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코드 등재를 둘러싼 찬반 의견을 정리했습니다.
국내 게임 기업이 위태롭다. 중국의 빠른 성장세로 글로벌 점유율이 축소되는 데다 중국산 게임의 한국 시장 침투 속도가 빨라지면서 내수시장도 이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지원이 부족하고 규제도 늘어나면서 게임 산업이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5위 규모인 국내 게임 시장이 ‘게임 질병화’를 견딜 체급이 되는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세계 1위 미국·세계 3위 일본, 도입 '신중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시장을 가진 미국은 게임을 직접 규제하지 않고 기업이나 가정의 자율규제에 맡긴다. 게임을 콘텐츠이자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으로 보고 양육의 문제로 인식한 결과다.
미국의 게임 질병코드에 대한 입장은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주관하는 정신질환진단및통계편람(DSM)에서 나타난다. DSM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계의 진단 분류로 꼽힌다. 두 체계는 상호보완하고 있지만 DSM은 게임 이용장애를 정식 장애로 분류하지 않는다. 병리학적 성격을 확립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시장 3위인 게임강국 일본은 게임 질병코드에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의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국내처럼 ICD-11 개정을 논의했지만 부처별로 대처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중독계몽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한편 중독대책기관을 설치·운영하는 방식이다. 또 중독에 대한 교사용 지도 자료와 계몽 자료를 배포하고 중독 성향이 있는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한편,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중독예방교실을 운영하며 사전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예방 강화는 자국을 콘텐츠 강국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원책의 일환으로 읽힌다. 일본은 2010년부터 '쿨재팬' 전략을 시행했으며 닌텐도, 소니, 스퀘어에닉스 등 회사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에 따라 일본 게임 시장은 연평균 4.9%의 성장률을 보이며 2028년 매출이 219억달러(약 32조원)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게임 집중육성...가파른 성장세
중국은 WHO 회원국 중 게임 질병코드에 유일하게 찬성 입장을 보인 나라로 알려졌다. 2019년 7월 중국 국민건강위원회는 전문가집단을 조직해 합의문을 발표하며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게임을 하면 중국인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에 노출되기 쉽고, 게임이 도전·저항·혁명 등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이전부터 게임을 ‘전자 헤로인’으로 부르며 강력한 규제를 시행했다.
중국이 규제강화에도 미국과 함께 글로벌 최대 게임 시장을 보유한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삼일회계법인의 보고서 ‘게임 비즈니스의 글로벌 동향과 기회’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은 근소한 차이로 미국을 따돌리며 게임 매출 1위를 차지했다. 향후 중국 게임 시장의 수익성은 2023년 이후 2배 이상 증가하며 미국과 격차를 벌릴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게임 시장의 절대강국이 된 것은 규제와 진흥책을 모두 시행한 결과로 관측된다. 중국 정부는 2009년 ‘문화산업진흥계획안’을 수립해 문화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승격했다. 이에 따라 게임 수출과 금융지원 등의 정책을 폈다. 2012년에는 ‘12차 5개년 문화산업 배증계획’으로 2015년까지 게임 산업 규모를 2000억위안(약 40조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나아가 시진핑 정부는 ‘인터넷 플러스’ 정책의 핵심 분야로 게임 산업을 중점 육성했다. 지난해 중국 게임의 해외 매출이 전년 대비 13.39% 성장할 수 있던 배경이다. 중국 퍼블리셔들이 풍부한 연구개발(R&D)과 운영경험을 바탕으로 현지화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게임 시장 침투율이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입시 3년간 11조원 산업 위축 우려
중국은 압도적인 세계 최대 시장과 정부의 전방위 지원으로 게임 질병코드 도입에도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 대규모 소비층은 물론 활발한 생태계를 확보한 영향도 있다. 활발한 시장이 강한 규제를 소화할 수 있는 체급과 체력을 갖춘 것이다.
국내는 어떨까. 올 초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5위인 한국의 지난해 게임 시장 규모는 134억달러(약 19조원)로 중국(1236억달러, 약 179조원)의 9분의1 수준이다. 게임 질병화 규제를 도입하기에는 시장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성급한 도입이 산업 위축과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국내 게임 산업은 PC와 모바일게임에 편중된 구조, 중국 게임 부상 등 글로벌 경쟁 격화 등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신작 부재와 글로벌화 난항 등으로 전반적인 침체기를 겪었다. 국내 게임 사업은 콘텐츠 수출의 3분의1을 담당하는 핵심 수출 분야다. 게임 산업의 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진흥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학계에 따르면 게임 중독에 질병코드를 부여할 경우 3년 동안 최대 11조원 규모의 게임 산업 위축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대, 정부의 규제 도입 또는 강화 등으로 게임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질병코드를 도입할 경우 2년간 총 게임 산업에 8조8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12조3623억원 규모의 총생산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또 약 8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분석했다.
조아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