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선을 다해 삶을 지켜온 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화장실 문 앞 널브러진 기저귀와 옷가지, 물티슈를 손에 든 채 앉아 있는 사람 등 일상의 모습이 아날로그 흑백사진 속에 담겨 있다.
시각예술가 김이든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 ‘너가 죽은 다음 날’은 가치가 폄하되기 쉬운 돌봄과 가사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지적 장애인 자매를 둔 작가는 자신의 가족과 그들이 사용한 물건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4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장애가 있는 자식을 돌봐온 어머니의 삶을 조명한다.
이렇듯 급여의 높고 낮음, 심지어는 유급과 무급을 떠나 어떤 형태로든 여성들은 항상 노동력을 제공했다. 과거든 현재든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언제 어디서나 일해온 여성들에게 주목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오는 6월 9일까지 진행하는 전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방법’은 ‘여성의 일’을 주제로, 강용석, 권용주, 김이든, 로사 로이, 방정아, 임흥순, 카위타 바타나얀쿠르, 후이팅 등 8명의 작가가 참여해 회화, 영상, 설치 등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여성 인력이 일하고 있음에도 그 노고와 헌신이 간과돼 온 현실을 문제 삼아, 여성의 일이 합당한 대가와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후이팅 작가의 ‘화이트 유니폼’은 열차용 도시락 생산 공장을 배경으로 대만일치시기에 제작된 철도여행 홍보영상과 도시락을 만드는 직원들의 모습, 인터뷰가 교차된다.
인터뷰이로 등장한 공장 관리자(남성)는 대만 철도개발 역사와 도시락 제작 변천사를 말하고, 한 남직원은 도시락을 팔았던 유년 시절 추억을 구술한다. 그 뒤로는 김을 오리고 붙여 도시락을 장식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나온다. 이를 통해 같은 일터 속에서도 서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배제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보여준다.
이와 같이 전시에서는 급속한 산업화를 겪은 동아시아 여성들의 삶과 노동을 엿볼 수 있다. 카위타 바나타얀쿠르 작가는 ‘물레’, ‘셔틀’, ‘염색’ 등 작품을 통해 방적과 방직, 염색 등 직물산업의 공정과 노동을 신체의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작가 자신이 도구이자 기계의 일부가 돼 몸을 둥글게 말아 실을 뽑고, 거꾸로 매달린 채 염색 안료에 얼굴을 담갔다 빼기도 한다. 빨강, 노랑 등 밝고 쨍한 색감의 배경과 대비를 이루듯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동작들은 기괴한 느낌마저 준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산업사회 현장 속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를 암시한다.
특히, 약소국 여성들의 현실을 담은 강용석 작가의 ‘동두천 기념사진’은 험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내몰린 전후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을 비춘다.
작품은 미군 부대가 위치한 동두천 기지촌에서 일했던 접객원들을 포착했다. 각 사진 속에는 미군과 접객원,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적극적인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미군들과 이들을 응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에는 한국전쟁 이후 강대국에 의존했던 국가 간 힘의 불균형이 여성들의 일로 이어졌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일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온 힘을 다해 삶을 지켜나간 여성들, 어찌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전시를 기획한 장수빈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사는 "전시는 우리 삶의 구성하는 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헌신했고, 앞으로도 헌신할 이들을 애정으로 바라본다. 여성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일해온 모든 이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고 전했다.
정경아기자
#경기
Copyright © 중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