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팀 에이스' 개럿 크로셰의 성공 비결

2024시즌도 어느덧 전반기가 끝나간다. 팽팽한 순위 경쟁으로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2년 전 포스트시즌 진출 팀이 10팀에서 12팀으로 확대됨에 따라 후반기에 희망을 가진 팀들이 늘어났다. 시즌 막판까지 이어지는 승부가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아직 전체 1위 팀이 어디일지는 알 수 없다.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어, 클리블랜드가 6할대 승률을 구가하면서 큰 격차 없이 달리고 있다. 양키스와 다저스도 바짝 추격 중이다.

반면 전체 꼴찌 팀은 이미 윤곽이 드러났다. 시카고 화이트삭스다. 작년에 101패를 당한 화이트삭스는 올해 그보다 더 승률이 떨어진다.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한 2할대 승률이다(27승68패 0.284). 이대로면 단일 시즌 4번째로 많은 116패를 당하게 된다. 최다패는 1962년 뉴욕 메츠의 120패로, 당시 메츠는 창단 첫 해였기 때문에 이해가 가능했다.

화이트삭스의 성적은 후반기 때 더 떨어질 수 있다. 트레이드 마감시한 동안 주축 선수들이 떠나면 전력은 더 약해진다. 어쩌면 단일 시즌 최다패 오명을 쓸 수도 있다.

개럿 크로셰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러한 우울함을 위로해주는 선수가 개럿 크로셰(25)다. 최하위 팀에서 리그 최상위 투수로 등극했다. 올해 화이트삭스에서 홀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크로셰는 선발로서 자신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크로셰의 커리어는 굴곡이 있었다. 2020년 드래프트 전체 11순위로 지명, 그 해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초고속 승격을 이뤘다. 마이너 등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투수가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건 1978년 이후 처음이었다. 이듬해 불펜의 핵심으로 안착했지만(54경기 12홀드 2.82) 2022년 토미존 수술을 받으면서 긴 재활기에 접어들었다.

쉼없이 달린 투수의 공백기는 길었다. 작년 5월에 복귀했지만, 어깨 염증으로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화이트삭스도 크로셰를 급하게 다루지 않았다. 덕분에 완벽한 몸상태로 올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선발 등판에 도전했다.

내심 선발로 뛰고 싶었던 크로셰는 기뻐했다. 팀의 제안을 듣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섰다. 팀 사정상 절묘하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겨우내 크로셰는 사설 업체를 방문했다. 선발로서 레퍼토리를 다듬고, 몸상태도 만들어야 했다. 이에 최근 각광 받는 <PUSH Performance>를 찾았다. 마침 이 곳의 도움을 받고 전성기를 이룬 투수가 같은 팀 동료로 합류했다. KBO리그를 지배하고 금의환향한 에릭 페디였다. 크로셰는 선발 경험이 풍분한 페디의 조언을 들으면서 함께 훈련했다.

<PUSH Performance>의 차별화는 일전에 '에릭 페디의 변신'을 다룬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물리 치료 전문 업체 <Next Era>와 협업하면서 기술적 발전과 생체 역학 이해를 동시에 수행한다. 크로셰도 <Next Era>와의 훈련으로 신체 회복이 더 원활해졌다고 인정했다.

재무장을 하고 등장한 크로셰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시즌 두 번째 등판에서 강타선 애틀랜타를 상대로 7이닝 1실점 승리를 따냈다. 4월 중순 3경기 3패 11.2이닝 17실점으로 흔들렸지만, 이후 더 큰 날갯짓으로 더 높이 날아올랐다.

4월에 예열을 마친 크로셰는 5월 이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발돋움했다.

4월 : 1승4패 5.97 (34.2이닝)
이후 : 5승2패 1.66 (70.2이닝)


크로셰는 5월 이후 12경기에서 넉 점 이상 내준 적이 없다. 3실점 이상도 6월20일 휴스턴전뿐이다(6이닝 3실점). 나머지 11경기는 전부 2실점 이하였다. 그 사이 두 자릿수 탈삼진 경기는 5차례나 선보였다. 신들린 탈삼진 쇼로 메이저리그 탈삼진 1위를 사수했다(105.1이닝 146삼진). 같은 기간 탈삼진/볼넷 비율 7.07도 두 번째로 빼어났다(조지 커비 10.14).

크로셰의 시간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시즌 첫 달과 가장 달라진 점은 피홈런이다. 4월의 크로셰는 34.2이닝 7피홈런이었다. 9이닝 당 1.82개로 위험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5월 이후 70.2이닝에서 피홈런은 단 3개다(9이닝 당 0.38개). 4월 피홈런 7개 중 5개가 슬라이더로, 슬라이더가 뻔한 공이 됐는데, 슬라이더 활용법을 바꾸면서 5월 이후 슬라이더 피홈런이 하나도 없다.

5월 이후 60이닝 이상 던진 투수는 84명. 이 가운데 1점대 평균자책점은 크로셰만의 영역이다. 평균자책점이 외부 요소가 개입되는 지표라면, FIP는 투수가 직접 관여하는 탈삼진과 볼넷, 피홈런으로만 계산한다. 투수 개인 능력이 더 중시된다. 크로셰는 평균자책점뿐만 아니라 이 FIP도 1점대다. 순수 실력으로 만든 성적이다.

5월 이후 선발 FIP 순위 (60이닝)

1.64 - 개럿 크로셰
1.67 - 크리스 세일
2.39 - 크리스토퍼 산체스
2.45 - 마이클 킹
2.71 - 타릭 스쿠벌


5월 이후 크로셰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다. 4월 부진을 딛고 한 단계 도약했다. 그 원동력은 '변화'에 있었다. 레퍼토리를 수정하면서 새로운 투수로 다가섰다.

원래 크로셰는 투 피치에 가까웠다.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다. 그런데 선발 전환을 앞두고 레퍼토리를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구종이 커터였다. 작년 9월에 투수 파트 수석 고문으로 합류한 브라이언 배니스터도 크로셰에게 커터를 추천했다. 크로셰는 배니스터에게 배운 커터를 열심히 갈고닦았다.

크로셰 커터 & 슬라이더 피치 히트맵 (베이스볼서번트)

재료는 조합이 중요하다. 아무리 재료가 많고 좋아도 구성을 제대로 못하면 위력이 반감된다. 크로셰도 커터를 장착했지만, 커터가 기존 슬라이더와 어울리지 않았다. 구속 차이는 났지만, 궤적이 비슷해서 타자들 눈에 익었다. 4월 슬라이더 피홈런이 유독 많았던 이유다.

크로셰는 전략을 수정했다. 슬라이더 대신 커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상대가 알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깨뜨려보기로 했다. 선발과 불펜의 기로에서 꺼내든 방책이었다.

크로셰 레퍼토리 비중 변화

포심 [4월] 53.3% [5월 이후] 56.4%
커터 [4월] 19.0% [5월 이후] 31.3%
슬라 [4월] 21.4% [5월 이후] 6.2%
체인 [4월] 6.1% [5월 이후] 6.2%


포심 슬라이더 투수에서 포심 커터 투수가 된 건 적중했다. 타자들은 슬라이더보다 더 빠르게 꺾이는 커터를 어려워했다. 슬라이더와 공존할 당시 커터의 피안타율은 0.276였지만, 5월 이후 커터 피안타율은 0.204로 낮아졌다. 4월 26.6%였던 헛스윙률도 37.9%까지 높아졌다. 슬라이더의 경쟁력이 흔들리는 시점에 커터라는 구세주가 등장한 것이다.

<베이스볼서번트>는 구종 득점 가치(Run Value)를 집계한다. 주자 유무와 아웃/볼카운트에 따라 차등점을 두면서 해당 구종이 얼마나 득/실점에 기여했는지 알아본다. 이 지표에서 크로셰의 커터는 플러스 12점을 기록하고 있다. 선발 1위, 전체 2위다.

커터 득점 가치 순위

14 - 엠마누엘 클라세
12 - 개럿 크로셰
11 - 제시 차베스
10 - 코빈 번스
10 - 데이빗 로버슨

페드로 그리폴 감독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크로셰가 비상하면서 화이트삭스는 고민에 빠졌다. 시즌 백기를 든 상황에서 크로셰를 계속 안고갈지 여부를 정해야 한다. 만약 크로셰의 최고점을 지금으로 판단하면 인기가 많을 때 트레이드하는 편이 유리하다. 언제 컨텐더로 거듭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가치가 애매해지기 전에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

트레이드 시장에 에이스가 나오는 건 귀하다. 특히 크로셰는 FA 직전에 나오는 반년 선수가 아니다. 올해 연봉이 80만 달러로, 내년이 되어서야 연봉 조정 자격을 얻는다. 2027년까지 팀에 묶어둘 수 있다. 지난 달에 25세가 된 젊은 나이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페드로 그리폴 화이트삭스 감독은 "우리를 포함한 30개 팀이 크로셰를 원할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화이트삭스가 트레이드로 마음을 굳힌다면 이번 여름 문의가 폭주할 것이다. 다저스는 한 차례 거절을 당했는데, 다시 트레이드를 추진한다고 알려졌다. 다저스가 물밑으로 먼저 움직인 사실이 알려진 이상, 다른 팀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크로셰의 선발 전환은 분명 도박이었다.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잠재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치열하게 준비했고, 과감하게 부딪쳤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 또 마운드 밑에서도 모두가 바라보는 투수로 올라섰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