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고리 3·4호기 안전설비 무단 변경 파문…원안위 해명에 더 커진 의혹
설계 변경 절차 위반 의혹…UAE 수출 원전 안전 문제로 확산 가능성
원안위 ‘경미한 사항’ 처리, 전문가 “안전 규정 위반” 지적
국내 주요 원전의 핵심 안전설비가 설계와 다르게 시공된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리 3,4호기에서 무단으로 변경된 설계가 이후 건설된 원전들에도 그대로 적용돼 총 6개 원전에 영향을 미쳤다. 원자로 냉각에 필수적인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의 전원이 비상디젤발전기에서 축전지로 바뀌면서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하지만 원전 안전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이를 ‘경미한 사항’으로 처리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설계가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된 원전에도 적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제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한국전력기술과 한국수력원자력 등에서 원전 설계·검증 업무를 담당했던 정종한 원자력발전기술사는 축전지는 비상디젤발전기와 달리 제한된 시간 동안만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장기적인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축전지 전원 의존의 위험성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사례에서 드러난 바 있다.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는 지진과 해일로 비상디젤발전기가 모두 정지된 후 축전지로 원자로를 냉각시켰다. 하지만 축전지의 전력이 모두 소진되고 더 이상의 전원 공급이 불가능해지면서 원자로 냉각 기능이 상실됐다. 결국 원자로 노심(원자로 내부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리고 원자로 건물 상부가 파괴되면서 방사능이 대기로 방출되는 참사로 이어졌다.
원안위는 이러한 설계 변경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고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FSAR)를 수정했다. 당초 FSAR에는 터빈구동 보조급수펌프의 전원이 비상디젤발전기로 기재돼 있었으나, 실제로는 축전지로 변경돼 시공됐다. 원안위는 이를 단순한 ‘오기(誤記)’로 처리해 ‘경미한 사항 변경’으로 넘겼다.
이 의원은 “원자로 안전과 직결된 중대한 설계 변경을 단순 오기로 처리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원자력안전 옴부즈만 자료에서 드러난 원자로 냉각 영향 평가 설계결과물에 대한 의혹이다. 해당 결과물은 축전지 전원 사용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지만, 전원 구성 변경을 위한 케이블 최초 설치시점인 2011년 4월18일 이전이 아닌 2021년 8월31일부터 2022년 4월7일 사이에 뒤늦게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설계 변경 당시 안전성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신고리 3,4호기에서 시작된 설계 변경은 후속 원전 건설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도 같은 설계를 적용해 건설된 것으로 확인돼, 결과적으로 총 6개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UAE에 수출된 원전에도 같은 설계가 적용됐을 가능성이 있어 국제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의원은 “현재 가동 중인 해당 원전들의 안전성을 즉각 재검토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원안위는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조사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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