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7 가방에 현찰 5천만 원… 그 시절, 소방차
1987년. 대한민국에 ‘아이돌’이라는 말이 정착하기도 전, 무대 위를 휩쓸던 세 남자가 있었다.

이상원, 김태형, 정원관. ‘소방차’는 댄스와 음악, 스타일 모두를 아우른 첫 댄스그룹이었고, ‘그녀에게 전해 주오’, ‘어젯밤 이야기’ 같은 히트곡은 그 시절을 통째로 상징했다.

이상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하루에 스케줄이 18개였다. 돈을 007 가방에 담아 부모님께 용돈으로 드렸고, 일부러 현찰 5천만 원으로 바꿔서 아버지 칠순 때 영화처럼 건넸다. 아버지께서 아무 말도 못하셨다.”
정점이었다. 인기, 수입, 팬들의 환호. 하지만 그 후로 삶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려했던 조명 뒤에는 각자의 삶이 있었다.

활동 도중 불화를 겪으며 탈퇴한 이상원은 솔로 가수로 전향했고, 이후에도 ‘잉크’의 리더, 소방차 재결성 등 굴곡 많은 길을 걸어왔다.
앨범 실패, 압박, 그리고 결국 ‘파산’
소방차 탈퇴 이후 솔로 활동과 재결합, 또 다른 그룹 활동을 이어오며 끊임없이 음악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안 좋은 일’은 앨범 실패와 함께 따라왔다.
“투자자에게 앨범이 안 되면 돈을 갚으라고 협박이 들어왔다. 10년 넘게 계속됐다”는 이상원의 고백은 그의 지난 시간을 짐작케 한다.

결국 선택한 건 개인파산. 일상조차 유지할 수 없는 압박 속에서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그가 머물렀던 곳은 5평짜리 단칸방. 이 시기를 그는 “다 포기했던 시간”이라 표현했다.

특히 지난해 법원으로부터 9880만 원의 빚에 대해 면책 결정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같은 팀이었던 김태형에게 빌린 돈까지 포함된 것이 밝혀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인의 가게에서 다시 시작한 인생

단칸방에서 지내던 어느 날, 지인 동생이 운영하던 라운지바에서 일을 시작했다.
3년을 그렇게 일하며 돈을 모았고, 이제는 자신만의 가게를 열었다. 매달 6천만 원에서 9천만 원까지 매출이 나오는 가게지만,
“순이익은 크지 않다. 겉으론 웃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졌다. 그저 버티고 있다”고 말한다.

여전히 ‘회복 중’이다. 정식으로 재기하기 위해 내놓은 앨범은 교통사고로 중단됐고, 파산신청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때 빌린 돈 중 일부는 같은 멤버 김태형에게 받은 것이었다. 오해가 생길까 말조차 아끼던 사이, 결국 언론을 통해 사실이 알려졌고 멤버들은 함께 기자들 앞에 섰다.
“우리는 여전히, 소방차입니다”
28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네 멤버. 이상원, 김태형, 정원관, 그리고 도건우. 이들은 “진짜 사이가 나빴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팬들을 향해 말한다.“
소방차는 우리 자부심이다. 언제든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무대에 설 준비가 돼 있다.”

새 앨범을 낼 계획은 없지만, 이상원이 솔로 앨범을 낸다면 김태형이 매니지먼트를 맡겠다는 의지도 전해졌다.
시간이 흘러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 흐르는 ‘소방차’라는 이름은 여전히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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