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긴장 완화부터” vs 이란 “이스라엘 범죄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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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이란 정상이 전화 통화를 통해 전운이 짙어지는 중동 정세를 안정시킬 해법에 관해 논의했다.
프랑스는 '긴장 완화가 최우선'이란 입장을 내비친 반면 이란은 '이스라엘의 범죄 종식이 먼저'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별다른 성과 없이 평행선만 달렸다.
13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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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평행선 달리며 이렇다 할 성과 못 내
프랑스와 이란 정상이 전화 통화를 통해 전운이 짙어지는 중동 정세를 안정시킬 해법에 관해 논의했다. 프랑스는 ‘긴장 완화가 최우선’이란 입장을 내비친 반면 이란은 ‘이스라엘의 범죄 종식이 먼저’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별다른 성과 없이 평행선만 달렸다.
프랑스는 중동의 그 어떤 나라보다 레바논에 관심이 많다. 16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된 레바논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 패전한 오스만 제국이 해체됨과 동시에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위임통치란 식민지배와는 다른 개념으로 1차대전 종전의 결과 국제연맹이 탄생하며 생겨났다. 1차대전 승전국들이 국제연맹의 위임을 받아 아직 자치 능력이 부족한 민족을 다스리며 장차 독립국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한다. 1차대전 후 옛 오스만 제국의 영토 가운데 레바논과 시리아는 프랑스가, 팔레스타인과 이라크는 영국이 각각 위임통치를 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위임통치의 결과로 레바논은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프랑스풍 건물이 많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하며 레바논에 대한 프랑스의 장악력은 급속히 약화했다. 결국 2차대전 도중인 1943년 레바논은 독립을 선언하고 프랑스의 위임통치에서 벗어났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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