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stic:Remaking Our World’展, 플라스틱에겐 죄가 없다

*이 글에는 현대자동차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녕, 에디터B다. 지난주에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열린 전시 <Plastic: Remaking Our World>(이하 ‘플라스틱, 새로운 발견’)에 다녀왔다. 방문기를 쓰기 위해 의자에 앉아 창가를 보니 몬스테라가 죽어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주면 절대 죽을 일이 없다는 몬스테라임에도 식집사의 잦은 야근과 게으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인 것 같다. 하지만 몬스테라가 시들시들하고 있는 와중에도 화분만은 멀쩡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예쁜 화분은 1년 전 구매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닳지도 않았고, 부서지지도, 녹슬지도 않았다. 처음 플라스틱을 사용한 사람들은 분명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을 거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개최된 전시 <플라스틱, 새로운 발견>의 주제가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독일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 함께한 전시이고, 그동안 짧은 기간만 선보여 아쉬워했던 관람객의 요구를 받아들여 9개월 가까이 선보이는 장기 전시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와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디자인 혁신이 일상생활 속 기술에 가져올 긍정적 영향을 탐구하고, 관람객과의 다양한 주제로 소통하기 위해 2021년에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다양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고객들에게 공유하고, 다양한 디자인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의 설립 취지 ‘Design to live by(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디자인의 힘)’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은 미술관 못지 않은 좋은 전시들을 선보여서, 나 역시 작년부터 전시를 보기 위해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에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주거 공간의 역사를 담은 <홈 스토리즈>展,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쉘터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展도 꽤 인상적이었다. 전시라는 게 다 그렇지만, 이것도 타이밍이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니 기회가 된다면 가보는 걸 추천한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을 소개할 때마다 꼭 하는 말이지만, 부산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 들리기를 권하는 곳이다. 나 역시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된다.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돼지국밥집에 갔다가 부산의 자랑 모모스커피에도 갔다가 마지막에는 전시를 보는 코스.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은 복합문화공간 F1963에 있는데 공장을 뜻하는 Factory, 그리고 1963년에 완공된 고려제강의 설립 일자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다. 한때 거대한 공장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리모델링되어 부산을 대표하는 거대한 문화공간이 되었다.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뿐만 아니라 4층에는 로컬 식재료를 활용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마이클 어반팜테이블도 있고, 예스24, 테라로사도 있으니 간 김에 둘러보면 좋을 거다.

서론이 길었으니 본론으로 빠르게 들어가 보자. 우린 플라스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전시를 다 보고 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다. ‘플라스틱에는 죄가 없구나.’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우리가 플라스틱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여기기도 하고, 플라스틱을 많이 쓰면 지구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니까. 하지만 플라스틱의 시작을 보면 정말 플라스틱에는 죄가 없는 게 맞다. 친환경을 목적으로 태어났으니까. 이 이야기는 살짝만 더 기다려주면 좋겠다. 두 번째 섹션에서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전시는 여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서 시작한다. 위 사진은 첫 번째 섹션 ‘칼파(Kalpa)’다. 플라스틱의 생산과 사용에 관한 갈등을 조명한 몰입형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커튼을 열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면 한 가운데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고 양쪽 벽에는 디스플레이가 각각 설치되어 있다. 한쪽 벽에는 지구의 탄생, 그리고 다른 한쪽 벽에서는 플라스틱의 탄생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비디오로 감상할 수 있다.

한 가지 좋았던 점은 두 개의 비디오 모두 구에서 출발해 점차 변화하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마치 지구와 플라스틱이 서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지구는 우주에서 우연에 의해 자연스럽게 태어났고, 플라스틱은 기술에 의해 과학적으로 개발되었는데, 공통점이라고는 1도 없을 것 같은 지구와 플라스틱을 동일 선상에 놓고 편집한 게 꽤 흥미로웠다. 그 정도로 우리 삶에서 플라스틱이 가지는 중요도와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두 번째 섹션은 ‘신세티카(Synthetica)’. 19세기까지의 초기 플라스틱 진화 과정과 함께 플라스틱 시대를 연 최초의 100% 합성 플라스틱을 소개하고 있다. 아까 위에서 얘기했던 ‘플라스틱은 원래 환경을 위해 만들었다’ 라는 말을 기억할까.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19세기에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무자비하게 벌목하고, 당구공을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코끼리를 사냥했다(초기 당구공은 상아로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초기 플라스틱이 탄생했고, 덕분에 코끼리는 덜 사냥 당하고, 나무도 조금은 더 보호할 수 있었다. 상아뿐만이 아니다. 동물에게서 채취한 많은 것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플라스틱 사용은 친환경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 섹션에서는 그 당시에 사용한 많은 초기 플라스틱을 구경할 수 있다. 공간은 생각보다 밝지 않은데, 이유는 강한 빛은 플라스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낮은 조도로 설정했다고 한다. 빈티지한 인테리어 소품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뿐이지 유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고귀한 느낌마저 든다.

세 번째 섹션은 1920년대 석유 화학 산업 활성화로 새롭게 발명된 비닐, 아크릴, 나일론 등 플라스틱들이 어떠한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었는지 보여주는 ‘페트로모더니티(Petromodernity)’와 화석 연료 소비 급증과 두 차례 석유 파동 이후 일회용 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기반으로 생겨난 환경 보호 캠페인들을 소개하는 ‘플라스티신(Plasticene)’으로 구성됐다.

처음 플라스틱이 탄생했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큰 문제가 될 거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는 못했을 거다. 자연에게서 온 많은 물질은 어렵게 탄생하고 닳거나 썩는다. 나무가 그렇고, 돌이 그렇고, 흙이 그렇다. 하지만 인간이 과학으로 만든 플라스틱은 몇 년이 지나도 썩지 않았고, 비닐, 아크릴, 나일론 등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많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 중 한 명인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큐레이터 미아 호프만에게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플라스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봤을 것 같습니다. 혹시 전시를 준비하기 전과 비교해서 플라스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게 있나요?” 그녀의 답변을 길게 했고 그 중 ‘evil’이라는 단어가 들렸다.

그녀는 전시를 하기 전에는 플라스틱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 나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관객들도 플라스틱을 마냥 악마처럼 생각하지는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플라스틱 덕분에 꽤 많은 혜택을 받으며 편리하게 살아오고 있다(지금 눈앞에 있는 페트병이 그렇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든 테이크아웃 컵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플라스틱을 조금 더 현명하게 쓰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마지막 섹션으로 넘어가 보자.

마지막 섹션 ‘다시 만들다(RE-)’에서는 플라스틱의 선순환을 연구하는 디자이너들과 과학자, 기업 등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플라스틱의 역할과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인간의 삶처럼 자연에서 온 재료는 시작과 끝이 있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고민은 유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생명이 유한하고, 건강이 유한하고, 돈이 유한하고. 하지만 진짜 문제는 무한할 때 발생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플라스틱이 그렇다. 그래서 선순환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하여 많은 브랜드, 과학자, 디자이너들은 플라스틱을 활용해 선순환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섹션 5에서 확인 가능한 현대자동차의 차량 생산 과정만 보더라도 플라스틱의 선순환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어갔다는 걸 알 수가 있다. 폐플라스틱 병과 폐어망을 재활용하여 원사를 개발하고, 그렇게 만든 원단을 시트와 플로어 카펫에 사용한다. 폐플라스틱을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마씨 오일, 사탕수수 등에서 추출한 자연 유래 성분으로 친환경 공법 가죽과 바이오 TPO 스킨(천연 물질에서 추출한 바이오 소재가 함유된 원단)을 만들어 아이오닉 시트와 도어, 암레스트 등에 적용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활용하는 자원순환은 수소 생산에서도 이어진다. P2H, 즉 Plastic-to-Hydrogen은 더 이상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을 액체 상태로 만들어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인데, 말은 쉬워도 수소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운송하는 등 많은 기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도화시키기 위해 현대자동차는 지금도 관련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플라스틱을 획기적으로 덜 쓰는 건 지금 당장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폐플라스틱을 활용하고, 차량 생산 과정에서 폐수와 Co2를 덜 만드는 게 중요한데, 현대자동차의 이런 노력을 보니 조금은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나 싶었다.

섹션6 한 켠에서는 페트병의 병뚜껑을 녹인 후 몰드로 새로운 모형을 제작하는 디자이너 하켄스의 ‘프레셔스 플라스틱’ 프로젝트 시연도 관람하고, 그렇게 만든 플라스틱 자, 플라스틱 코스터, 플라스틱 팽이를 폐 플라스틱 병뚜껑 3개를 가져오면 교환해갈 수 있다. 전시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나오는 게 기본이지만 여기는 선물을 챙겨주니 산뜻한 기분으로 출구로 나갈 수 있다. 하루 한정 수량만 제공하니 이왕 전시를 본다면 이른 시간에 보는 걸 추천한다. 전시를 본다고 해서 갑자기 플라스틱을 덜 쓰기는 힘들 거다. 그래도 플라스틱을 현명하게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전시는 무료다.

  • 기간 2024.08.28-2025.05.25
  • 장소 현대 모터스튜디오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