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구해줘, 농촌](1)81세 '43년차 이장'이 마을 궂은 일..노인이 노인을 돌본다

글·사진 최승현 기자 2017. 10. 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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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아이 울음소리 멈춘 이곳

농촌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30년 후 전국 기초자치단체 3분의 1이 사라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농촌 붕괴는 식량주권 상실이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농촌 위기는 더 이상 지역공동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자치단체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동의 문제로 인식해야 할 때다. 농촌의 현실을 짚고 회생의 대안을 모색해 보는 기획기사를 4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달 24일 강원 횡성군 횡성읍 정암2리 도호근·전금례씨 부부가 집 앞마당에서 가을볕에 말리는 붉은 고추를 다듬고 있다.

31년 전 산골짜기 마을에 시내버스가 처음 들어왔다. 자전거도 타지 못할 정도로 좁은 비탈길을 따라 20리(8㎞)를 걸어야 했던 주민들은 환호했다. 아낙네들은 버스가 들어오는 신작로(新作路)를 바라보며 “우리도 이제 살길이 생겼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교통 오지에서 해방되면 산골 마을에도 새 희망이 싹틀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예상은 너무 순진했다. 농사일만으로는 벌이가 신통치 않았던 농촌 거주자들이 산업화된 도시로 떠나는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이 마을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났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마을 주민 수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강원 횡성군 횡성읍 정암2리 얘기다.

지난달 24일 오후 찾은 정암2리 마을회관 앞. 마을회관 건물 옆엔 ‘도호근 이장·전금례 부녀회장 부부 공로비’와 ‘전국 최장수마을’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였다. 정암2리는 1995년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전국 최장수마을’이다. 43년째 이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도호근씨(81)는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분이 돌아가시긴 했지만 요즘도 나보다 나이 많은 주민이 7명이나 있고, 최고령인 권이강 할머니는 103세”라고 말했다. 도 이장은 “마을회관에 가면 상대적으로 젊은 내가 상을 차린다. 44년간 부녀회장을 지낸 내 아내도 4년 전부터 노인회장을 맡아 마을 일을 돕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전국 최장수 이장인 그가 처음으로 주민들의 손발이 되어 마을 일을 도맡게 된 것은 1971년 1월부터다. 34살 청년이던 그는 이때부터 3년 동안 새로운 마을 길을 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땅 소유자들이 동의하지 않자 그는 스스로 이장 자리를 내놓았다. 그러나 주민들은 1978년 마을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그를 다시 이장으로 선출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대지 396㎡(120평)와 바꾼 땅을 버스 종점으로 내놓고, 주민들을 설득한 끝에 길을 넓혀 1986년 7월부터 시내버스가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도 이장은 “마을 환경이 예전보다 좋아졌으나 젊은 세대가 취업과 자녀 교육 등을 위해 고향을 떠나면서 주민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며 “2남2녀 내 자식들도 부산, 인천, 원주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논 6600㎡(2000평)와 밭 5000㎡(1500여평)에서 벼와 아로니아·고추·들깨·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한우 16마리를 길러 연간 2000만원가량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도 이장은 “솔직히 돈만 생각하면 농촌에서 생활하기 힘들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말까지 310여명에 이르던 정암2리 주민 수는 현재 110여명으로 줄었다. 이 가운데 70여명은 귀농·귀촌 등 명목으로 전입해 놓고 주말 등을 이용해 마을에 있는 집에 잠깐 다녀가는 사람들이다.

상주하고 있는 토박이는 40명가량이며 이 중 32.5%인 13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전금례씨(78)는 “남편이 팔순이 넘은 나이를 고려해, 이장직을 그만두려 했으나 주민들이 지난해 말 ‘부부 공로비’까지 세우고 부탁해 어쩔 수 없이 1년 더 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도 30년 이상 마을 일을 돌보는 70대 고령 이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는 농촌의 인구 유출과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지난 8월 기준 주민등록인구는 5175만3820명이며, 이 중 65세 이상 노인은 14.02%(725만7288명)다. 2000년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7% 이상)에 들어선 지 17년 만에 고령 사회(14% 이상)로 진입한 것이다. 오는 2026년쯤이면 초고령 사회(20% 이상)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농촌이 많은 전남은 노인 인구가 21.4%로 이미 ‘초고령’ 지역이 됐고, 경북·전북(18.8%), 강원(17.9%), 충남(17.0%), 충북(15.7%) 등도 이에 근접하고 있다. 226개 시·군·구 중 노인 인구가 20% 이상인 지역은 전남 고흥(38.1%), 경북 의성(37.7%)·군위(36.6%), 경남 합천(36.4%) 등 93곳에 이른다. 이미 초고령 사회가 된 93개 시·군·구 중 86.6%인 71곳이 군단위 농촌지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촌지역에선 ‘아기 울음소리보다 곡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는 자조 섞인 말이 회자될 정도다. 농촌지역의 고령화가 심각해지자 전남 순천시와 강원 홍천·인제·영월·양구·철원·고성군은 고독사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4~5년 전부터 경로당 시설을 개·보수해 홀몸노인들이 숙식을 함께하며 공동생활을 하는 ‘효합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형자 강원도 경로장애인과장은 “자치단체의 힘만으론 농촌지역 노인들의 정서적 고립감 해소와 사회관계망 구축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과 예산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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