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와 동료가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이유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부장님한테 그건 안 되는 거라고 몇 번을 설명했는데도 다음날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하는 거 있지? 정말 속 터져.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아니면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보고하던 중에 사장님이 예산 계획서를 보자고 하셔서 용 대리한테 급하게 정리한 내역을 달라고 시켰어. 그랬더니 자기가 보던 엑셀을 그냥 프린트해서 가져오는 거야! 깨알 같은 글자는 심지어 보이지도 않았다고! 사장님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리더라니깐.”
직장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상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걸까요? 이게 차이 중에서 가장 무시무시하다는 세대 차이인가요? 아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나이가 젊은 부서장과 나이 많은 팀원 간에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경력의 차이가 문제인 건가요? 아니면 직급 차이가 벌어지면 갑자기 마술처럼 말도 안 통하게 되는 건가요?
사람들은 똑같은 단어를 보고 다른 해석을 합니다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가 설명한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 개념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소쉬르는 인간 언어를 기호sign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언어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나뉩니다. 기표는 기호의 겉모습, 즉 음성으로 표현된 모습을 의미하고, 기의는 담긴 의미를 말합니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간단한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해요.'라는 단어의 철자와 [salanghaeyo : 사랑해요]라는 발음은 기표이고, ‘사랑해요’라는 구체적 대상은 기의입니다.
문제는 기표와 기의의 연결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단어를 들어도 정확하게 같은 의미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기표와 기의의 연결은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자의적, 즉 제각각으로 이뤄지거든요. 이를 기호의 임의성arbitrary nature of sign이라고 합니다.
'사랑해요’라고 적힌 기표(signifier)는 한글을 배운 사람이면 모두 똑같이 읽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갑자기 읽어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아요. 사랑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나, 글로만 연애를 배운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모두 [salanghaeyo : 사랑해요]라고 읽어요.
하지만 이 단어를 보았을 때 연결되는 기의(signified)는 모두 다릅니다. 최근 사랑을 시작한 연인은 핑크빛의 몽글몽글한, 긍정적 의미와 연결될 것이고, 스토커에게 괴롭힘을 당해 숨어 사는 여자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부정적 이미지일 것입니다.
게다가 어떤 사람은 ‘사랑’이 아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심장이 두근거리도록 설레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흔한 ‘너는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대사가 나오는 거죠. 많은 경우 ‘사랑’의 기의(signified)가 달라서 생기는 오해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완전하게 동일한 단어는 없습니다
이제 왜 직장에서 멀쩡한 사람들끼리 그토록 말이 안 통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은 두 사람의 기표와 기의가 서로 달라서 생기는 대표적인 갈등 상황입니다.
“앤드류 님, 이번 3/4분기 매출 현황 간단하게 정리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포스트잇을 내밀며) 제이 님(팀장), 여기 있습니다.”
"이게 뭐죠?”
“아까 말씀하신 매출 현황입니다."
“포스트잇에?”
“네, 간단하게 정리해달라고 하셔서 한눈에 보이도록 숫자 위주로 메모했습니다.”
“이거 로건 님(본부장)께 드려야 하는데요?”
“아…. 다시 해드릴까요?”
제이 님과 앤드류 님이 생각하는 ‘간단하게 정리하다’라는 의미(기의, signified)가 전혀 다른 걸 알 수 있습니다.
제이 님에게 ‘간단하게 정리하다’의 의미는 ① 전체 매출 현황, 지난 분기 대비 증감 비교, 세부 주요 항목별 추이를 ② 한 페이지에 ③ 숫자 위주로 정리해달라는 뜻입니다. ④ 자신의 상사에게 보고할 수 있도록요.
앤드류 님은 3/4분기 매출 현황의 주요 숫자(전체 매출 숫자, 지난 분기 대비 증감 비교)를 알려달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간단하게'라는 단어가 두 사람에게 완전히 다르죠.
이래서 모호하게 말하면 오해가 생겨나는 겁니다. 특히,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을 서로 요청하고 요구받는 직장에서는 오해의 비용이 꽤 비쌉니다.
동일한 단어를 보고
완전히 동일한 뜻을 떠올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을
‘기호의 임의성’이라고 합니다.
“사과 같은 얼굴”이라는 말을 듣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서 특정 동요를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 머릿속과 똑같이
해석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자주 화를 냅니다.
단순하게 효율적으로!
일 잘하는 사람들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