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새 차 기스라고?" GM대우의 처음이자 마지막 SUV의 진실

차명 '윈스톰'은 승리를 뜻하는 'Win'과 폭풍을 뜻하는 'Storm'의 합성어로, 그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간다는 의미와 함께 암울했던 회사 분위기를 떨쳐내고자 했던 GM 대우의 의지와 기대를 반영했습니다. 여담으로 윈스톰과 함께 고민하던 이름이 '캡티바'였다고 하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 이름은 수출형에만 쓰이다 지금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됐죠.

완전히 GM에 편입된 이후 개발된 차량인 만큼 외관은 당시 GM의 차세대 디자인 언어를 반영한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컨셉트카 S3X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이식해 SUV다운 강인함과 날렵함을 동시에 갖춘 생김새였는데, 굵직한 선과 면을 앞세워 안정감을 주면서도 원형으로 처리한 안개등이나 스포츠카에서나 볼법한 프론트 펜더의 방열구, 그것을 기점으로 솟구치는 캐릭터 라인 같은 디테일은 경쾌함을 더하면서 기존의 고리타분한 SUV와는 결을 달리하는 이 차만의 분위기를 완성했습니다. 견고한 디자인의 대구경 알루미늄 휠과 트렌드였던 듀얼 머플러로 마무리해 스포티한 느낌을 연출한 것도 멋스러웠고요.

앞서 출시된 중형 세단 '토스카'와 마찬가지로 좌우대칭을 이룬 실내는 심플하면서도 도시적인 느낌을 강조했습니다. 짙은 그레이 컬러의 내장재와 알루미늄 장식이 외관의 젊은 감각을 받아줬고, 고광택 우드 그레인을 더해 약간의 중후함을 더했습니다. 직물과 다크 그레이를 기본으로 포근한 베이지 등 다양한 색상의 시트 컬러를 준비해 선택의 폭을 넓힌 것도 좋았고, 연두빛 조명도 야간 운행 시 피로감이 적었어요.

GM의 여러 차종이 공유했던 스티어링 휠은 픽업 트럭과도 돌려쓰느라 직경이 크고 디자인도 투박했지만, SUV인 윈스톰과는 나름 잘 어울렸습니다.

여기에 당시만 해도 동급 최고 수준이었던 후방 카메라를 품은 7인치 DVD 내비게이션과 평균 연비, 주행 가능 거리 계산 기능을 제공하는 트립 컴퓨터 등 차급에 어울리는 각종 고급 사양을 마련한 점이 돋보였고, 특히 럭셔리 SUV나 미니밴에 있을 법한 뒷좌석 전용 DVD 시스템을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 역시 눈에 띄는 부분이었죠.

공간 역시 만족스러웠습니다. 싼타페 CM 대비 전장과 폭만 작을 뿐 휠 베이스는 오히려 길었기에 레그룸과 헤드룸이 충분했고, 넉넉한 트렁크와 곳곳에 마련된 깨알같은 수납공간으로 실용성도 훌륭했습니다. 3열 시트도 성인이 장시간을 이동하기에는 부족했지만, 체구가 작은 아이들은 무리없이 태울 수 있었어요. 하지만 고급 사양은 챙겼으면서 정작 뒷좌석의 가족을 위해 꼭 필요한 열선 시트나 에어벤트 같은 편의장비가 누락된 점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이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송풍구 하나로 앞좌석과 뒷좌석의 온도 차이가 꽤나 크게 벌어지기도 하니까요.

파워트레인은 이탈리아의 디젤엔진 전문업체 'VM모토리'가 개발한 4기통 2.0L 디젤에 5단 수동 및 아이신 5단 자동변속기가 매칭됐습니다. 여기에 전륜구동 사양을 기본으로 토크 온 디멘드 방식의 4륜구동 시스템을 옵션으로 제공했어요. 처음 도전하는 장르였음에도 GM의 플랫폼과 SUV 개발 노하우가 반영된 모델인 만큼 2세대로 거듭난 신형 싼타페와 비교해도 주행 감각면에서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싼타페 같은 경쟁차에는 최고급형에나 가야 선택할 수 있었던 '셀프 레벨라이저'를 전 트림 기본 사양으로 갖춘 것도 돋보이는 장점 중 하나였죠. 트렁크에 무거운 짐을 적재하거나 3열까지 승객을 꽉꽉 채워 탔을 때 차체 뒤쪽이 가라앉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인데, 울퉁불퉁한 길을 달릴 때 뿐만 아니라 온로드 주행 안정성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는 기능입니다.

또 국산차 중 처음으로 순정 DPF가 장착되어 'EURO4'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시킨다는 점도 분명한 장점이었습니다. 덕분에 비슷한 연식의 5등급 경유차들과 달리 배출가스 제한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어요.

대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겠죠? 불과 작년까지는 조기 폐차 지원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차로의 기변을 망설이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올해 2024년부터는 DPF 장착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4등급 차량이 조기 폐차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서 오너들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을 것 같네요.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도 물론 맞지만, 오래된 경유차들은 오래 소유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솔직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없던 멋들어진 디자인의 신차들을 구경하는 신선함과 재미도 있지만 나이 든 차들과 함께 달릴 때의 즐거움과 애틋함도 분명 있는데, 단지 디젤 엔진을 품었다는 이유로 배척받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게 좀 섭섭할 때가 있더라고요.

제가 타본 모델은 2006년식 윈스톰 7인승 LTX 모델로 DVD 내비게이션과 4륜구동 시스템을 포함한 모든 옵션이 포함된 차량입니다. 차분하면서도 힘있는 디자인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봐도 깔끔한데요. 플래그 타입의 사이드미러와 LED 방향지시등 덕분인지 연식에 비해 오래돼 보인다는 느낌이 딱히 안 들더라고요.

SUV라는 형태도 그렇고 느낌도 뭔가 멧돼지 같은 게 개인적으로 쉐보레 보타이보다 대우 로고가 더 잘 어울리는 몇 안 되는 차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돼지코를 닮은 대우 로고를 바꾸는 드레스업이 유행했는데, 윈스톤 만큼은 대우 로고 붙어있는 차들이 꽤 있죠. 그때 같은 처지였던 토스카나 라세티 프리미어는 지금 순정 상태인 차들이 참 귀한데 말이에요.

마치 엔진을 품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만 같은 요즘의 페이크 머플러 디자인만 보다가 이런 2,000cc에도 정성스럽게 달아놓은 듀얼 머플러를 보고 있으니 배기구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이때의 낭만이 참 그립네요.

특히 '플립 업 글래스' 기능을 갖춘 것이 독특했는데요. 실제로 오너분도 트렁크를 여는 것보다 이 후면 유리만 간단하게 열어 물건을 꺼내는 일이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항상 캠핑 짐이 그득하게 실려 있어서 그런 것 같지만요. 참고로 묵직한 짐들이 이렇게나 들어차 있는데도 차체가 수평을 유지하는 건 앞서 소개한 셀프 레벨라이저가 열일하는 덕분입니다.

실내도 둘러봤습니다. 이 차는 정말 보기 드문 카탈로그에서나 보던 풀옵션 사양이었는데요. 아쉽게도 고장으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음성이식 기능까지 내장된 DVD 내비게이션이 부착돼 있었습니다. 옵션 가격만 차값의 10%가 넘는 물건이죠. 가격만큼 기능이 정말 다양해 순정 후방카메라 화면도 생각보다 깔끔해서 놀랐습니다. 이때는 내비는 있어도 후방 카메라까지는 없는 차들이 꽤 많았거든요.

DVD 시스템 외에도 TV 기능이 있는데, 이후 등장한 DMB와 달리 아날로그 전파를 수신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지금은 이용할 수가 없죠. 어렸을 때는 왜 이렇게 TV 달린 차들이 멋있어 보였나 모르겠어요.

뒷좌석도 여전히 쾌적했습니다. 슬라이딩 기능은 없지만, 대신 더블 폴딩을 지원해 트렁크로에 접근성을 높일 수 있었고, 조수석을 평평하게 접어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도 깨알 같은 장점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작은 차에 마저 전동 시트니, 뭐니 하면서 이런 기능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는데 참 아쉬워요. 타카 손잡이 같은 사이드 브레이크는 지금 봐도 독특하네요.

짧게나마 주행 감각도 느껴 볼 수 있었는데요. 수치상으로는 부족해 보였던 엔진의 성능은 확실히 호쾌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디젤 엔진 특유의 토크감으로 일상 영역에서 모자람 없는 가속감을 선사했습니다. 속력을 높일수록 더욱 편안해지는 차급 이상의 안정감은 오래전 토스카를 탔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는데, 대형 SUV들처럼 주행보다는 항해를 하는 느낌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자세가 만들어지더라고요.

느긋한 서스펜션 세팅으로 코너 시에는 좌우로 출렁였고 스티어링 휠도 세단보다는 더 많이 돌려야 했지만, 차량의 성격을 감안하면 단점으로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아쉽다고 느껴진 것은 세월이 지나며 헐거워진 스티어링 휠의 조향감과 지나치게 투박한 방향지시등 레버의 작동감 정도였어요.

오랜만에 만나본 윈스톰은 어렸을 때 봤던 그 인상, 그 기대감을 그대로 간직한 단정한 SUV였습니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깔끔한 디자인, 지금 기준으로도 크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 쾌적한 공간과 두툼한 가속감도 여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긴 했죠. 제조사를 막론하고 비슷한 연식의 차들에게는 거의 무조건 발생하는 차체 부식은 물론, 엔진 마운트를 갈아도 해결이 안 되는 디젤 엔진의 진동, 지천을 울리는 소음은 확실히 이 차의 나이를 실감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출시 초부터 연비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 많은 모델이었죠. 고속도로 정속주행을 해야 그나마 두 자리로 넘어간다고 하니 디젤치고는 확실히 부담스러운 편인 듯합니다. 오너분도 그 부분을 아쉬워하시더라고요. 아마 나이를 먹으면서 연비가 더 안 좋아졌을 거예요.

이 밖에 도장 표면이 마치 사포로 문댄 듯 거칠거칠한 것이 기스가 난 줄 알았는데, 이렇게 표면이 갈라지는 것이 은색 차량에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고질병이라고 하더라고요. 세차를 어떻게 해야 이렇게 되는 건지 생각했는데,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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