까요. 퍼거슨의 그래플링이 특이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게 더 옳은 설명일 겁니다.


퍼거슨의 주짓수 스승은 에디 브라보입니다. 에디 브라보는 ‘텐스 플래닛 주짓수’라는 유파의 수장으로 유명한데 UFC 선수들 중에선 토니 퍼거슨이나 앨런 조반, 켈빈 게스틀럼 등이 직속 제자로 잘 알려져 있고, UFC 현지 해설가 조 로건도 브라보에게 블랙벨트를 받았습니다. 도복을 입지 않는 노기 주짓수만 수련하는 점이나 트위스터, 러버가드 등의 특이한 기술들로 유명한데, 사실 전통 주짓수 유파들은 대부분 굉장히 싫어합니다. 무협지를 읽다 보면 정파와 사파가 나오곤 하는데 주짓수계에서 대표적인 사파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보시면 정확할 겁니다.

에디 브라보의 모습

텐스 플래닛 주짓수는 기본적으로 포인트 위주의 스포츠 주짓수를 지양하고 확실한 서브미션을 선호하는데, 많은 기술들이 도복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파운딩 등 타격이 날아오는 상황을 전제로 고안되어 종합격투기에 굉장히 잘 맞습니다. 퍼거슨이 이날 1라운드에 사용했던 러버가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러버가드는 주짓수 매치에서 포인트를 따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라 종합격투기나 실전에서 등을 대고 누운 사람이 위쪽에서 레슬러들처럼 묵직한 압박을 가하며 파운딩을 날리는 사람을 확실히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입니다. 기존 전통 주짓수 가드의 고민은 양 다리로 상대 허리를 감아 잠근 클로즈드 가드는 상대를 잡아놓을 수는 있지만 암바나 트라이앵글 초크 등 서브미션 기술을 걸기가 어렵고, 다리를 푼 오픈 가드는 여러 기술의 활용이 가능하지만 상대가 일어나서 가드 바깥으로 나가 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러버가드는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하위 포지션에서 팔다리를 활용해 상대의 상체를 확실히 제압해 놓은 상황에서 서브미션 기술을 노린다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획기적인 가드입니다. 단 골반 및 다리 유연성이 없다면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죠.

에디 브라보가 러버가드의 시범을 보이는 모습

어떤 사람들은 러버가드의 파훼법이 이미 다 나와 있다고 주장하는데, 주짓수 룰에서는 상당 부분 옳은 얘기입니다. 러버가드를 잡은 선수는 위에 있는 상대에게 풋초크나 오모플라타 등을 시도하는 옵션이 있는데, 대부분의 정상급 주짓떼로들은 그 길을 잘 알고 있어 방어를 어렵지 않게 해냅니다. 하지만 타격이 허용되는 종합격투기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러버가드에 걸리면 위에 있는 사람은 상체가 제압되어 파워풀한 타격을 날리기 힘든 반면, 밑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얼굴에 팔꿈치나 주먹을 마음껏 날릴 수 있게 되거든요. 물론 현대 종합격투기의 채점 기준에서 상위 포지션의 차지 여부는 상당히 중요하기에 계속 러버가드를 잡고 누워 있는 건 좋을 게 없지만, 퍼거슨처럼 다른 주짓수 기술 및 타격과 섞어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면 상대를 괴롭히기에 충분한 기술인 건 분명합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케빈 리는 퍼거슨의 하위 포지션에서의 주짓수 움직임을 과소평가했다고 인정하며 특히 밑에서 날아오는 팔꿈치 공격이 까다로웠다고 얘기했습니다. 3라운드에 트라이앵글 초크에 걸리기 전 케빈 리는 이미 상당히 지친 상태였습니다. 케빈 리 정도의 톱클래스 그래플러가 그만큼 지쳤다는 건 퍼거슨이 스탠딩 타격이나 레슬링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기피하는 그라운드 하위 포지션에서조차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저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인터뷰 영상은 아래 영상 31분20초부터 확인 가능합니다

어찌 보면 퍼거슨은 에디 브라보가 추구하는 ‘실전 주짓수’의 이상향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긴 리치를 활용해 파워풀한 타격을 하다가 빈틈이 보이면 과감히 굴러 상대방의 다리를 꺾으러 들어가고, 그게 막히면 등을 대고 누워 러버가드로 상대를 묶은 다음 팔꿈치로 두들깁니다. 당황한 상대가 빈틈을 보이면 트라이앵글 초크나 암바 등 서브미션 기술을 시도하고, 이걸 막으면 다시 일어나 타격전을 벌입니다. 계속되는 공격에 질린 상대가 태클을 시도하면 다리를 쭉 빼서 막고 위에서 다스 초크를 시도하죠. 써 놓고 보니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는 타격과 주짓수의 종합선물세트네요.

에이블 트루히요에게 초크를 성공시키는 퍼거슨

그렇다면 현 챔피언 코너 맥그리거와의 궁합은 어떨까요? 제 사견에 불과하지만, 퍼거슨은 맥그리거에게 최악의 상대 중 한 명입니다. 퍼거슨은 ‘메이웨더 VS 맥그리거’ 전 이후 썼던 칼럼에서 말씀드렸던 맥그리거의 약점들을 파고들만한 요소를 잔뜩 갖고 있습니다.


일단 퍼거슨이 맥그리거보다 더 크고 길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맥그리거는 신장 175cm에 리치 188cm인데, 퍼거슨은 신장 180cm에 리치 190cm입니다. 맥그리거는 본인의 리치를 최대한 살려 원거리에서 밀고 들어가며 왼손 왼발을 활용하는 게 승리의 주요 타격 공식인데, 본인보다 크고 긴 사람을 만나면 이게 잘 통하지 않습니다. 네이트 디아즈에게 고전했던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거기다 퍼거슨은 디아즈보다 훨씬 더 읽기 어려운 타격 리듬을 갖고 있습니다. 복싱에 치우친 스타일인 디아즈보다 공격 옵션도 더 많고요. 

하파엘 도스 안요스에게 앤더슨 실바 식의 엘보우 공격을 시도하는 퍼거슨

레슬링이나 주짓수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태클을 거의 시도하지 않고 멋대로 드러누우며 종잡을 수 없는 주짓수 기술을 자주 써서 그리 보이지 않을 뿐, 퍼거슨은 상당히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던 정통 레슬러 출신입니다. 몸 속에 새겨진 치열한 레슬링 몸싸움의 경험 및 능력치가 맥그리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스탠딩 레슬링과 그라운드 싸움에서 맥그리거가 전력이 상당히 준수한 정도라면, 퍼거슨은 구석구석이 무기로 꽉 차 있는 느낌입니다.


거기다 퍼거슨은 무한 체력과 단단한 맷집, 한계를 알 수 없는 정신력까지 갖고 있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한 라운드만 뛰어도 체력이 고갈되곤 하는 멕시코 고산 지대에서 5라운드 내내 전 챔피언 하파엘 도스 안요스를 밀어붙여 이겼으니 지구력은 말 다 한 거고, 아직까지 KO패를 당한 기록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웬만한 공격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위기에 빠져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 경기를 뒤집어 버리죠.

일본의 강자 키쿠노를 쓰러뜨리는 퍼거슨  

거기다 격투기에 대한 열정 또한 맥그리거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맥그리거는 본인이 격투기에 미쳐 있다는 점을 늘 강조하곤 하는데, 퍼거슨은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습니다. 그의 발언 몇 가지만 들어 보시면 딱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레슬링 팀에서 수 천, 수 만 번 반복해 기본기를 연습했던 시간들과 그 때 배운 work ethic(맡은 일에서 게으름 없이 근면하게 계속 해 내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덕분이다. 사실 고교 시절 내 주변엔 레슬링을 도와줄 만한 파트너들이 많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내 멘토들이 ‘토니, 넌 그저 그런 제 2의 누구 어쩌고 하는 선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유일무이한 토니 퍼거슨이다.’라 얘기해 준 걸 새기고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챔피언은 밝은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화려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챔피언은 어둠 속에서 흘리는 피땀으로 만들어진다.”


“난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 강한 정신력이라 함은 남들이 값비싼 극저온 치료기에 들어가서 몸을 회복할 때 차디찬 얼음물 속에 주저 없이 뛰어드는 것, 상대가 자고 있을 새벽에 일어나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추위를 무시하고 달리러 나가는 것, 여가 시간에 술 마시고 놀러 다니지 않고 경기와 기술을 분석해 계속 메모를 하고 조금이라도 내 자신을 격투가로서 발전시키는 걸 의미한다.”


“튼튼한 뼈대 없이 좋은 집을 짓는 건 불가능하다. 종잡을 수 없는 나만의 변칙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수많은 반복을 통해 자잘한 기본기들을 모두 마스터해 놓은 거라 할 수 있다.”


퍼거슨은 인터뷰 도중 가끔씩은 무슨 얘기를 하는 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횡설수설하거나, 경기하기 전 매니저에게 이번 상대한테는 서브미션 기술 걸었다가 일부러 풀어준 다음 때려눕히면 재밌겠다고 얘기한 후 실제로 그렇게 해 버리는 괴짜 중의 괴짜지만, 이렇게 육체와 정신 모두에서 극강의 능력을 갖고 있는 진짜배기 챔피언입니다. 챔피언 맥그리거와의 경기가 언제 성사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승부 중 하나가 될 건 분명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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