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달, 다이소 달항아리

얼마 전 달항아리를 샀다. 다이소에서 3,000원을 주고. 여기에 꽃을 꽂고 즐기니 꽤 어여쁘다.

밤하늘에 밝게 떠 있는 보름달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달항아리. 원래 달항아리는 높이가 40cm 정도 되는 크고 희며 둥근 자기를 말한다. 그 압도적인 크기 때문인지 하늘에 떠 있던 달이 중력을 이기지 못해 지구에 불시착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올해 3월 미국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나온 백자대호(Moon Jar)는 60억에 팔렸고, 오늘날 도예가 이기조가 만든 백자 달항아리의 가격은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다이소 달항아리는 유광과 무광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크기는 높이 10cm 정도의 작은 것과 높이 20cm 큰 사이즈 이렇게 두 가지 사이즈로 판매 중이다. 가격은 사이즈에 따라 각각 3,000원과 5,000천 원. 수천만 원짜리 40cm 달항아리와 비교하면 엄청난 가성비다.

어딘가 찌그러져 보이는 모양새, 완벽하게 맞지 않는 대칭. 다이소에서 만들어서 그런 거라고? 아니. 원래 달항아리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소름 돋는 좌우대칭이나 화려한 색이 있는 것도 아니다. 꾸밈없고 투박한 모양새는 보면 볼수록 더 눈이 가고 마음이 간다. 밝은 대낮에 떠 있는 태양보다는 어두운 밤하늘을 은은하게 비추는 달에 가깝다. 너무 화려한 것은 금방 질린다. 태양을 계속 보다가 눈이 멀게 되는 것처럼.

달항아리의 시작은 우리 역사의 아픔과 맞닿아 있다. 처음 등장한 것은 17세기 후반.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호란까지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뒤였다. 곤궁한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궁여지책으로 백토로 대접을 닮은 2개의 모양으로 빚고 그 가운데를 이어 붙였다. 그렇게 달항아리가 탄생했다. 사실 당시엔 이름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 크고 하얀 백자를 ‘큰 흰색 도자기 항아리’란 뜻의 원호(圓壺)라고 불렀다. 달항아리는 불과 몇십 년 동안만 반짝 사랑받다가 사람들에게 점차 잊혔다.

그런 달항아리를 다시 불러들인 건 20세기, 이제 막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난 뒤였다. 일부 예술인들이 이 소박한 물건을 다시 꺼내 뽀얗게 쌓인 먼지는 털어내고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 조선백자에 푹 빠져있던 김환기 화백이었다. 달항아리란 이름 또한 밤에 뜬 달을 닮았다고 하여 그가 붙인 이름이다. 고된 타국 유학 생활 중에 그는 달항아리의 풍만하고 당당한 자태를 보며 조국을 떠올리고 그리워했을까?

달항아리에 집 앞 꽃집에서 산 남천나무 열매를 꽂았다

두부 같은 흰색과 빨간 열매는 얼마나 근사한 대비인지

바닥에 붙은 가격표를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겠지

솔직히 말해 나는 미술품을 수집할 능력은 없다. 안목도 조예도 부족하지만 아직 그만한 배포도 없는걸. 오늘의 나에겐 3,000원의 다이소 달항아리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이소에서 산 저렴한 달항아리도 이렇게 근사할 수 있다는 걸, 오천만 원짜리와 비할 바 없이 근사하다는 걸 여러분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이번 화보도 준비했다. 매일 밤 나는 우리 집 거실에 둔 달항아리를 보며 작은 위안을 얻는다. 안녕, 나만의 3,000원짜리 작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