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이 점령한 여의대로, 온종일 출퇴근 대란... 경찰은 팔짱만

김수경 기자 입력 2022. 11. 25. 21:06 수정 2022. 11. 2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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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새벽부터 무대설치… 집회 후엔 철거한다고 퇴근길 막아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에 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가 모여 총파업 대회를 열고 있다. 주최측은 4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집회 시작은 오후 1시였지만, 주최측이 집회에 쓸 무대를 설치한다며 오전 4시부터 여의대로 7개 차로를 점거하면서 출근길 정체가 극심했다. 또 퇴근 시간에도 무대를 철거하느라 다수 차선이 여전히 통제돼 있어 시민들이 교통 체증을 겪었다. /뉴시스

25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복판에 있는 여의대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민주노총이 지난 22일에 이어 이날도 집회를 열기로 하면서 경찰이 왕복 14차선 중 절반인 7개 차로를 아침부터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버스, 자동차가 엉켜 요란한 경적이 울렸다. 평소 주행 시속이 적어도 20㎞는 나오는 곳인데 이날 오전 9시 기준 여의대로 마포 방면 통행 속도는 시속 4~5㎞로 떨어졌다. 도로 중간에서 버스에서 내려 차로를 따라 걸어가는 직장인도 많았다. 꽉 막힌 출근길에 한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나도 세금 내는 시민인데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차로를 통제하고 있는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이날 출근 시간에 여의도 교통 대란이 벌어진 건 엄밀하게 말하면 집회가 아닌, 집회 사전 준비 탓이었다. 이날 민주노총은 ‘공공 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대회’에 6만명이 참가한다며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다. 이들이 신고한 집회 시작 시각은 오후 1시였지만 집회에 쓸 무대를 설치하느라 아침부터 차로를 통제한 것이다.

경찰과 무대 설치 업체 직원 등에 따르면 민노총 집회 무대는 오전 4시부터 설치가 시작됐다. 경찰은 오전 4시 30분쯤부터 길을 막아주며 교통 통제를 해줬다. 민노총 조합원들은 한낮에 집회를 했지만 여의도 일대 시민들은 이들이 쓸 무대 탓에 아침부터 교통 체증을 겪은 것이다. 집회는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 10분까지 진행됐다. 오후 3시 기준 여의대로 통행 속도는 시속 1~2㎞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오후 6시쯤까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회가 끝난 뒤에도 이 무대를 철거하느라 차로가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인 오후 7시쯤까지 교통 체증은 계속됐다. 결국 출근길부터 퇴근길까지 온종일 이 주변 차량이 거북이 운행을 한 셈이다.

최근 서울 도심에서 차로를 점거하는 각종 집회·시위가 잇따르고 있는데, 일부 집회·시위는 이처럼 대형 무대를 설치한다는 이유로 온종일 차로를 독차지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막기 보다 이날 여의도 상황처럼 이들이 새벽부터 무대를 만드는 걸 도와주듯 도로를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수시로 출퇴근 대란을 겪는 시민들 사이에선 “경찰이 교통 질서를 확보하려 하지 않고, 왜 이런 상황을 지켜만 보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공공운수노조, 민주일반연맹, 서비스연맹 등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위원회 관계자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공공부문비정규직 총파업대회를 열고 실질임금 삭감대책 마련, 복지수당차별 완전철폐, 직무성과급제 저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2일 오후 1시에 여의도에서 열린 민노총 전국건설노조의 ‘건설노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도 오전 4시부터 차로가 통제됐다. 이는 출근길 혼잡으로 이어졌다. 이때도 집회 무대 등을 설치한다며 아침부터 길을 막은 것이다. 무대 설치 등을 하는 업계 관계자는 “무대 규모가 작으면 3시간 정도면 되지만 최근에는 집회마다 무대 규모를 두고 경쟁이 붙어 서로 더 크게 만들려고 한다”며 “LED 화면 등을 설치하면 최소 7시간 안팎이 걸린다”고 했다. 광화문 일대에서 주로 집회를 여는 자유통일당도 최근 몇 달간 토요일 오후 2시에 집회를 열었는데, 무대 설치를 오전 4시부터 했다고 한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특히 최근 성향이 다른 집회가 세종대로나 여의대로 같은 데서 경쟁적으로 열리면서 무대도 더 커지는 추세”라고 했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등 현행법에 사각지대가 있어 규제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우선 차로에 무대를 설치하지 못하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게 경찰 주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원도 차로에서 집회·시위를 해도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피해를 다소 발생시킨 경우는 위법성이 없다고 판결한 적이 있어서 엄격하게 규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무대 설치·철거를 하는 동안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막아줘야 하기 때문에 이때 경찰이 차로를 통제해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출근 시간을 피해 무대 설치를 하는 것으로 주최 측과 협의해 조정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협의가 잘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 선례를 만드는 등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집시법뿐만 아니라 도로교통법 등을 적극 적용하면 차로를 차지하는 과도한 집회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특히 요즘처럼 도로를 막고 설치하는 무대는 ‘교통에 방해가 될 만한 물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도로교통법 68조나, 교통을 방해하는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185조 등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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