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 인도 해군은 증가하는 중국의 해양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해 잠수함 전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인도 해군은 노후화된 러시아제 잠수함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죠.
인도양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는 프로젝트-75(I)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무려 50억 달러(약 7조원)를 투입해 최신 공기불요추진(AIP) 시스템을 탑재한 디젤-전기 잠수함 6척을 확보하겠다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인도 해군 관계자 "우리는 세계 최고의 잠수함을 원한다"라는 이 말에 전 세계 방산업체들이 군침을 흘렸습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모두가 이 거대한 파이의 한 조각을 차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까다로운 조건과 경쟁자들의 줄 탈락쇼
그런데 인도의 요구사항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30년간 무제한 보증을 제공하라", "모든 기술을 이전하라", "인도에서 제작하라"... 이런 조건에 많은 업체들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2021년, 마침내 정식 제안요청서(RFP)가 발행되었지만, 까다로운 조건 앞에 프랑스와 러시아는 곧바로 손을 들어버렸습니다.
"AIP 시스템에 실전 운용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이들에게 너무 높은 장벽이었기 때문이죠.
한국과 독일의 한판 승부...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
이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업체는 우리나라의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과 독일의 TKMS였습니다.
하지만 2022년 초, 또 다른 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인도가 "잠수함의 성능과 결함에 30년간 무제한 보증"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독일 TKMS는 "말도 안되는 조건"이라며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한화오션만 남게 되자, 인도 정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경쟁 없는 입찰을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요구사항을 수정해 다시 경쟁을 유도할 것인가?"
그리고 2022년 8월, 극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인도 국방부는 프로젝트-75(I)의 요구사항 변경을 승인했습니다.
"30년간 무제한 보증" 조항이 삭제되고, 해외 기업의 책임 범위도 "자사가 맡은 작업 범위로만" 제한됐습니다.

독일 TKMS는 당연히 다시 입찰에 뛰어들었고, 심지어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까지 나서서 "인도 방문 중 모디 총리와 협의했다"며 수주전에 불을 지폈습니다.
한국의 철수와 독일의 승리
흥미롭게도 이 시점에서 한국 업체들은 인도 사업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고 판단하고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아무리 큰 계약이라도 손해 보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었죠.
2023년 중반, 독일 TKMS와 스페인 나반티아만이 경쟁자로 남았습니다.
독일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운용 중인 검증된 214급 잠수함을, 스페인은 아직 실전 배치되지 않은 혁신적인 S-80 플러스 잠수함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초, 로이터 통신이 폭탄 소식을 전했습니다.
"스페인의 AIP 시스템이 인도 해군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했다. 독일 TKMS가 유일한 생존자로 남았다."
스페인 측은 "우리가 인도 해군에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육상에서 작동하는 AIP 시스템 시연뿐이었다"며 씁쓸하게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승자의 과제와 미래의 도전
이제 TKMS는 45일 이내에 이의 제기가 없으면 정식 계약을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기술적 도전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독일이 제안할 것으로 보이는 돌핀급 잠수함의 탄창 용량은 20발 정도로, 인도가 요구하는 30발에 미치지 못합니다.
선체를 대형화하지 않고는 이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계약 체결 후 7년이라는 납기일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인도의 방산 프로젝트는 악명 높은 지연으로 유명합니다.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과 복잡한 기술 이전 요구는 이미 수많은 외국 업체들을 좌절시켰죠.
한국 방산의 냉정한 현실 인식
이번 사례는 한국 방산업체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KSS-III 기반의 한국 잠수함 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지만, 국제 방산시장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닙니다.
외교, 정치, 경제적 실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치열한 전장이죠.
어쩌면 한화오션의 철수 결정은 오히려 현명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인도의 이전 잠수함 사업인 스콜펜급 6척 건조 프로젝트는 예산 초과와 10년 이상의 지연으로 악명이 높았으니까요.
"지는 싸움보다 안 하는 싸움이 낫다"는 옛말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결국 이 에피소드는 세계 방산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인도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비현실적인 요구사항으로 많은 경쟁자들을 스스로 밀어냈고, 남은 유일한 업체는 이제 인도의 까다로운 방산 생태계에서 생존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과연 독일 TKMS는 이 험난한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앞으로도 인도양의 이 흥미진진한 해저 드라마를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