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만 있으면 15초만에 상세페이지 뚝딱, 삼성전자 관두고 만든 것

2번 연속 CES 혁신상 받은 한국 스타트업 스튜디오랩

강성훈(40) 대표, 이재영(41) 이사 등 삼성전자 출신을 주축으로 한 한국 스타트업 ‘스튜디오랩’이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서 2년 연속 혁신상 영예를 안았다.

자동 생성 상세페이지 AI 서비스 '젠시', AI 사진 로봇 '젠시PB'를 만든 강성훈 스튜디오랩 대표. /더비비드 [출처] 옷만 있으면 15초만에 상세페이지 뚝딱, 삼성전자 관두고 만든 것|작성자 경제 하티스트

CES는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행사로, 전세계 약 150개국에서 기업 4000~5000곳이 참여한다. CES에 출품된 제품과 서비스 가운데 세상을 바꿀 기술을 선별해 ‘혁신상’을 수여한다. 행사가 열리기 전 수상자를 선정하고, 1월 행사가 열릴 때 트로피 등을 전달한다.

스튜디오랩은 작년 상세페이지 자동 생성 AI ‘셀러캔버스(현 젠시)’로 인공지능(AI)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사진 촬영·편집·인화까지 알아서 하는 AI 사진 로봇 ‘젠시PB’로 로보틱스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IT 기업이 총출동하는 CES에서 스튜디오랩이 2년 연속 혁신상을 받은 이유가 뭘까. 강성훈(40) 대표를 만나 창업 과정과 경쟁력을 들었다.

◇기술을 이해하는 문과생 마케터

강성훈 대표가 코딩을 배우고서 처음 만든 1인 방탈출 게임. 영문화해서 글로벌 출시도 했다. /강성훈 대표 제공

경희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강 대표는 군대 선임에게 배운 코딩 덕분에 ‘기술을 이해하는 문과생’이었다. 재학 시절 크고 작은 애플리케이션을 여럿 만들었다. 한번은 혼자서 하는 온라인 방탈출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용자수가 10만명을 넘겼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임이 소개되기도 하고, 유튜브에는 제가 만든 게임 공략법을 다룬 영상도 올라오더라고요. 그때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 내는 기쁨과 성취’를 태어나서 처음 느껴 봤습니다.”

원래 무언가를 만들고 도전하는 데 관심 있던 성격은 아니었다. 군대가 그의 인생 전환점이었다. “군대에서 만난 선후배, 동기가 전부 쉬는 시간에 TV도 안 보고 자기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때부터 ‘인생의 목표’를 찾기 위해 살았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뭐지?’, ‘내가 가장 시간과 노력을 쏟은 건 뭐였지?’라는 고민을 늘 했어요.”

삼성전자 스타트업 육성·지원 조직에 있을 때 이재영 이사와 강성훈 대표 모습. /더비비드

2010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후에도, 계속해서 일을 벌였다. 하고 싶은 일, 재밌는 일은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갤럭시 워치에서 사용하는 라이브 월페이퍼를 20개 정도 만들어서 앱스토어에 올렸어요. 다운로드 1등도 하고 매출도 냈죠. 지금 스튜디오랩의 공동창업자인 이재영 이사와는 무인 대여 스튜디오도 운영했어요. 인테리어할 때 직접 목재를 사서 가구와 소품을 만들었는데요. 반응이 좋아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팔아본 적도 있어요.”

사내에서도 강 대표는 ‘기술을 이해하는 마케터’로 통했다. “새로운 기술을 마케팅에 접목하는 TF(태스크포스)팀이 생길 때마다 차출되곤 했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걱정하기보단 즐기는 편이었거든요.”

◇집에서 찾는 창업의 실마리

강 대표가 삼성전자 재직 시절 글로벌 마케팅 담당일 때 모습. /강성훈 대표 제공

갤럭시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거쳐 2016년부터는 스타트업 육성, 지원 조직에서 일했다. 이때 인연으로 세상에 없던 걸 만드는 스타트업의 매력에 푹 빠졌다. “프로그램 기획부터 운영까지 모두 경험했는데요. 수많은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고, 스타트업이 다루는 문제와 해결방식을 배웠습니다. 저는 삼성이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작은 역할을 맡고 있는데, 스타트업은 크기는 작지만,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만들어내는 조직이더라고요. 멋져 보였어요.”

카이스트 정보경영 석사과정에 입학하는 등 창업의 욕심을 키워나가고 있을 무렵,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인공지능’이란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하던 2020년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30대 중반까지도 세탁기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어요. 섬유 재질에 따라 물의 양이나 세제 종류를 달리 넣어야 하는데, 저는 표준 버튼 밖에 누를 줄 몰랐거든요. 다른 의미로 충격이었어요. 인공지능 시대에 세탁기가 옷 하나 구분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요. 옷을 넣으면 알아서 종류와 옷감 등을 분석해서 세탁 코스를 설정해주는 AI가 있으면 어떨까 싶었죠.”

젠시와 젠시PB에 대해 설명 중인 강 대표. /더비비드

마침 삼성전자에는 사내벤처를 육성·지원하는 제도인 ‘C랩’이 있었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그에게 또 다른 기회가 보였다. 강 대표는 ‘섬유 재질과 의류 분석 솔루션’ 개발에 나섰고, 이 아이디어는 2020년 1월 C랩에 선정됐다.

사내벤처를 시작하고 꼬박 1년은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데 써야 했다. 세탁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1년간 기초 실력을 다지는 동안 삼성전자는 강 대표에게 든든한 뒷배가 됐다. “사내벤처가 스핀오프를 하면 투자를 해주고, 5년 내 삼성전자로 복귀할 수 있어요.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걸 전적으로 지원한다는 의미입니다.”

◇15초 만에 의류 상품의 상세페이지 뚝딱 완성

상세페이지 자동 생성 AI 젠시를 이용해 상세페이지를 만든 예시. /스튜디오랩

2021년 5월 분사하며 이재영 이사와 함께 퇴사했다. 스튜디오랩이 만든 ‘의류 분석 AI 서비스’를 패션 커머스에서 활용할 방법을 구상했다. “회사명과 같은 이름으로 사진 촬영 스튜디오를 만들었어요. 소상공인 판매자에게 사업하는 데 뭐가 가장 어려운지 물었습니다. 모델 사진 촬영하고 상세페이지 만드는 걸 꼽더라고요.”

제품 사진 찍는 것부터 일이다. 모델이 일일이 옷을 갈아입으면서 여러 구도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전신샷, 바스트샷, 클로즈업 등 찍을 사진이 수천, 수만장이다. 쓸만한 사진을 추려서 보정하고 그제야 상세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상세페이지에 들어갈 마케팅 문구와 제품 정보 구성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저희가 C랩에서 만든 의류 재질·특성 분석 솔루션을 가다듬으면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시간,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나아가 온라인 커머스를 혁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사업의 방향성에 확신을 갖게 됐죠.”

상세페이지 자동 생성 AI 젠시를 이용해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과정. /스튜디오랩

의상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50명을 고용해 의류 특징과 마케팅 문구 등을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저마다 다른 옷에 대한 특징을 모두 뽑아내서 정리했습니다. 이 특징을 사진과 연결해서, AI가 사진만 보고도 특징을 모두 뽑아낼 수 있도록 학습시켰죠.”

2024년 초 셀러캔버스를 출시했다. 지금은 이름을 젠시로 바꿨다. 업로드된 옷 사진을 분석해 디자인, 배열, 문장까지 포함한 상세페이지를 15초 만에 자동으로 만든다. AI가 의류 사진을 보고 옷의 종류, 재질, 색상은 물론이고 단추와 옷깃 등 디테일까지 모두 분석한다. SSaS(SQL Server Analysis services)라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거나 설치할 필요 없이,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바로 사용한다. “젠시가 만들어내는 상세페이지는 크게 수정할 것이 없을 정도로, 전문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2024년 CES 인공지능 분야 최고혁신상을 받은 이유 아닐까 싶습니다.”

LG패션, W컨셉, 신세계쇼핑, GS리테일 뿐만 아니라 많은 마케팅 대행사와 소상공인이 젠시의 고객이다. “보통 마케팅 담당자가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데에는 2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젠시를 사용하면 검수까지 포함해도 10분이면 상세페이지를 완성할 수 있어요. 최근 LG패션에서 ‘평균 2~3시간 소요되던 상세페이지 제작시간이 평균 10분으로 단축돼서 업무 효율성이 2배 가까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3일에 상세페이지 100개를 만든다고 하는군요.”

젠시PB도 의류 분석 AI에서 출발한 로봇이다. 로봇 자율주행 기술, 로봇암, 카메라 등이 AI와 연결돼있다. AI 로봇이 의류의 종류, 섬유 소재, 디자인 등을 분석한 후 최고의 각도와 구도를 찾아 사진을 찍는다. “젠시PB는 아직 PoC 단계에 있습니다. 수익 모델이 정립되면 시장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PoC는 기존 시장에 없었던 신기술을 도입하기 전 이를 검증하는 과정을 말한다.

◇창업은 내가 사는 이유

강성훈 스튜디오랩 대표. 앞으로 커머스 영역 전반으로 진출할 예정이다. /더비비드

지금은 옷에 집중하고 있지만 점점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내년 초 신발, 가방, 주얼리 등 패션 영역 전반으로 진출할 예정이에요. 이후엔 화장품, 주류 영역까지 점차 커질 거예요. 해외 진출을 목표로 내년 1분기 중 글로벌향 자동생성 상세페이지를 개발할 계획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던 강 대표는 이제 그 답을 안다. “창업은 세상에 없던 걸 만들기 위해,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에 계속해서 부딪혀가는 과정입니다. 제가 사는 이유와도 마찬가지예요. 저와 성향이 같은 분이라면 누구나 창업의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연주 에디터, 김지은 외부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