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근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자동차로 포르쉐 911, 람보르기니 쿤타치, 폭스바겐 골프를 거론하며 자동차업계에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최고경영자가 직접 밝힌 이 세 차종의 조합은 많은 이들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21일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차종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이 세 모델을 꼽았다. 특히 이 중에서도 폭스바겐 골프를 언급한 것은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포르쉐 911, 60년 넘게 진화한 스포츠카의 전설

정의선 회장이 첫 번째로 꼽은 포르쉐 911에 대해서는 “후방 엔진 레이아웃과 지속적인 진화를 통해 스포츠카 세그먼트에서 기술적·감성적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포르쉐 911은 1963년 첫 출시 이후 현재까지 60년 넘게 생산되면서도 기본 설계 철학을 유지해온 자동차계의 아이콘이다.
911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엔진이 뒷바퀴축 뒤쪽에 위치한 RR(Rear Engine, Rear Drive) 레이아웃이다. 이는 일반적인 스포츠카들이 채택하는 FR(Front Engine, Rear Drive)이나 MR(Mid Engine, Rear Drive)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런 특이한 구조 때문에 초기에는 ‘과부 메이커’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성능 좋은 스포츠카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포르쉐는 911 모델을 통해 매년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며 브랜드의 혁신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한 992.2 세대 911을 공개하며 전동화 시대에도 포르쉐만의 독창성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이런 일관된 진화 방식이 정의선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람보르기니 쿤타치, 슈퍼카 디자인의 혁명

두 번째로 언급된 람보르기니 쿤타치에 대해서는 “쐐기형 실루엣과 시저 도어를 통해 슈퍼카의 미학을 재정의했다”며 “람보르기니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동차 디자인의 경계를 넓힌 선구적인 아이콘이 됐다”고 설명했다.
1974년부터 1990년까지 생산된 쿤타치는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걸작으로,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미래지향적인 외관을 자랑했다. 특히 위로 올라가는 시저 도어(가위문)는 쿤타치가 처음 도입한 것으로, 이후 람보르기니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또한 극도로 낮고 각진 쐐기형 차체는 공기역학적 효율성보다는 시각적 임팩트에 중점을 뒀지만, 그 강렬한 인상은 지금까지도 많은 자동차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쿤타치의 영향력은 단순히 디자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차는 슈퍼카라는 개념 자체를 대중에게 각인시켰으며, 1980년대 자동차 포스터의 대표주자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꿈이 되기도 했다. 2021년에는 현대적 기술로 재해석된 쿤타치 LPI 800-4가 한정 생산되며 그 전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폭스바겐 골프, 대중차의 교과서 같은 존재

세 번째로 언급된 폭스바겐 골프는 가장 의외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 회장은 골프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소형 해치백의 기준으로 인정받는 골프는 여러 세대에 걸쳐 실용성과 혁신 사이의 일관된 균형을 유지해왔다”며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초기 모델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그의 철학을 반영했다”고 평가했다.
1974년 첫 출시된 골프는 폭스바겐의 간판 모델인 비틀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됐다.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1세대 골프는 비틀의 곡선적 디자인과는 정반대인 직선적이고 기능적인 외관을 선보였다. 이런 실용적 디자인은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해치백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골프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함 속에 숨어 있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지만,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8세대에 이르기까지 50년 가까이 생산되면서도 변하지 않는 핵심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정의선 회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골프 GTI는 ‘핫해치’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며 스포츠카 못지않은 주행 성능과 일상적 실용성을 동시에 제공했다. 이런 균형감각은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방향성과도 일맥상통한다.
정의선 회장의 선택 속 숨은 메시지
정의선 회장이 선택한 세 차종은 각각 다른 철학을 대표하고 있다. 포르쉐 911은 ‘전통 속에서의 혁신’, 람보르기니 쿤타치는 ‘파격적 창조’, 폭스바겐 골프는 ‘실용적 완성도’를 상징한다. 이 세 가지 가치는 현재 현대차그룹이 추구하고 있는 방향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전동화 전환을 가속화하면서도 N 브랜드를 통한 고성능 차량 개발, 제네시스를 통한 럭셔리 시장 공략, 그리고 아이오닉 시리즈를 통한 혁신적 디자인 추구 등 다방면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정 회장의 차량 선택은 이런 다각화 전략의 철학적 배경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자동차 산업 변화를 이끈 인물들에 대한 통찰
정의선 회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자동차 산업을 변화시킨 인물로 카를 벤츠, 페르디난트 포르쉐, 헨리 포드, 조르제토 주지아로, 일론 머스크를 꼽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기존 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혁신가들이라는 점이다.
카를 벤츠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개발해 모빌리티 혁명의 시작을 알렸고, 헨리 포드는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자동차를 대중화했다.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초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기술의 선구자였으며, 주지아로는 자동차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의 대중화와 자율주행 기술로 현재의 자동차 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정 회장은 특히 일론 머스크에 대해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를 대중화하고, 글로벌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며, 자동차 혁신에서 소프트웨어의 역할을 재정의함으로써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가속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현대차그룹 역시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량(SDV)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현 상황과 맞닿아 있다.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비전
정의선 회장은 향후 25년의 모빌리티를 정의할 핵심 요인으로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과 인공지능(AI) 기술의 융합을 제시했다. “마력에서 프로세싱 파워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과거처럼 차를 만들고 몇 년 마다 업데이트하는 방식이 아니라, 스마트폰처럼 끊임없이 개선되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는 설명은 현대차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전환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하드웨어 중심의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포괄하는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의 변신을 의미한다.
가족 경영 철학의 계승과 발전
정의선 회장은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인 정주영 창업 회장과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도 언급했다. 창업 회장의 ‘시류를 따르고 사람에 집중하라’는 가르침과 명예회장의 품질과 안전에 대한 철저함이 현재 현대차그룹의 경영 철학 기반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창업 회장이 “자동차를 넘어 모빌리티 전체를 생각했다”며 “도로, 선박, 인프라 등 생태계 전체를 구상했던 폭넓은 시야가 오늘날 우리의 비전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한 부분은 현재 현대차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 전략의 배경을 설명해준다.
정의선 회장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의 표현을 넘어서,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미래 방향성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전통적 완성도, 혁신적 디자인, 실용적 균형이라는 세 가지 가치의 조화를 통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더욱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할 현대차그룹의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