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아파트를 두고 굳이 ‘3억’ 들여서 시골에 주택을 지은 이유는..

안녕하세요 :D 저는 포항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소담한 집을 지어 살고 있는 [귤나무집 비나] 입니다. 저희 부부는 6세, 4세 남자 아이 두 명을 키우고 있는 32-31살의 연상연하 커플이에요. 집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집순이인지라, @gyulnamu_house에 집을 기록하고 있어요.

굳이 불편한 주택을 지어서 이사 간 이유는-

우리 아이들과 또래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은 대충 예상이 되실 것 같아요. 저희는 흔히들 말하는 신축 '초품아(초등학교 품은 아파트)' 에 살고 있었어요. 명성에 걸맞게 멋진 산책로와 놀이터, 유아를 위한 실내 놀이터 등등 아주 완벽한 아파트였답니다.

문제는 우리였어요. 우리는 공동주택에서 살기에는 에너지가 터져나오는 아들을 두 명이나 키우고 있었던 거죠. 집에 있으면 아래층에 층간 소음으로 피해를 줄까 두려워, 200만원에 달하는 매트를 집 전체에 설치하고도 매일 '뛰지마' 라는 말에 뒤이어 '뛰지 말라고 했지!', '소파에서 뛰어내리지마!', '집에서 공놀이 하는거 아니야!' 등등 기차놀이처럼 줄줄이 잔소리가 따라 붙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빨래를 개키며 거실창을 바라보는데, 문득 내가 바둑판처럼 칸칸이 나눠진 닭장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맞은편 아파트와 마주하고 있는 단지 형태 때문이었죠. 동간 거리가 그렇게 짧은 건 아니었지만, 거실 메인창으로 보이는 게 남의 집 창문 수백 개라니.. 이사를 가야 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제가 하고 싶다는 것에는 딱히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남편과, 저의 무식하지만 용감한 추진력이 더해져 일은 급속도로 진행됐어요. 처음부터 집을 무조건 지어야 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적당히 마음에 맞는 집이 있다면, 매매해서 이사 갈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부동산을 보러 다니면서 깨달았어요. 내 머릿속에는 이미 '내 집'에 대한 이미지와 구조가 있었고, 기존에 지어진 집으로는 만족할 수 없겠다는 걸요.

도면

저희 집은 2개 방을 가진 남동향 21평 본채 + 6평의 별채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가진 아파트를 처분하고 집을 짓기 때문에 예산이 빠듯했어요. 그래서 최소로 필요한 공간을 구성해보려고, 설계사무소에 가기 전 ppt로 열심히 도면을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했답니다.

ppt로 사이즈에 맞게 박스를 만들어 이리저리 이동해보며 구성을 연구했어요. 집의 전체적인 모양은 별채를 포함해 ㄱ자로 결정해 둔 상태로 방을 이리저리 옮겨보는 식으로요.

완성된 ppt자료를 가지고 설계사무소에 가서 의논하고, 다시 구성하고를 반복했어요. 거실이 서재와 다이닝룸의 역할까지 하면서도 심플할 것, 남거나 죽는 공간이 없도록 알뜰하게 공간을 사용할 것, 공간들이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만들 것, 우리 가족의 평소 동선을 반영할 것 ... 확실한 기준을 잡고 연구했는데도 도면 그리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외관

베이스 컨셉은 화이트 우드입니다. 앞에 훤히 보이는 마당은, 여름이 되면 수영장과 놀이터로 변신할 예정이에요. 한쪽 구석에는 화단과 나무를 식재해 조금 더 꾸밈을 주려고 열심히 정원공부 중이랍니다. 집 이름처럼 귤나무도 이미 여러 그루 공수해뒀는데, 겨울이라 옮기다 죽을까 싶어 미루고 있어요.

거실

우리나라 거실들은 소파-TV 대면형 구조가 참 흔하지요? 저는 가족들이 저녁에 모였을 때, 우리집 거실이 다정함을 나누는 대화의 장이 되기를 바랐어요. 이전 집이 소파-TV 대면형 거실이었는데.. 자연스럽게 TV와 눈맞춤을 하는 시간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집에서는 거실이 제가 바라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소파와 TV를 제거해버렸어요.

지금은 주방과 함께 쓰는 다이닝룸의 역할을 하게 됐죠. 거실에 남은 건 책장을 겸한 윈도우 시트와 6인용 테이블뿐. 여기서 식사도, 독서도, 아이들의 놀이활동도 함께 하고 있어요. 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가구나 소품은 모두 화이트, 우드로 통일해주었답니다.

이번에 커튼도 달았는데, 사실 고민이 많았어요. 주택이다 보니 밖에서 집 내부가 훤히 보이더라고요. 가리긴 가려야겠어서 커튼과 블라인드 중 고민했는데, 블라인드 날에 쌓이는 먼지를 자주 청소할 자신이 없어서 먼지 안 나는 커튼을 선택해 달았답니다. 예뻐서 대만족 중이에요.

최대한 공간을 심플하게 만들고자 윈도우 시트를 책장 겸용으로 쓰고 있어요. 아이들은 햇살이 좋을 때 여기 누워 낮잠을 자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을 꺼내 엎드려 읽기도 한답니다.

거실에서 복도로 나가는 입구에는 슬라이딩 중문을 설치했어요. 중문이 있으면 거실과 방들의 열 보존에 괜찮은 것 같아요. 보일러 비용이 많이 드는 주택에는 필수라고 하시더라고요.

중문은 잘 때를 제외하고는 열어두는 편인데, 중문을 닫게 되면 작은 사진전이 열린답니다. 사진을 항시 보이는 곳에 붙여두자니, 지저분한 감이 있는 것 같았어요. 평소에는 중문이 사진을 가려주고, 잘 때만 보이니 훨씬 깔끔하고 볼 때도 재밌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크리스마스 느낌을 내고자 거실에 작은 트리를 두었어요.

주방

주방은 모두 화이트로 통일했어요. 인덕션, 식기세척기, 냉장고, 상판, 타일까지 전부 다요.

타일이 들어가는 벽이 훨씬 매끄러워 보이지 않나요? 타일까지 통일감을 주고 싶어 화이트 타일을 찾아봤는데, 이음새 부분이 조금 거슬렸어요. 그 부분에 때가 끼이면 닦을 자신도 없었고요. 그래서 싱크대 상판을 세라믹으로 만들고, 그걸 벽면까지 쭉 올려서 타일 마감을 대신 했어요.


주방에서 바라보는 산 뷰가 너무 좋아 상부장을 설치하지 않았어요. 수납 걱정을 많이들하시던데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살림하고 있어서 크게 부족하지는 않아요.

원래 쓰던 800L의 냉장고가 오래되어 처분하고, 김치냉장고를 들여왔어요. 김치냉장고를 써보니, 냉장고보다 신선하게 보관이 되는 것 같았거든요. 먹을 만큼 들여와서 신선할 때 소비하는 게 쟁여두고 먹는 것보다 더 편하더라고요. 꽉 찬 냉장고에서는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 그냥 쟁여두기 일쑤였거든요...ㅎ

부부침실

이전 집에서는 부부침실의 사이즈가 가장 컸어요. 크면 물건 늘어놓기만 편하고, 화장대나 서랍장 같은 것들이 있으면 잘 때쯤 되면 눈에 거슬리더라고요. 청소해야 하는데- 하는 잡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번 침실에는 퀸사이즈 매트리스가 들어갈 정도로만 면적을 구성해서 침대를 제작했고 코너선반 하나를 넣었어요. 숙면에 집중하길 원했거든요. 지금 코너선반에는 아이들 자기 전에 읽어주는 책과, 자다가 목마른 아이들을 위한 물잔, 모기 잡는 포충기만 두고 있어요.

목과 허리 건강에 예민한 편이라, 하드한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채워넣었어요. 원래 목이 담에 잘 걸리는 편인데, 바꾸고 나서 한 번도 걸리지 않은 거 보면, 괜찮은 것 같아요. 이렇게 만들어 두니 청소도, 정리도 심플해져서 한결 편하더라고요.

밤에는 머리맡에 둔 조명 하나만을 켜두고 온가족이 함께 책을 읽어요. 아이들도 저도 이 시간이 참 행복하더라고요. 아지트 같이 아늑한 느낌이 너무 좋아요.

아이들방

지금은 아이들 장난감만 넣어두었고, 아무 것도 없는 빈방이에요. 아직 수면 독립을 하지 못해서 침대를 따로 넣어줄 필요를 못느꼈거든요.

빈 방에 하얀 벽이라 주말 저녁이면 영화관으로 변신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팝콘 튀겨 다 같이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영화 보는 게 아이들의 큰 즐거움이에요.

화장실

각각의 공간이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게 만드는 것이 작은 목표였는데,이루어진 것 같죠?ㅎㅎ 변기와 휴지걸이로만 구성된 화장실입니다.

윤현상재의 대형타일과 타일육가를 사용했고요. 돔 형태의 플라스틱 천장을 하고 싶지 않아 이노솔 천장으로 마감했어요.

샤워실

샤워실이 작아서 문에 자꾸 물이 튀는 문제가 있었어요. 샤워커튼을 달아 해결을 보려했는데, 덕분에 예쁜 공간을 얻은 기분이네요.

샤워실도 화장실과 동일하게 구성했어요. 미니멀하게, 하지만 역할에는 충실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 단조롭게 만드는 게 목표였죠. 작은 공간인 만큼 한 가지 색의 대형 타일로 통일해서 공간감을 확장시키고 샤워기 역시 무광으로 통일감 있게 구성을 했어요.

따로 선반을 만들지 않기 위해 조적을 쌓아 타일선반을 구성했는데, 청소도 쉽고 색이 분할되지 않아 좋아요.

세면대

이전 집에서 살 때 화장대에 대한 큰 필요를 못 느꼈었어요. 20대 때에 비해 화장할 일이 잘 없더라고요. 그래서 세면대를 따로 분리하고 세면대와 화장대를 합쳐서 사용하기로 했답니다. 이곳에서 세안과 기초화장을 함께 하고 있어요.

화장실이나 샤워실 쓰는 사람과 겹치지 않아 편하게 쓸 수 있고, 복도에서 바로 손을 씻고 생활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도 좋아요.

별채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맞은편에 별채로 들어가는 문이 보여요. 멀리서 오시는 부모님이나 친구 등 손님이 왔을 때 묵어가는 곳이에요.

현관을 들어오면 바로 별채 욕실이 있어요. 여기는 본채와 다르게, 화장실과 샤워공간이 함께 있답니다. 마찬가지로 선반을 따로 제작하지 않고 같은 타일로 전부 통일했어요. 그래야 무언가 데코레이션을 했을 때 더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별채에는 3개의 창이 있는데 각각 매력포인트가 있답니다. 열리지 않는 픽스창은, 자려고 누웠을 때 모래알 같이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제일 큰 창을 열면 툇마루에 앉아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여기서 귤 까먹으며 책 읽으면 얼마나 평화롭게요 :D

마지막으로 주방 작은 창에서는 푸른 하늘과 소나무 숲, 살랑이는 벼를 볼 수 있어요.

별채는 저희 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추억 한아름씩 들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신경쓰지 않은 부분이 없어요. 그만큼 만드는 과정이 행복했기도 하고요.

마치며

주택을 지어 이사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 이런 결정을 한 게 참 잘한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주택 지으면 되팔지 못한다, 집에 비해 드는 돈이 너무 많더라 등등 좋지 못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저는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아이와 별똥별을 보고 기뻐하기도 하고, 볕이 좋은 날은 이불도 팡팡 털어 바짝 말리기도 하고요. 날이 좋은 날은 마당에 앉아 멍멍이들과 따사로운 한 때를 보내고, 마당에서 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하는 그런 소소한 행복들을 채우다보면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단단하고 멋진 사람으로 커갈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저희 귤나무집에 놀러오셔서 좋은 구경하셨나요? 앞으로 오늘의집에서 자주 만나기를 바라요 :D 모두 행복한 오늘의집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