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처유상수]자동낚시찌 개발한 성재홍씨-물고기를 자동으로 채는 오토찌를 아세요

2017. 10. 1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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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에게 낚시가 어려운 것은 언제 낚싯대를 채야 할지 감이 없기 때문이다. 오토찌는 그럴 걱정이 없다. 물고기가 입질을 하면 찌에 달린 스프링이 반응해서 바늘을 바로 채기 때문에 누구라도 잡을 수 있다.

낚시를 일컬어 타이밍의 기술이라 한다. 긴 기다림 속에 물고기가 입질하는 순간을 맞춰 정확한 챔질이 있어야 고기를 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재홍씨가 만든 자동낚시찌인 오토찌는 정확한 타이밍에 자동으로 챔질을 하는 낚시도구이다.

물고기를 낚으려는 낚시꾼들에게 필수적인 장비는 찌다. 찌는 물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어느 순간 낚싯대를 채야 하는지 알려준다. 긴 시간 동안 낚시꾼은 찌만 바라본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고기는 미끼만 따먹고 사라져버린다. 낚시란 결국 찌와 물고기와 강태공이 주고받는 대화인 셈이다. 오토찌는 물고기가 미끼를 건드리는 순간 바로 낚아챈다. 성재홍씨는 낚시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큰형님이 낚시광이다. 오토찌는 큰형님의 아이디어였다. 형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내게 오토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다.”

오토찌의 작동원리는 총의 노리쇠와 닮았다. 찌를 지지하는 받침에 스프링이 내장돼 장전하면 바늘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덫처럼 작동되는 구조이다. 상당히 정교하고 정밀하게 작동하며 장전하는 방법에 따라 민감도를 조절할 수 있다. 낚시기술의 상당 부분이 찌를 보는 데 있다는데 초보자도 별다른 기술 없이 낚시의 성공률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의 형은 수십 년 낚시 끝에 오토찌의 원리를 구상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성씨는 졸업 후에 국내 최대 자동차회사에 인턴으로 취업한다. 정식 채용을 앞두고 공교롭게도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졌다. 회사에서는 그에게 채용을 보류한 채 1년 6개월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기다린다고 해도 상황을 봐서 결정하겠다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큰형님이 이 제품 개발을 하자고 권했다. 좋은 아이디어라 해도 팔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다른 일을 하면서 형과 함께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초보자도 쉽게 낚시에 성공할 수 있는 자동낚시찌를 개발한 성재홍씨.

정확한 타이밍에 자동으로 챔질하는 찌

성씨의 큰형은 이미 두 차례나 제품을 만들려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설계대로 모양을 만들었는데 실제 작동이 되질 않았다. 성재홍씨가 그 원인을 찾아냈다. “문제는 플라스틱 사출의 정밀도였다. 0.1㎜의 오차도 없어야 했는데 일반 금형으로는 그 정도의 정밀도를 맞출 수가 없었다. 미세한 차이에 따라 작동이 되고 안 되고 결정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맥을 통해 수소문 끝에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업체를 찾아냈다. 대기업 휴대폰 케이스 성형업체였기 때문에 설계한 대로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시제품도 원하는 대로 나오고 작동도 잘 됐다. 그 과정까지 몇 년이 걸렸다. 제품을 알리고 판매하는 일만 남았는데 성재홍씨가 선택한 것은 낚시방송을 하는 케이블 텔레비전 홈쇼핑이었다. 제품을 보고 투자자도 나타났지만 성씨는 거절했다. 오토찌의 성공을 자신했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 광고를 찍고 홈쇼핑을 시작했다. 성씨는 당시 상황을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하루 종일 배송장 쓰기에도 바쁜 지경이 됐다. 밀려드는 문의전화를 받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결국 생산업체와 협의해서 공장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발송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사업가들은 흔히 “아무나 사업 못한다”고 말한다. 사업에는 제품뿐 아니라 자금과 판매, 생산·관리 등 수많은 요소들이 변수로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각각 단계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사업가는 그 전체를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름의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그는 “제품이 팔리면 팔릴수록 문제가 튀어나왔다. 공장에서는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했다. 물건을 받지 못한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방송국과의 관계도 나빠졌다.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꼬여 나갔다”고 말했다.

하청공장에서는 대기업 물량이 밀리자 오토찌 생산은 우선순위에서 밀어두었다. 공장에 뛰어가 밤을 새며 조립을 했는데 이번에는 제품 검수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 겉은 멀쩡했지만 서너 번 작동한 후에는 고장이 나는 불량품이 나왔다. 불만과 함께 반품이 뒤따랐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성씨는 “한마디로 경험 부족이었다.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는지 알지 못했던 탓이 컸다. 물건을 개발하고 만들어 파는 일에서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한다.

낚시찌를 만들다가 낚시에 취미를 붙이게 됐다.

홈쇼핑 통해 판매, 사업 경험 없어 실패

사업 초년생이라 수익에 대한 계산도 밝지 못했다. 홈쇼핑과의 계약도 총매출액의 절반을 가져가는 조건이라 팔면 팔수록 손해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 번 궁지에 몰리면 거듭 무리수를 두게 된다. 성씨도 같은 과정을 경험했다. 게다가 닥치는 자금난에 사채까지 끌어 썼다. 빚으로 빚을 갚았던 일에 대해 “이자율이 50% 가까이 됐다. 1억원을 빌려서 열심히 일해 5000만원을 갚았는데도 원금 1억원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별의별 방법으로 자금을 만들어 빚을 갚고 또 빚을 내길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기억했다. 빚은 그를 짓눌렀다. 사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사라져버렸고 남은 것은 허덕이는 삶뿐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오토찌는 꾸준히 팔렸다.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하고 써보면 낚시의 성과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게 낚시가 어려운 것은 언제 낚싯대를 채야 할지 감이 없기 때문이다. 오토찌는 그럴 걱정이 없다. 물고기가 입질을 하면 찌에 달린 스프링이 반응해서 바늘을 바로 채기 때문에 누구라도 잡을 수 있다. 심지어 낚싯대를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해도 고기를 놓칠 일이 없다”는 것이 성재홍씨의 주장이다.

10년 동안 세 차례의 개선작업을 하면서 팔린 오토찌는 모두 3만개. 오토찌를 사서 사용하는 낚시꾼이 적지 않다. 성씨는 “써보면 안다. 낚시 고수도 조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선호할 수밖에 없다. 오토찌는 낚시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통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적인 국내 낚시인구는 600만명을 훌쩍 넘는다. 성씨는 국내 낚시인구에 비추어 오토찌가 팔릴 만큼 팔렸고 제품 성능 개선을 통해 더 많이 팔릴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홈쇼핑 사태’ 이후 성씨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우리보다 낚시인구가 많은 일본 낚시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일본 시장은 가격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이 제품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성능이 좋은지만을 따졌다. 일본 쪽과 접촉하면서 오토찌의 개선방향을 또 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제품 개발단계에서 금형비를 줄이기 위해 성씨는 민물과 바닷물에서 다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본은 바다낚시가 우세했고 바다에서 쓰기에는 오토찌의 부력이 너무 컸다. 10년 동안 빚을 갚아가면서도 그는 오토찌에 걸었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기회가 닿는 대로 제품을 개선했다. 국제특허를 내서 제품의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성재홍씨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을 굳게 믿는다. 이미 한 차례 기적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집안형편이 어려웠다. 고3 때 미술대학을 가고 싶다고 하자 집안의 반대가 컸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재수를 했는데 여름에 독서실 앞 미술학원을 보자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어머니께 말씀드렸지만 학원비 때문에 반대했다”고 회상했다. 학원을 가기 위해 신호등을 기다리던 중 우연히 형의 친구를 만났다. 공고를 졸업하고 취업했던 지인은 국문과를 가기 위해 입시준비를 한다고 했다. 성씨의 말을 듣더니 6개월치 학원비를 선뜻 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의 어머니도 “알아서 해라”고 승낙했다. 미대 입시 준비를 했지만 결국 낙방하고 말았다. 인형공장을 다니고 건설 막노동을 하면서 3수 끝에 성재홍씨는 결국 미대 진학에 성공했다. 그리고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성씨가 요즘 하는 일은 IT쪽 디자인 작업이다. 특히 건축과 가상현실을 결합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그는 오토찌를 포기했을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인터넷 주문을 통해 꾸준히 팔고 있다. 생산한 제품들은 이제 거의 다 팔았다. 오토찌는 내 인생의 가장 아프고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한 산물이다. 그러니 포기할 수가 없다. 더 좋게 만들어서 중국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약 3만개의 오토찌가 팔렸다.

국제특허 내고 일본 이어 중국시장 노크

찌를 쓰는 낚시문화는 동양3국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서양이 가짜미끼로 플라잉 방식의 동적인 낚시를 즐기는 데 비해 찌를 지켜보는 정적인 낚시가 한·중·일의 공통된 방식이다. 중국의 레저산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낚시용품시장의 규모도 성장하고 있다. 성씨의 다음 낚시터는 중국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은 워낙 카피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오토찌를 복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름 자신도 있고 제품을 만들면서 생긴 노하우도 있다. 주물의 정밀도뿐 아니라 날씨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는데, 조립과정에서 0.1㎜의 오차를 잡을 수 있는 비결이 있다. 그런 노하우는 쉽게 복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오롯이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는 설명이다.

빚을 갚느라 제품 개발에 더 이상 투자할 수 없었지만 그는 아직도 오토찌를 들여다보고 있다.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가장 잘 안다고 이야기한다. 성씨는 “빚은 이제 다 갚았다. 10년의 세월동안 얻은 것이 많다. 오토찌는 내 인생의 연금보험인 셈이다. 더 좋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이 될 것이다”라고 목청을 높인다. 놓친 물고기가 가장 큰 물고기라는 낚시판의 속담처럼 어쩌면 성공의 문턱에서 실패를 맛보았기에 더 아쉬울 수도 있다.

낚시 고수인 그의 형은 동생을 낚은 셈이다.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에 인생을 걸게 했으니 월척 중에 월척을 낚았다. 성씨는 형과 함께 제품을 개발하고 낚시를 다닌 일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제품을 만들려다 본격적인 낚시꾼이 된 셈이다. “밤낚시를 가면 달빛이 떨어지는 정경이 너무 아름답다.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낚시를 하다보면 꽤나 할 일이 많다. 자리가 안 좋으면 옮기기도 하고 미끼를 어떻게 쓸까도 고심한다”고 말한다. 낚시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의 축소판이라는 설명이다.

낚시는 가장 대중적인 취미 중 하나이다. 국민 10명 중 1명이 낚시를 즐긴다. 낚시꾼은 고기를 노리고, 성씨는 그런 낚시꾼을 대상으로 오토찌를 던졌다. 성재홍씨의 낚시가 성공한다면 가장 큰 고기를 낚은 진정한 고수가 될 것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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