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한 퀴어 히트곡이 틱톡에서 유행하게 된 이유: 브론스키 비트의 '스몰타운 보이’는 어떻게 최고의 LGBTQ+ 찬가가 됐나
발매 40년이 지난 브론스키 비트의 퀴어 찬가 '스몰타운 보이'는 가슴 아픈 내용과 동시에 희망적인 메시지로 새로운 팬덤을 구축하고 있다.
매년 6월 ‘프라이드 먼스(성소수자 인권의 달)’가 되면 행진과 파티, 심지어 커피숍 선곡목록에도 화려한 퀴어 찬가가 등장한다. 그 중에는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 다이애나 로스의 ‘아임 커밍아웃’, 실베스터의 ‘유 메이크 미 필’ 등 경쾌하고 저항적인 곡도 있지만, 가슴 아픈 내용과 간절함이 담긴 곡도 있다. 발매 40년이 지난 현재 틱톡에서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는 브론스키 비트의 ‘스몰타운 보이’는 분명 후자에 속한다. 런던 등지 LGBTQ+ 공연장에서 활동하는 DJ 닐 프린스는 “스몰타운 보이는 퀴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노래”라고 말했다. “훌륭한 팝이기도 하죠.”
스몰타운 보이는 영국 신스팝(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음악 장르로 팝과 일렉트로닉이 결합한 음악) 그룹의 창립 멤버인 가수 지미 서머빌과 키보디스트 스티브 브론스키, 래리 스타인바첵이 함께 만든 곡이다. 가슴 아픈 내용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고, 여러 세대에 걸쳐 LGBTQ+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노래의 주인공인 게이 청년은 작은 마을에서 외로움과 핍박을 느끼고 수용과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도시로 향한다. 서머빌은 날카로운 가성으로 “어머니는 네가 왜 떠나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네가 찾는 답은 결코 집에서 찾을 수 없어”라고 노래한다. 후렴구는 흡사 형제애 가득한 충고처럼 들린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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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5월 브론스키 비트의 데뷔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영국에서 음반 순위 3위에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또한 호주와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서독(당시 명칭 그대로)에서도 톱 10에 진입했고, 빌보드 핫100 48위까지 올랐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곡의 신디사이저 리프와 드라이빙 베이스라인, 감성을 자극하는 보컬은 여전히 매력으로 영화와 TV 분야에서 일하는 음악 감독들의 마음을 여전히 사로잡고 있다. 올해 스몰타운 보이는 넷플릭스의 인기 스토킹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와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레즈비언 스릴러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 사용됐다. 또 ‘유포리아’, ‘잇츠 어 신’, ‘엘리트’, ‘화이트 골드’, ‘나르코스: 멕시코’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곡은 현재 틱톡에서 향수를 자극(#80sdancechallenge라는 다소 설명이 필요 없는 태그가 달린다)하는 식으로 인기를 끌며, 영국 차트에 51위로 다시 이름을 올렸다. 브론스키 비트의 음반을 발매했던 런던 레코드는 발매 40주년을 기념해, 이달 말 디지털 재발매를 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1984년에 나왔던 오리지널 곡과 DJ 프로듀서 앱솔루트의 화려한 ,슬로우 빌드 “재작업”이 가미된 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앤트 맥긴리(앱솔루트의 본명)는 시대를 초월한 이 클래식에 자신의 도장을 찍는다는 게 “다소 무서웠다”고 했다. 그는 “워낙 강력하고 상징적인 곡이기 때문에 원작의 본질은 유지하되, 새로운 세대에 맞는 에너지와 요소를 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스몰타운 보이의 모든 개별 요소는 그 자체로 “강력”해 여전히 놀라운 매력을 발휘한다. “신스 파트나 보컬, 베이스라인만 가지고도 재작업을 할 수도 있었을 정도로 모든 요소가 너무 매력적이에요.” 닐 프린스도 이에 동의하며 스몰타운 보이를 당대 최고의 신스팝이라 평가했다.
‘즐거운 일에 동참하기’
스몰타운 보이는 빌보드와 롤링스톤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역대 최고의 게이 찬가로 꼽혔다. 하지만 현재 틱톡에서 이 노래는 퀴어 곡으로 주목받는 게 아니다. 대신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1980년대 스타일의 댄스를 부모 세대 앞에서 도전적으로 선보이는 형태의 영상에서 자주 활용되고 있다. 5월 초부터 갑자기 이 곡이 많이 등장한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앱솔루트는 브론스키 비트의 올드스쿨 아날로그 신스 사운드가 이 곡에 끌리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프로듀서들이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풍부한 음색 때문에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사용하고 있으며, 저도 제 음악에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즐겨 사용합니다.”
어떤 이들은 틱톡 영상에서 중년의 부모가 부엌이나 거실에 있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이 흐름에 주목해, 본질적으로는 퀴어 팝송인 이 노래를 부모 세대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뜻을 담은 노래로 “스트레이트워시(퀴어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머빌이 이러한 유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서머빌은 스몰타운 보이의 첫 발매 40주년인 5월 25일에 공유한 게시물에서 이러한 유행에 “미소를 짓게 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다. “이 세상에선 모든 것이 미쳐가고 있고 무서운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 틱톡에는 약간이나마 재미를 주는 것들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추억을 되살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즐거운 일에 동참하는 이들이 있네요.”
같은 게시물에서 서머빌은 이 노래의 기원과 함께 LGBTQ+ 인권 옹호 찬가가 될 만한 연관성을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세 명의 젊은 게이 남성이었고, 커밍아웃을 했고, 자랑스러웠으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고 했다. “그 메시지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퇴보하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곳에서 권리가 축소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자신이 되고 싶고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호모포비아와 공격성, 차별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1984: 팝이 퀴어가 된 해’의 저자 이안 웨이드는 스몰타운 보이가 처음부터 “중요한” 팝송이자 “위대한” 팝송이었다고 했다. 그는 서머빌이 동네 수영장에서 다른 소년을 감탄하며 바라보다가 같은 소년과 그의 친구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장면이 담긴 뮤직비디오가 이 노래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서머빌과 그의 부모 역을 맡은 배우들 간의 현실적인 연기에 감동을 받았다는 웨이드는 “(뮤직비디오 속 장면들이) 미화된 것 없이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미에게 돈을 건네면서도 악수하지 않는 아빠의 부드러운 적대감뿐만 아니라,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서머빌은 2015년 인터뷰에서 이 영상을 ‘사회를 다룬 짧은 다큐멘터리’로 구상했고, 당시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고 말했다.
서머빌은 스몰타운 보이의 노래가 계속해서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는 수용과 이해에 대한 “진정한 외침”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에 라이프스타일 블로거 ‘마담 소호’와 인터뷰에서 “이 노래의 전체 역사는 정치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머빌에게 브론스키 비트는 1982년 런던의 상업적인 게이 및 레즈비언 신과 선을 긋고 정치적 성향을 띤 언더그라운드가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서머빌이 이 운동을 다룬 1983년작 다큐멘터리 ‘프레임드 유스 - 10대 성도착자들의 복수’를 위해 ‘스크리밍’이라는 곡을 녹음한 후, 브론스키와 스타인바첵은 그에게 음악을 함께 하자고 청했다. 사실 세 사람 모두 “스몰타운” 소년들이었다. 서머빌과 브론스키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런던으로 이주했고, 스타인바첵은 영국 남부 해안의 사우스엔드온시 출신이었다.
새로운 세대의 수용
브론스키 비트는 1983년 런던의 LGBTQ+ 공연장(헤븐)에서 열린 게이 및 레즈비언 예술 축제 ‘셉템버 인 핑크’에서 첫 라이브 공연을 했고, 이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서머빌은 마담 소호와 인터뷰에서 “5번의 공연을 하고 나서 음반 계약을 맺고 스몰타운 보이가 발매되었다”며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했다.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밴드는 정치적 의제를 두 배로 늘렸다. 두 번째 싱글인 ‘와이’는 동성애를 혐오가 담긴 편견을 극복하고자 했던 댄스풍의 찬가였다. 서머빌은 하이NRG(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시작된 업템포 디스코 및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형태로 “나에게 병이라 이름을 붙이라. 죄라고 말하라. 죄책감은 느끼지 말라. 절대 굴복하지 말라”고 노래했다. 이 노래가 나오고 한 달 뒤인 1984년 10월에 발매된 이 그룹의 데뷔 앨범은 ‘에이지 오브 콘센트’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무렵 많은 유럽 국가에서 남성 간 성관계(MSM)의 승인 연령을 16세로 낮췄지만, 영국에서는 이성간 성관계에 적용되는 연령보다 5년 높은 21세로 유지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에이지 오브 콘센트’는 브론스키 비트의 창립 멤버 3인이 만든 유일한 앨범으로 남게 됐다. 서머빌은 1985년에 탈퇴한 후 클래식 음악을 해온 리처드 콜스와 함께 결성한 듀오 ‘커뮤나드’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등 성공을 이어갔다. 1986년 ‘커뮤나드’가 텔마 휴스턴의 디스코 명곡 ‘돈트 리브 미 디스 웨이’를 커버해 발매한 곡은 영국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빌보드 핫100 40위에 올랐다. 서머빌이 떠난 후 브론스키와 스타인바첵은 새로운 보컬리스트인 존 포스터를 영입했고, 포스터는 1987년까지 그룹에서 활동했다. 2년 후, 브론스키 비트는 다시 2인조로 돌아갔다가 가수 겸 배우로 유명한 어사 킷과 팀을 이루어 영국에서 32위를 기록한 야성적인 느낌의 클럽 음악 ‘차 차 힐스’를 발표했다.
오늘날 브론스키 비트의 창립 멤버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건 서머빌뿐이다. 스타인바첵은 암 투병 끝에 2016년에 세상을 떠났고, 브론스키는 런던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기를 흡입한 후 2021년에 사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놀랍도록 오래 사랑받는 노래가 그들의 음악적 유산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브론스키는 2018년 게이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들려줬다”고 말했다. 2020년에는 컨트리 가수 오빌 펙이 이 곡에 내슈빌의 반짝이는 느낌을 더했고, 1년 뒤에는 블록 파티의 가수 켈레 오케레케가 기타 중심의 담백한 커버 버전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세대의 LGBTQ+ 뮤지션들도 스몰타운 보이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프린스는 특히 “따돌림을 당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성정체성을 밝히거나 적어도 조금 더 공개적으로 성적 지향성을 드러낼 수 있는 큰 도시로 떠나고 싶어하는 욕망을 다루기 때문에” 스몰타운 보이는 항상 LGBTQ+ 청취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웨이드도 이 노래의 핵심 메시지는 “아직도 낡지 않았다”며 이에 동의했다. 그는 우리가 퀴어의 삶에 대해 “더 많은 동맹과 이해”가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운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머빌의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 '1984: 팝이 퀴어가 된 해'는 7월 18일에 출간되는 이안 웨이드의 저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