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베팬알백] ⑰ 2005년 또 꼴찌 후보? 4년 만에 KS 진출 ‘파란’

『뚝심과 끈기의 팀 컬러를 살려 팬들에게 사랑받는 야구를 하겠다. 작년에 3위를 했으니까 올 시즌 목표는 한 단계 높여 한국시리즈 진출로 잡고 있다. 작년보다 팀 전력이 강화된 부분은 거의 없지만 지난 1년간 감독과 선수들이 호흡을 맞춰봤으니 올해는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믿는다.』 <연합뉴스 2005년 3월 29일자>
두산 김경문 감독은 2005시즌 개막을 앞두고 호기롭게 한국시리즈행을 언급했다. KBO 역사상 처음으로 기획된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기자들과 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와 같은 약속을 했다.
보통 감독들은 “일단 4강(당시는 8개 구단 체제로 4위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에 드는 것이 목표”라는 식으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출사표를 던지곤 하지만, 애매모호함을 싫어하는 김 감독은 거침이 없었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았던 김경문의 호언장담. 하지만 그는 결국 약속대로 한국시리즈에 올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17번째 주제는 부족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2005년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진출한 ‘허슬두’ 두산 베어스의 반격 이야기다.

◆ 또 꼴찌 후보라고?
두산 베어스는 2005년 개막에 앞서 또다시 유력한 꼴찌 후보로 지목됐다. 2004년 꼴찌 후보라는 평가를 뒤집고 3위에 오르는 반란을 일으켰건만, 2005년에도 두산을 향한 세상의 평가는 야박하기만 했다.
특히 ‘검증되지 않았다’던 초보 사령탑 김경문 감독은 데뷔 첫해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이제는 집권 2년차. 더 원숙한 지도력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두산을 유력한 꼴찌 후보로 지목한 것은 역시 다른 구단에 비해 전력 누수가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2004시즌 말미에 프로야구를 뒤흔든 병풍(兵風) 사태로 인해 두산 마운드는 크게 약해졌다는 평가였다. 마무리투수 구자운과 정성훈, 이경필 등 불펜 핵심 투수들이 재검을 받고 군복무를 위해 전열에서 이탈했다.
여기에 2004년 17승8패로 공동 다승왕에 오른 외국인투수 게리 레스가 다시 일본프로야구(NPB) 신생구단 라쿠텐 이글스로 이적했다(레스는 2002년 16승을 거둔 뒤 200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갔다가 2004년 두산으로 복귀한 바 있다).
두산은 결국 아킬레스건으로 꼽힌 마운드 보강을 위해 외국인선수 2명 자리를 모두 투수로 채웠다. 레스가 일본으로 떠나면서 추천해준 우완 맷 랜들(전 요미우리 동료)을 새롭게 영입했고, 메이저리그 출신의 우완 척 스미스도 새 식구로 받아들였다. 검증이 되지 않은 두 외국인투수. 그러다 보니 선발과 불펜 모두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그해 1차지명 김명제(휘문고)와 2차지명 1라운더(전체 2번) 서동환(신일고)을 마운드의 축으로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김명제는 계약금 6억 원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는 두산 구단 역사상 최고 계약금의 주인공. 서동환은 구단 역대 2위인 1999년의 강혁과 같은 5억 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스프링캠프까지 치른 뒤 고졸 신인 투수들의 구위가 남다르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개막에 앞서 김명제를 선발투수, 서동환을 구자운이 맡았던 마무리투수로 낙점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타선은 역시 김동주를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김동주는 2004시즌 후 돌연 은퇴를 선언해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2005년 1월에 이를 번복하면서 구단으로 돌아왔다. 김 감독은 그를 다독인 뒤 오히려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지난해에도 꼴찌 후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것처럼 야구는 해봐야 안다. 김동주 홍성흔 등 중심타선이 건재하고 김명제 서동환 등 신인과 용병 투수들의 기량이 기대보다 좋아 올해에도 끈기의 야구를 펼칠 수 있다.”
김경문 감독은 개막을 앞두고 강한 출사표를 던지며 주변의 우려를 일축했다. 두산 선수들은 ‘꼴찌 후보’로 평가한 신문 기사들을 돌려 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 허슬두 원년…시즌 초반부터 선두
사령탑 데뷔 첫해 ‘조용한 카리스마’로 시작했던 김경문 감독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수단을 장악해 나갔다. 신인급과 베테랑들을 경쟁 구도로 몰아넣었고, 두산 선수들은 너나없이 그라운드에 몸을 던졌다. 실수하는 선수는 용납이 되지만, 몸을 사리는 선수는 가차없이 교체되거나 2군으로 내려갔다. 베테랑이든 누구든 예외가 없었다.
“당시 제가 마케팅팀장을 맡고 있었는데 두산의 야구 색깔이 잘 드러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감독님께 '팀 컬러를 표현하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고 싶은데 감독님의 야구를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여쭤봤어요. 감독님은 바로 '우리는 허슬플레이를 해야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팀원들과 회의를 한 끝에 ‘허슬두(Hustle Doo)’를 캐치프레이즈 전면에 내세우게 됐죠. 허슬플레이의 허슬(Hustle)과 두산의 첫 글자 두(Doo)를 조합해서 말이죠. 팬들도 기대 이상으로 많이 호응해 주시면서 히트작이 됐죠. ‘허슬두’라는 세 글자는 지금도 두산 베어스의 상징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허슬두’의 창시자 김승호 현 두산 베어스 운영팀장의 말이다.
두산의 2004년 캐치프레이즈는 ‘투혼! 승리! 감동!’이었다. 2005년에 ‘아자 허슬 Doo!’로 바꿨다. 두 캐치프레이즈는 의미가 일맥상통하지만, '허슬두'라는 단어 하나로 비슷비슷한 의미들을 함축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2005년은 ‘허슬두’가 두산을 상징하는 단어로 전면에 등장한 원년이라 할 수 있다. 'LG' 하면 '신바람 야구'가 떠오르듯, '두산' 하면 떠오르는 트레이드마크가 이때 만들어졌다.

‘허슬두’로 무장한 두산은 2005년 개막부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잠실 라이벌 LG와 맞붙은 개막 2연전을 싹쓸이했다. 4월 2일 개막전에 랜들을 출격시킨 두산은 14-5로 대승을 거두면서 2001년 이후 4년 만에 개막전 승리를 만들었다. 이어 박명환을 선봉에 내세운 이튿날에도 8-7로 이겼다.
4월 5일 대전에서 한화에 5-6으로 패했지만, 이후 5연승으로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개막 후 7승1패. 모두가 '꼴찌 후보' 두산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이후 잠시 삼성에 1위를 내주기도 했지만, 4월 27일 잠실 한화전부터 5월 8일 잠실 LG전까지 무려 9연승(김경문 감독 시절 최다 연승 기록)을 내달리면서 선두를 탈환했다. 전반기 내내 삼성과 지근거리에서 1~2위 싸움을 했다.
삼성은 2004년 말 선동열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킨 뒤 취임 선물로 FA(프레이전트) 시장 최대어 심정수와 박진만까지 영입하면서 최강 전력을 자랑하던 팀이었다. 개막에 앞서 모두가 우승 후보로 평가하던 팀이었다. 그러니까 우승 후보와 꼴찌 후보가 나란히 선두에 서서 2005년 레이스를 주도하는 그림이었다.
고비도 찾아왔다. 6월 28일 잠실 롯데전부터 7월 8일 잠실 삼성전까지 8연패에 빠졌다. 마운드 보강과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특히 연패를 끊어낼 에이스가 필요했다. 여기서 두산은 7월 10일 좌완 유망주 전병두를 KIA에 내주고, 외국인투수 다니엘 리오스와 내야수 김주호를 받는 2대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리오스는 2004년 KIA에서 17승으로 공동 다승왕에 올랐지만 2005년 전반기에 6승10패, 평균자책점 5.23으로 부진한 상황이었다.
리오스는 두산 유니폼을 입자마자 반등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두산도 다소 안정세에 접어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8월 13일 잠실 현대전에서 패하면서 2위 자리를 SK 와이번스에 내주고 말았다. 엄밀히 말해 두산이 부진했다기보다는 SK의 기세가 워낙 좋았다. 그리고는 시즌 막판까지 두산은 한 번도 변함없이 3위에 고정됐다. 사실상 준플레이오프에서 시작하는 듯했다.

◆ 정규시즌 최종전의 기적…LG 고춧가루에 운명이 바뀐 SK와 두산
두산은 항상 시즌 막바지에 힘을 내곤 했다. 그러면서 '미러클 두산'이라는 전통을 만들어왔다. 그해도 마찬가지였다. 연승 열차에 탑승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 앞서 두산은 5연승 중이었다. 71승3무51패로 SK(70승6무49패)에 0.5게임차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52일 동안 이어진 2위와 3위, 양 팀 순위는 그대로였다.
운명의 9월 28일. 정규시즌 최종전이 펼쳐진 날이다. 사실 SK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두산이 잠실에서 KIA를 이긴다고 해도 SK가 문학에서 LG에 이기거나 최소한 비기기만 해도 2위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LG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상태. 시즌 상대전적에서도 SK가 13승1무3패로 압도하고 있었다. LG는 이순철 감독 교체설마저 흘러나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기적이 일어났다. 두산은 일단 잠실에서 KIA에 7-2로 이겼다. 6연승이자 마지막 9경기에서 8승1패를 기록하는 놀라운 뚝심을 발휘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인천에서 LG가 예상밖으로 SK를 3-2로 꺾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즌 도중 외국인타자 루벤 마테오의 대체 선수로 영입한 선발 요원 레스 왈론드(2010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다)까지 마무리투수로 기용하면서 끝끝내 승리를 지켜냈다. 왈론드의 시즌 유일한 세이브가 이날 작성됐다.
평소엔 잠실 라이벌 관계로 으르렁대는 사이지만, 두산으로선 그때만큼은 LG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두산은 0.5게임차로 SK를 밀어내고 2위에 올라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따냈다.
(LG는 이 승리로 8개 구단 시절이던 그해, 7위에서 6위로 한 단계 상승한 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튿날 교체설이 돌던 이순철 감독의 유임을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두산은 2005년 예상하지 못한 선수들이 급성장하면서 역동적인 팀컬러를 만들어 냈다. 꼴찌 후보라는 평가를 뒤집으면서 결국 플레이오프 직행이라는 값진 열매를 수확했다.
특히 마운드에 젊은 피를 대거 발탁하면서 돌풍의 진원지를 만들었다. 가장 걱정했던 마운드는 팀 평균자책점 3.42를 기록했다. 이 부문 1위 SK(3.41)에 간발의 차로 2위. 특히 2004년까지 활약이 미미했던 정재훈 이재우 김성배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시즌 개막에 앞서 마무리투수로 점찍은 루키 서동환이 볼넷 남발로 흔들리자 갑자기 소방수로 발탁된 정재훈은 그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30세이브를 기록하며 세이브왕에 올랐다. 체격(키 178㎝)도 작고, 구속도 빠르지 않았지만 기막힌 제구력과 볼끝, 피해가지 않는 적극적 승부 방식으로 마무리투수 성공시대를 열었다. 휘문고, 성균관대 출신으로 2003년 프로 데뷔 후 2004년까지 세이브가 단 1개도 없었던 투수의 환골탈태였다. 이재우는 28홀드(7승5패1세이브, 평균자책점 1.72)를 올리면서 홀드왕을 거머쥐었다. 김성배 역시 위기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 역투(8승3패, 2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3.17)를 펼쳤다.
슈퍼 루키 김명제는 선발 한 축을 맡아 7승(6패, 평균자책점 4.63)을 올리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연습생(현 육성선수) 출신의 손시헌은 전경기(126경기)에 출전하며 내야의 핵이자 특급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 한화 김인식 vs 두산 김경문…PO 무대에서 스승을 넘어선 제자
두산은 이로써 김경문 감독 부임 이후 2년 연속 가을야구 무대를 밟았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한화 이글스. 정규시즌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한화는 SK와 5차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르면서 3승2패로 이겨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한화는 2005시즌 새 사령탑으로 김인식 전 두산 감독을 영입하자마자 3년간 인연을 맺지 못하던 가을야구 무대를 경험하게 됐다.
김인식 감독은 두산 그리고 김경문 감독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인물. 1995년부터 2003년까지 9년간 두산 베어스를 지휘하면서 구단 역사상 최장수 감독 기록을 세웠다. 1998년 재야에 있던 김경문을 배터리 코치로 영입해 호흡을 맞췄고, 두 차례(1995년, 2001년)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다. 김인식 감독이 2003년을 끝으로 물러난 뒤 지휘봉을 물려받은 주인공이 바로 김경문 감독. 호사가들은 2001년 준플레이오프 이후 4년 만에 가을야구에서 격돌하는 두 팀의 대결보다 사제지간의 대결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어쨌거나 체력 면에서 두산이 우위에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한화는 에이스 문동환을 준플레이오프 1차전과 4차전에서 소진했고, 통산 최다승 투수 송진우를 2차전과 5차전에 썼다. 3차전 선발투수 최영필은 5차전에 구원등판해 플레이오프 1차전에 나설 수 없었다.
두산은 7월에 KIA에서 이적해온 뒤로만 9승2패, 평균자책점 1.37을 기록하며 에이스로 탈바꿈한 리오스를 예상대로 1차전 선발투수로 출격시켰다. 한화는 선발투수로 전천후 투수 김해님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10월 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1차전. 두산은 1회말 문희성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은 뒤 2회말에는 전상렬과 임재철의 적시타로 김해님을 강판시키며 3-0으로 달아났다. 5회에는 1사 후 김동주가 한화 3번째 투수 윤근영을 상대로 파울폴 안쪽에 떨어지는 대형 좌월 솔로홈런을 날려 4-0 승리를 이끌었다.
리오스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불타오른 한화 타선을 8이닝 무실점으로 진화했다. 9회엔 이재영이 아웃카운트 2개를 잡고, 정재훈이 승리를 마무리하면서 첫판을 셧아웃으로 잡았다.
10월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차전은 두산의 6-1 압승. 선발투수로 나선 랜들이 7이닝 1안타 무실점 호투로 한화 타선을 다시 잠재웠다. 외국인투수 2명이 포스트시즌 1~2차전을 잡은 것은 KBO 역사상 처음이었다.
두산 타선은 한화 에이스 문동환을 상대로 폭발했다. 4회말 2사 만루 찬스에서 전상렬의 2타점 2루타, 장원진의 2타점 적시타가 이어져 4점을 뽑았고, 5회말 안경현의 좌월 2점홈런으로 스코어를 6-0으로 만들며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10월 10일 3차전도 잠실구장에서 펼쳐졌다. 당시엔 플레이오프 1~3차전을 상위팀 홈구장에서 치렀기 때문이다. 2연패로 벼랑 끝에 몰린 한화로선 3차전까지 내준다면 홈구장 대전 팬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2005시즌을 접어야 하는 상황. 김인식 감독은 경기 전 기자들이 “오늘은 어떤 작전으로 경기에 임할 것인가”라고 묻자 “물어뜯기 작전으로 해야지, 뭐”라고 말해 폭소를 유발했다.
그러나 이미 지쳐버린 독수리는 곰을 물어뜯지 못했다. 두산 선발투수로 나선 고졸 루키 김명제는 5이닝 4안타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당시 만 18세9개월5일로 KBO 포스트시즌 역사상 최연소 승리투수 기록(종전 현대 김수경 19세2개월10일)을 작성했다. 이는 지금까지 깨지지 않는 기록이기도 하다. 두산은 큰 경기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담대한 피칭을 펼치는 김명제를 보고는 박명환의 뒤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 후보로 꼽았다(그러나 김명제는 2009년 12월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선수생활을 접게 된다. 현재는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활약 중이다).
김명제에 이어 6회부터 이혜천~이재우~정재훈이 등판해 나머지 4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두산이 한국시리즈행 출구를 연 것은 5회말 얻은 1점 덕분이었다. 2사 후 전상렬이 중견수 안타로 출루한 뒤 2루도루에 성공했다. 이때 한화 포수 신경현의 2루 송구가 중견수 쪽으로 빠지면서 무사 3루가 되는 듯했다. 그런데 중견수 데이비스의 3루 악송구가 이어져 전상렬이 홈까지 파고들었다. 이것으로 3차전 승부는 끝났다.
플레이오프 영웅은 전상렬. 3경기에서 10타수 6안타(0.600)의 맹타를 휘둘렀다. 2차전에서는 결승타, 3차전에서 결승 득점의 ‘미친 활약’으로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됐다. 1992년 프로 데뷔 후 14년간 백업으로 활약해 온 ‘할매’에게 처음 찾아온 큰 상이었다.

◆ 최약체 평가에도 “KS 진출” 약속 지킨 뚝심의 김경문호
두산은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단 1점밖에 내주지 않는 막강한 마운드를 앞세워 가볍게 3연승을 올렸다. 김경문 감독은 시즌 개막에 앞서 열린 미디어데이 때 “한국시리즈에 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
스승 김인식 감독을 넘어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게 된 김경문 감독. 이제 고려대 시절 배터리를 이뤘던 ‘방졸’ 삼성 선동열 감독과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하게 됐다. 말 그대로 ‘해(Sun)’와 ‘달(Moon)’의 대결이 성사된 것. 2003년 말 두산이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려다 협상 최종 조율 단계에서 이견이 발생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그러면서 김경문 감독이 두산의 새 사령탑에 올랐다. 이런 인연까지 더해져 한국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고조됐다.
베어스는 1982년 원년과 2001년 두 차례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만나 모두 우승을 차지한 역사가 있다. 1982년에는 김경문 감독이 포수로서 우승 확정 순간 안방에 앉아 있었다. 그로부터 23년의 세월이 흘러 감독으로서 삼성을 상대하게 됐다.
플레이오프를 3차전에서 끝내면서 한국시리즈(10월 15일)까지 4일간의 휴식이 보장된 점도 두산에겐 호재. 제대로 세팅을 해놓고 삼성과 승부를 벌일 수 있게 됐다.
“7차전까지 간다고 본다. 거기에 맞춰 투수 로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10월 14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2005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팽팽한 승부를 예상했다.
※2005년 한국시리즈 이야기는 [베팬알백]⑱편에 이어집니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