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모하비가 2024년 7월,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 2008년 첫 출시 이후 15년 넘게 국내 대형 SUV 시장을 지켜온 프레임 바디 정통 SUV의 마지막이 조용히 다가왔다. 한때 오프로드의 아이콘이자 국산 SUV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모하비의 퇴장은 시대의 흐름이 바꾼 운명이기도 하다.

모하비 단종의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수요 감소’다. 2024년 4월 한 달 판매량은 고작 257대. 전성기 시절 월 수천 대씩 팔리던 위용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소비자들이 디젤보다는 하이브리드, 혹은 전기차로 옮겨간 지금, 디젤 단일 파워트레인만을 고집한 모하비는 시장에서 점점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환경 규제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강화되는 배출가스 기준과 저공해차 우대 정책은 디젤 SUV에게는 명백한 불리 요소다. 전기차, 하이브리드 차량에 혜택이 집중되면서, 디젤 차량은 점점 ‘비효율적인 선택’으로 여겨졌다. 프레임 바디의 장점보다, 탄소 배출의 단점이 더 크게 보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 기아의 전략적 구조조정도 한몫했다. 기아는 내연기관 중심의 SUV 라인업을 재편하며, 전동화와 글로벌 전략 모델에 무게를 싣고 있다. 모하비처럼 프레임 바디 구조이면서 전동화가 어려운 차량은 자연스럽게 정리 대상이 됐다. 반면 EV9, 쏘렌토 하이브리드, 텔루라이드 같은 모델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모하비의 철학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아는 현재 ‘타스만(Tasman)’이라는 이름의 픽업트럭을 개발 중이며, 이 차가 모하비의 플랫폼을 물려받는다. 프레임 바디 기반에 오프로드 주행 성능, 강인한 디자인까지 계승된 타스만은 모하비의 ‘영혼을 계승한 후속’으로 평가받는다.

타스만은 특히 호주, 중동, 동남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삼는다. 현대의 싼타크루즈보다 훨씬 터프한 성격의 정통 픽업트럭으로, 글로벌 오프로더 수요를 정조준한다. 실내는 파노라믹 디스플레이 구조를 갖추며, 고급감과 실용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구성을 지녔다.
디자인은 기아의 최신 아이덴티티 ‘타이거 페이스’를 적용한다. 수직형 DRL, 직각 범퍼, 각진 보디라인은 실용적인 픽업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강인한 오프로더의 인상을 풍긴다. 이 콘셉트는 기존 모하비에서 느낄 수 있었던 무게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모하비라는 이름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기아 디자인 관계자는 “타스만 기반의 SUV 수요 가능성을 알고 있다”며, 향후 상황에 따라 SUV 형태의 후속 모델이 등장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브랜드 헤리티지를 고려하면, 기아가 ‘모하비’라는 이름을 완전히 버리진 않을 수도 있다.
자동차 한 모델의 단종은 종종 ‘사라짐’이 아닌 ‘진화’의 다른 표현일 때가 많다. 모하비의 퇴장도 그런 맥락이다. 그 존재는 조용히 사라졌지만, 그 철학과 정신은 타스만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다. SUV에서 픽업으로, 그리고 다시 SUV로의 회귀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모하비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시점은 단지 작별 인사만을 나눌 때가 아니다. 오히려 타스만의 등장을 통해 새로운 기대를 품을 시점이다. 정통 SUV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이름은 바뀌고 형태는 달라질지 몰라도, 진짜 SUV의 ‘영혼’은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