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40] 한여름에 펄떡이는 장어의 힘
밀짚모자가
장어로 둔갑하는
대서 무더위
なつぼうしうなぎ ば たいしょ
夏帽子鰻と化けし大暑かな

장맛비가 그치고 여름의 절정인 대서(大暑)다. 오죽 더웠으면 절기 이름이 큰 더위일까. 시인 다카하시 무쓰오(高橋睦郎·1937~)는 모자가 장어로 보일 정도로 무더위에 정신이 혼미하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대낮에 아스팔트를 걷다 보면 자동차가 뜨거운 만두로 보이고, 건물이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으로 보인다. 그 지경이면 카페로 뛰어들어 “살려주세요” 하듯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한다. 역시 삼복더위에는 강아지처럼 납작 엎드려야 하나 보다. 복날 복이 엎드릴 복(伏) 자라는 건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 찬 음식만 먹고 엎드려 있으면 몸이 상하니 인삼에 대추 넣고 팔팔 끓인 삼계탕 한 그릇으로 몸을 보양하자.
일본에도 복날이 있다는 건 도쿄에 살 때, 친구가 오늘이 ‘우나기의 날’이라며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알았다. 한국의 복날 삼계탕 가게 앞처럼 도쿄 장어덮밥 가게 앞 긴 줄을 보고 놀랐다. 이렇게 무더운 날, 뙤약볕 아래 내내 서 있어야 한다니. 그게 더위를 이겨내는 방책이라니. 매미도 신기해서 맴맴. 하지만 이런 게 또 세상 사는 재미다. 옛사람의 지혜라니 따라볼 만하다. 무려 1000년 전 ‘만요슈’에서 ‘더위 먹기 전에 장어 잡아 드세요’라는 글귀가 보인다. 지금처럼 껍질에 간장과 미림을 섞은 소스를 발라 굽고 식지 않게 뜨거운 쌀밥에 올려 먹는 건 그때부터 한참 후. 어쨌든 오래전 그 맛이 지금도 기억나는 걸 보면 힘찬 꼬리에서 우러난 무언가가 아직 내게 남은 모양이다. 세월을 거스르는 장어의 힘이다.
‘우나기’라는 장어를 뜻하는 일본말이 익숙한 이유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 ‘우나기’(1997) 때문일까. 당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아 세계가 극찬했다. 최근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에서 명연기를 보여준 야쿠쇼 고지가 주연을 맡았다. 남자는 아내의 정사 현장을 목격하고 분노해 칼을 휘두르다 감옥에서 출소 후 오직 ‘우나기’만 보며 산다. 남자는 하천이 흐르는 조용한 마을에서 동네 할아버지에게 손으로 장어 잡는 법을 배운다. 장어는 빛을 싫어해 달도 없는 깊은 밤에만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 랜턴을 켜면 스멀스멀 미끄러져 가는 녀석들. 처음에는 끊어진 밧줄로밖에 보이지 않던 게 조금씩 눈에 익어 생물의 움직임이 보인다. 어느 결에 장어는 내가 되고 나는 장어가 된다. 힘찬 자연과 하나가 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도 결국 그런 행위다. 자연에 깃든 생명력을 안으로 들이는 일이다. 우리가 이 계절을 버티도록 부엌으로 올라온 모든 펄떡이는 것에 감사 인사를 보낸다.
‘하이쿠로 읽는 일본’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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