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K의료기기 ‘눈독’ 들이는 글로벌 큰손들...“수출 강국 꿈 멀어지나”

김명지 기자 2023. 5. 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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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올림푸스 태웅메디칼 매각 이후
이오플로우 美메드트로닉에 1조원 매각
글로벌 인수합병(M&A) 韓 의료기기 산업 새로운 출구 전략
“세금 들여 개발한 국산 기술 해외로 이전” 우려도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6회 의료기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혁신의료기기 업체 참석자들이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김명지 기자

“한국 의료기기 업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1조원 기업으로 평가 받은 건 좋은 일입니다. 그래도 해외에 매각된다는 점에선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미국 의료기기 회사인 메드트로닉이 26일 한국 의료기기업체인 이오플로우를 약 9710억원(7억 3800만 달러)에 인수한다는 소식을 접한 이재화 한국의료기기협동조합 이사장(대성마리프 대표)은 ”메드트로닉은 미국 회사이지 않느냐”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이날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제16회 의료기기의 날’ 행사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세계 20여 개국에서 해외인증을 획득하고 전 세계 74개국에 1000만불 수출을 달성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대성마리프는 1986년 설립한 냉동공조 의료기기 업체로 의료기기 업체 대부로 통한다.

이 이사장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면, 국내 대기업이 이오플로우를 사들여서 한국 기업으로 육성시켰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자꾸 회사들이 해외 기업에 인수되는 건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들도 대부분 이런 반응이었다.

지난해부터 실력 있는 국내 강소 의료기기 업체들의 인수합병(M&A)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일본 의료기기 기업 올림푸스가 소화기내과 금속 스텐트 전문기업 태웅메디칼을 4800억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11월엔 글로벌 10위 의료기기업체인 보스턴사이언티픽(BSX)이 한국 스텐트 제조사 엠아이텍을 2912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BSX의 엠아이텍 인수는 해외 여러 국가에서 기업결합승인을 얻지 못하면서 지난 17일 결렬됐다. 하지만, BSX는 엠아이텍 지분 9.9%(318만주)를 보유한 상태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오플로우 웨어러블 인슐린 자동 주입시스템.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

지난해 1월에는 글로벌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이 미용 의료기기 업체인 클래시스를 약 6700억원에 인수했다. 올해 1월에는 국내 사모펀드 루하가 체외 진단기기 회사인 랩지노믹스를 1827억원에 인수를 마쳤고, 같은 달 국내 임플란트 1위 업체인 오스템임플란트는 사모펀드(PE)인 MBK파트너스 및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 컨소시엄에 인수됐다. 컨소시움은 공개매수를 통한 상장폐지를 추진 중인데, 공개매수에만 3조원 이상의 자금이 들었다.

이 같은 한국 의료기기 인수합병 소식을 바라보는 업계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한 중견 기업 관계자는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잘 팔았다고, 생각되지만 아깝다는 심정은 든다”고 말했다. 시리즈A투자를 마친 스타트업은 “부럽다”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 테크노타운 내 태웅메디칼 부설연구소에서 직원들이 의료용 기기인 스텐트 제품 성능을 실험하고 있다.

메드트로닉이 이오플로우를 1조원에 사들였다는 것은 한국 의료기기 기술이 전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는 증거이지만, 반대로 잘 키운 의료기기 기업을 다국적 기업에 빼앗겼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한국의 의료기기 산업이 성숙하는 과정에 있다고 해석했다. 한국의 의료기기 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됐으니, 앞으로 성장성 있는 의료기기 스타트업이 나오면 국내 상장뿐 아니라 글로벌 인수합병(M&A)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김충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CFA)는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의 주된 엑시트 전략은 인수합병이고, 이런 현상이 활성화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라며 “의료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인수합병은 가장 일반적인 출구전략이다”라고 말했다. 의료기기와 의약품은 각국 정부 규제가 강하기 때문에 한국 토종을 내세워서는 글로벌 시장 공략에 한계가 있다.

학계와 의료계에서는 그럼에도 대체적으로 “아깝다”는 반응이 보인다. 이들은 이오플로우가 최근 정부가 2027년까지 세계 5위 수출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하는 핵심 10대 기술 기업으로 선정된 지 얼마 안돼 해외 기업에 인수된 점을 안타까워했다. 이오플로우는 정부의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 개발 사업으로 26억 6600만원의 정부 출연금을 받기도 했다.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한 대학 교수는 “세금을 지원한 의료 기술이 글로벌 기업에 매각되는 것은 뼈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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