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수사 중단·증원 철회부터"… 한발도 안 물러난 의사들
"전공의들 망신주고 겁박
정부 정책 잘못 인정하라"
같은 주장 반복 책임 떠넘겨
한동훈 막판까지 읍소 불구
추석 전 협의체 끝내 좌초
"아직 대화의 문 열려있다"
명절 후 다시 참여 요청할듯
◆ 의정 갈등 ◆
의료계가 의정 갈등 해결을 논의할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는 것을 최종 거부했다. 8개 의사단체는 13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의료계와 대화를 바란다면 정부는 전공의 사직 관련 수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입장문 발표에는 대한의사협회(의협)·의협 대의원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대한의학회 등이 뜻을 모았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협의체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최 대변인은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최 대변인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전날 '지금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고, 협의체가 그 통로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데 대해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는 현시점에 협의체 참여는 시기상조라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의료계는 전날 전공의 대표가 전공의 집단사직 공모 협의 관련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 출석한 데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최 대변인은 "전쟁 중에도 협상이 거론되면 총구를 거두는데, 정부는 아무 죄 없는 전공의들을 경찰서로 불러 망신을 주고 겁박한다"며 "이는 의료계에 대한 우롱"이라고 비난했다.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지연되자 한 대표는 이날 의료계를 향해 자신의 말을 믿어 달라는 취지로 설득 작업에 안간힘을 썼다. 한 대표는 의료단체 대표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리며 일일이 호소하기도 했다. 그 결과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에 부정적이었던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일부 의료단체가 참여 문제를 놓고 공감을 표하는 등 미묘한 기류 변화가 포착됐다. 이날 오후 한때 협의체 출범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지기도 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어제 오후까지는 의협 반응이 굉장히 부정적이었다"며 "계속 설득하고 통화한 끝에 오늘 아침에 '아직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는 답을 받았다.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긍정적으로 바뀐 기류를 느끼긴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의료단체 8곳은 협의 결과 '정부 태도 변화가 우선'이라고 협의체 참여 거부를 선언하고 말았다.
앞서 한 대표는 이날 서울 관악구 상록지역아동복지종합타운에서 도시락 봉사활동을 마친 다음 기자들과 만나 "전제조건과 의제 제한 없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만 생각하고 빨리 모이자는 호소를 드린다"고 밝혔다.
특히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 사태에 누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느냐'고 묻자 "첫 번째 책임은 전공의에게 있다"고 답한 뒤 의료계의 반발이 커지자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전방위로 진화 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제가 의료계 주요 단체 분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여러 고민이 있겠지만 결정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며 "계속 설득할 것이고 좋은 결정을 해서 이 상황을 해결하는 출발을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연휴 중에도 의료계 단체와 접촉해 협의체 참석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협의체 구성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의 책임이 윤석열 정부에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날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전날 한 총리가 '의료대란 때문에 국민들이 죽어 간다'는 지적에 "가짜뉴스"라고 대응한 점을 언급하며 "윤석열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이니 여야의정 협의체가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휘청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와중에 여당마저 '야당만 나서주면 협의체를 할 수 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의료대란을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정부·여당"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와 의료계가 다시 기싸움에 돌입하면서 결국 관건은 추석 연휴 기간에 얼마나 의료 공백이 발생하느냐에 달렸다는 자조적 반응도 나왔다.
정부가 지난 11일부터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주간'을 운영해 대비에 나서고 있지만, 의료계는 연휴 기간 중 하루 최대 1만명 정도가 제대로 응급 치료를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응급의료 대란이 현실화할 경우 정부 책임론이 더 커질 수 있는 반면 큰 문제 없이 지나갈 경우 오히려 정부가 좀 더 시간을 벌고 의료개혁을 추진할 여지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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