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속임수 브리핑’…이런 검찰에 수사·기소권? [논썰]
안녕하십니까? ‘논썰’의 박용현입니다.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
30년 전인 1995년 12월18일치 한겨레에 실린 기자 칼럼의 첫 문장입니다. 전두환의 12·12 쿠데타 및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에 대해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기소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재수사 지시가 떨어지자 화들짝 놀라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한 직후였습니다. 권력의 뜻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검찰의 행태를 한탄하던 한 검사가 내뱉은 말이라고 합니다. 당시 큰 화제를 모았던 이 칼럼은 검찰을 ‘개’로 공식(?) 지칭하는 시초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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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검찰은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아니, 그보다 더 이전 암울한 군사독재 시대에 군인 권력자들 아래 설설 기던 검찰로 퇴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된 ‘검찰의 시대’에 검찰이 보여준 것이라고는 권력자 부인의 범죄 혐의를 덮고 싸매는 정성스런 비굴함뿐입니다. 국민은 받드는 대상이 아니라 우롱하는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권력에는 ‘감시견’이 되고 국민에게 ‘충복’이 돼야 할 검찰이 권력에는 ‘충견’이 되고 국민에게는 ‘사기꾼’이 됐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은 ‘검찰은 끝났다‘(10월18일치 한겨레 사설)는 진단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했다는 건지, 안 했다는 건지…‘야바위식’ 브리핑
잇따른 무혐의 처분이 왜 부당한지는 증거와 법리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수사 결과 발표 과정에서 검찰 스스로 부끄러운 결론임을 행동으로 실토했기 때문입니다.
명품백 사건 수사 발표 때는 사진과 동영상을 일절 촬영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당당한 수사 결과라면 검찰 책임자들이 국민 앞에 얼굴도 내밀지 못할 이유가 없겠지요.
이번 주가조작 사건 수사 발표 때는 김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도 않아놓고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공식적인 브리핑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당하지 못한 수사 결과임을 자인한 행동입니다. 기가 막힌 일이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확인된 기초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2020년부터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김 여사 회사인 코바나컨텐츠의 대가성 협찬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다.
② 두 사건에 겹치는 등장 인물들이 있어 이들의 압수수색 영장에는 두 사건이 함께 언급되기도 했다.
③ 김건희 여사에 대해선 코바나컨텐츠 사건으로만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④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사실은 없다.
여러분이 만약 주가조작 사건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는 입장이라면 다음과 같은 기자 질문에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기자: 이 수사를 4년 반 동안 하셨는데 김 여사에 대해 영장 청구를 한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언제 어떻게 무엇에 대해 했는지 말씀해달라.
저라면 “김 여사에 대해 영장 청구를 한 적이 없다”고 간명하게 답했을 것입니다. 김 여사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질문이니 위의 기초 사실 중 ④번만 답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최재훈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최재훈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 2020년부터 김 여사와 관련해서 코바나컨텐츠와 도이치모터스를 함께 수사하면서 압수수색 영장도 함께 청구하기도 했다. 김 여사에 대해서는 주거지, 사무실, 휴대전화까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는데, 모두 기각을 당했다. 이후 영장을 다시 청구하지는 않았다.
①번부터 ④번까지를 마구 뒤섞어 놓은 답변입니다. 기초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답변만 들으면 ‘김 여사에 대해 주가조작 사건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당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실제로 이날 언론들은 일제히 이같은 취지의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언론의 왜곡 보도를 검찰이 유도한 셈입니다.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사기를 치는 야바위꾼의 수법과 비슷하지 않나요?
금세 들통난 속임수, 변명은 더 구차했다
그러나 이런 속임수는 금세 들통났습니다. 수사 결과 발표 다음날 국정감사에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바로 실토를 했습니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제가 보고받기로는 피의자에 대한 압수수색 청구는 코바나컨텐츠 관련 사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그러면 도이치모터스 김건희 피의자에 대해서 그 사건에 대해서 압수수색 영장은 청구를 안 한 게 맞는 거지요?
이창수 지검장: 형식적으로 보면 그 말씀이 맞고요.
정청래 위원장: 형식적이라는 말 빼고. 청구 안 했잖아요.
이창수 지검장: 그 부분 맞습니다.
―10월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거짓말이 드러났는데도 검찰은 ‘소통 오류’라고 우겼습니다. 그 근거가 옹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검찰은 이어지는 브리핑 답변 중에 ‘김 여사는 계좌주이고, 계좌주 중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사람은 없다’고 언급한 대목이 있으니 ‘김 여사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미 김 여사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고 오해하게 만든 상태에서 이렇게 숨은그림찾기처럼 언급하면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브리핑 당시 기자들도 ‘계좌주 중 김 여사만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는 뜻인지 명확히 재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이 가관입니다.
기자: 2020년 11월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게 김 여사 한 명인지, 다른 계좌주도 있는 건지?
최재훈 부장: 그런데 기자님, 뭐가 궁금하신 거냐?
기자: 계좌주 중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사례가 없다고 하셔서 여쭙는 거다.
최재훈 부장: 그런 질문은…나중에 확인하겠다.
직접적인 질문이 들어오니 대답을 아예 안 한 것입니다. 더 결정적인 질문도 있었습니다.
기자: 김 여사 압수수색 영장 기각사유는 뭔가?
최재훈 부장: 저희도 확인해봐야 하는데 여기서 말하기는 적절치 않다.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는데 기각 사유가 있을리 없습니다. 그런데 뭘 확인하겠다는 것일까요? 저 답변은 ‘영장을 청구했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분명한 거짓말이지요.
사정이 이런데도 심우정 검찰총장까지 ‘소통 오류’라는 뻔뻔한 주장을 거듭했습니다.
심우정 검찰총장: 브리핑 과정에서 단순히 소통의 오류가 있었던 그런 사안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늘 검사는 그렇게 얘기하죠. 소통의 오류, 들은 사람이 잘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랑 똑같아요. 들은 니 귀가 잘못됐어. 그게 검찰의 오만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0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이런 검찰에 수사·구속·기소 다 맡겨도 되나
브리핑에서 저런 식으로 교묘하게 답변한 것이나 이후에 거짓말이 들통나고도 아니라고 우기는 검찰의 행태가 참 너절합니다. 검찰이 일반 시민들만큼의 정확한 언어 구사 능력, 논리적 사고력, 그리고 더 중요한 정직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검찰에게 수사·구속·기소와 같은 중대한 공적 업무를 맡기고 있다니 섬뜩해집니다.
검찰이 이렇게 무리수를 둔 이유는 뻔히 짐작됩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저부분이 왜 중요했냐면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한 검찰의 처분이 사실은 법원에서도 근거가 있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거든요. 우리만 그런게 아냐, 법원도 영장조차 기각시킬 정도로 이게 혐의가 없는 거야, 이 얘기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속이고 싶었던 거예요.
진행자: 너무 뻔뻔하지 않아? 마지막까지도 말장난을 해.
―10월22일 ‘팟빵 매불쇼’
검찰은 주가조작 사건을 압수수색 한번도 없이 무혐의 처분하는 게 얼마나 엉터리인지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이 사실을 최대한 감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검찰의 ‘주가조작(시세조종) 수사 가이드’ 문건에도 압수수색을 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교본에는 혐의 계좌를 파악한 다음에는 주문자의 의도를 확증·증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는 건 압수수색을 해라, 이렇게 나와 있어요. 압수수색은 뭐냐, 교본에 나와 있어요. 주거지, 회사, 피시, 휴대폰을 압수수색해서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등 증거를 확보하라고 했는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문제에 대해서 이 가이드대로 수사했습니까? 왜 교본대로 안해요? 억울한 서민은 교본대로 하고 영부인은 안하냐 이거예요.
심우정 검찰총장: 그 자료가 공식 가이드 자료가 아니라 모 검사가 참고용으로 만들어서….
박지원 의원: 여보세요! 어떻게 검찰 문건이 공식이 있고 비공식이 있어요? 160페이지짜리가 비공식이냐고요. 이러면 안돼요. 총장!
―10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굳이 교본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주가조작 수사에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건 상식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원칙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국민을 속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검찰에 국가형벌권이라는 무시무시한 권한을 온전히 맡겨도 되겠습니까.
검찰 흑역사 반복, 이제 끊을 때 됐다
30년 전 검찰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재수사를 통해 결국 전직 대통령 전두환·노태우를 구속기소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검찰의 역사는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권력의 시녀가 돼 온갖 비굴한 행태를 보이다가, 시류가 바뀌면 태도가 돌변해 푸닥거리 수사를 했습니다. 이를 통해 잠깐씩이나마 정의의 사도로 변신해 과거의 부끄러운 모습을 분식하곤 했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검찰이 김 여사를 제대로 재수사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그러지 못할 테지만, 그럴 기회를 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로 뻔뻔하게 자기 임무를 내던지고 국민을 우롱한 검찰은 다시 수사를 맡을 자격이 없습니다. 김 여사의 각종 의혹은 특검을 통해 철저히 수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도 특검을 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나라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두차례 거부권 행사에 막혔던 ‘김건희 특검법’을 다음달 14일 세번째로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하기로 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특검 대신 특별감찰관 임명을 추진하겠다는데,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일상적인 대통령 친인척 감시 역할을 하는 특별감찰관이 아닙니다. 특별감찰관은 강제조사 권한도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적한 혐의를 당장 수사할 특검입니다.
‘여론조사꽃’의 10월18~19일 여론조사를 보면, 검찰의 이번 무혐의 처분에 대해 응답자의 71.3%가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으므로 특검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무혐의 처분되었으므로 끝난 일이다’라는 응답은 24.0%에 그쳤습니다(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 전화면접, 표본오차 ±3.1%p(95% 신뢰수준),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나아가 검찰은 해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 검찰의 흑역사는 다시는 반복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검찰의 권력바라기식 김건희씨 무혐의 처분은 검찰이 권력의 똥개임을 스스로 증명하면서 존재 이유를 부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검찰의 해체와 근본적 재건축, 김건희씨에 대한 특검만이 해답입니다…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분리해내겠습니다. 그래서 최고권력자의 눈치를 보면서 수사 결과로 장난치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10월17일 논평
조국혁신당은 검찰의 수사기능을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넘기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 유지만 전담하는 공소청으로 만드는 법안을 이미 발의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수사·기소를 완전 분리하는 검찰개혁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야당이 국회에서 이같은 법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국민들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시민 작가: 이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대통령 선거가 또 있잖아요.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99% 그렇게 간다고 봐야죠. 검사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우리가 알던, 수사권을 가지고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이런 정치검찰의 운명은 지금 시한부다. 저는 그렇게 보고요. 이게 하나회를 숙청해서 군부 쿠데타의 가능성을 없앴던 김영삼 대통령처럼 다음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 폐지해서 기소청으로 만듦으로써 정치검찰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제도적으로 근절하는 일을 해야 될 거라고 봐요.
진행자: 그동안 검찰개혁의 노력들은 정치검찰에 의해 좌초되지 않았습니까?
유시민 작가: 저는 국민들이 국회에 대해서 저런 짓 아예 못하게 해라, 이런 명령을 내리는 수준까지 왔다고 봐요. 여론조사를 보면 3분의 2 가까운 국민들이 검찰에 대해서 불신하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검찰 스스로 자멸의 길을 택했다, 그렇게 저는 봐요.
―10월2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
‘윤석열 검찰공화국’에서 검찰은 언제든 수십년 전으로 퇴보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그 퇴보한 모습이야말로 검찰의 원래 모습임을, 그래서 더 이상 고쳐쓸 수 없는 조직임을 이제 국민들 대다수가 확인하게 됐습니다. 검찰이 정권을 거머쥐었지만 그로 인해 검찰의 본색이 분명히 드러나고 결국 정권과 검찰이 공멸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역사의 필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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