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증권사 10곳 중 9곳 가까이는 최근 한 해 동안 특정 회사 주식을 팔라는 의견의 종목 보고서를 한 건도 내지 않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 초 미국과 이란의 전쟁 등 여파로 주식시장이 요동치며 이른바 롤러코스피 장세를 보인 와중에도 이 같은 매도 리포트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글로벌 증권사들은 평균 10%에서 최고 20%에 가까운 매도 리포트를 써내 대비를 이를 이루면서, 토종 증권사의 장밋빛 전망을 바라보는 투자자의 의구심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직전 1년간 리포트 투자 등급 비율을 공시한 25곳의 국내 증권사 중 22곳은 매도 보고서가 아예 0%였다. 리포트의 투자 등급은 매수·중립(보유)·매도로 구분되는데, 이들 증권사는 매도 의견을 한 번도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드물게 매도 리포트를 낸 곳은 △미래에셋증권 △메리츠증권 △신영증권 세 곳뿐이었다. 그러나 이 증권사들도 매도 리포트 비중이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신영증권의 매도 리포트 비중이 1.3%로 그나마 가장 높았다. 미래에셋증권과 메리츠증권은 각각 0.6%, 0.5%였다.
나머지 증권사들은 투자 리포트에서 대부분 매수를 권유했다. 25곳의 매수 리포트 비중은 평균 87.5%였다. 넥스트증권과 부국증권은 매수 리포트 비율이 100%로 가장 높았다. BNK투자증권의 해당 비율이 75.4%로 가장 낮았다.
이들 증권사의 중립 리포트 비율은 8.4%로 나타났다. BNK투자증권의 중립 리포트 비율이 24.6%로 가장 높았다. 모든 리포트를 매수 의견으로 채운 넥스트증권과 부국증권을 제외하면, 교보증권의 중립 리포트 비율이 1.4%로 가장 낮았다.

이와 달리 글로벌 증권사들은 매도 의견에도 힘을 실었다. 같은 시점과 조건으로 집계한 결과, 해외 증권사 10곳의 매도 리포트 비율은 평균 11.8%였다. 나머지 리포트에 매긴 투자 등급 비중은 매수가 60.6%, 중립은 27.7%였다.
메릴린치인터내셔날엘엘씨증권 서울지점의 매도 리포트 비율이 21.3%로 가장 높았다.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과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 모간스탠리인터내셔날증권 서울지점의 매도 리포트 비율은 차례대로 18.4%와 16.3%, 15.9%였다.
조사 대상이 된 외국계 증권사는 △골드만삭스증권 서울지점 △노무라금융투자 △맥쿼리증권 △메릴린치인터내셔날엘엘씨증권 서울지점 △모간스탠리인터내셔날증권 서울지점 △씨엘에스에이코리아증권 △씨지에스 인터내셔널증권 홍콩 한국지점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유비에스증권리미티드 서울지점 △홍콩상하이증권 서울지점 등이었다.
더욱이 최근 증시의 변동성이 극에 달하며 부정적인 견해가 나올 법한 여건 속에서도, 국내 증권사들이 매수 의견에 편중된 리포트를 쏟아냈다는 점은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중립·매도 의견을 함께 제시하는 글로벌 증권사들의 보고서만 상대적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셈이 됐다. 지난달 코스피 변동성지수인 VKOSPI가 80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장세가 지속된 터라 이런 극명한 온도 차에 더 시선이 쏠린다.
토종 증권사가 쉽사리 매도 리포트를 꺼내 들지 못하는 이유는 기업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증권사는 회사채 발행 주관이나 인수합병 자문 등 투자은행 사업을 위해 여러 기업과 원만히 소통할 필요가 있는데, 투자 리포트가 이런 영업용 인프라 관리 수단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특정 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보고서를 냈다가 괜히 미운털이 박혀 다른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입을까 봐 몸을 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가 매도 의견에 소극적인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며 "증권사가 매도 의견을 내면 투자 대상 기업이 반발할 수 있고, 기업설명회 행사에 초청조차 받지 못하는 등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증권사는 글로벌 증권사와 달리 위탁매매로 얻는 수익도 꽤 크기 때문에 특정 종목 주가 하락 시 돌아올 투자자 항의를 고려해서도 매도 의견을 내기 조심스러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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