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성지 대구서 우재룡 선생 추념식…경북 1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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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군인에서 의병으로, 다시 무장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던 우재룡(1884~1955) 선생의 독립운동정신을 기리는 추념식이 독립운동 성지 대구에서 열린다.
백산우재룡기념사업회는 오는 20일 오전 11시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 있는 우재룡 선생 흉상 앞에서 '경북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우 지사의 추념식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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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군인에서 의병으로, 다시 무장 항일투쟁의 선봉에 섰던 우재룡(1884~1955) 선생의 독립운동정신을 기리는 추념식이 독립운동 성지 대구에서 열린다.
백산우재룡기념사업회는 오는 20일 오전 11시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 있는 우재룡 선생 흉상 앞에서 '경북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우 지사의 추념식을 개최한다. 행사에는 유족과 기념사업회 회원, 대구지역 기관·보훈 관계자들이 참석해 우재룡 지사의 나라사랑과 희생정신을 되새길 예정이다.
우재룡 지사는 1884년 경남 창녕군 지포면(현 대지면) 왕산리에서 태어나 1903년 대한제국 대구진위대 참교로 복무했다. 하지만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자 군복을 벗고, 1907년 산남의진에 합류하며 의병 항쟁의 길로 들어섰다. 산남의진에서 연습장과 선봉장, 팔공산 유격장을 맡았던 그는 대구·경북 일대를 무대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1908년 6월 체포돼 같은 해 9월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1911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에야 특사로 석방됐다.
출옥 이후에도 독립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된 (대한)광복회에 참여해 지휘장으로 활동하며 국내외를 오가며 무장투쟁과 독립자금 모집에 나섰다. 그러나 1921년 전북 군산에서 다시 체포돼 이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원산형무소에 수감됐다. 1937년 석방될 때까지 체포 및 구금기간만 17년에 달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우 지사는 국가보훈부가 선정한 '2009년 1월의 독립운동가'에 이어, 올해 '경북 1월의 독립운동가'로도 다시 이름을 올렸다.
정기숙 백산우재룡기념사업회장은 "우재룡 선생은 대한제국 군인으로서의 안정을 내려놓고, 의병전쟁과 무장 항일투쟁에 몸을 던진 인물"이라며 "두 차례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될 만큼 헌신의 깊이가 컸던 만큼, 이번 추념식을 계기로 그 정신을 후세에 제대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족 대표인 우대현 광복회 대구시지부장은 "나라를 되찾겠다는 각오로 쉼 없이 투쟁하신 선열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새기는 자리"라고 밝혔다.
이날 추념식에는 정기숙 회장을 비롯한 백산우재룡기념사업회 회원과 유족, 김종술 대구보훈청장,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 등이 참석해 추모사를 전할 예정이다.
권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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