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당일치기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는 고등학교 선생님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속출했지만 돌연 사라진 여행자들. 그들은 직장, 가정, 자신조차 잊은 채 여행길에 올랐는데, 유행병처럼 유럽에 번져 정신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을 미치광이에 빗대었다고 한다. 시대는 그들을 가리켜 둔주, 보행성 자동증, 방랑벽 등으로 불렀다고. 하지만 20세기가 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과연 미쳐서 여행을 떠난 걸까,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떠난 걸까.
21세기가 되자 비슷한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일과 스마트폰에 중독된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하나둘씩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가까운 교외, 캠핑, 세계 구석구석으로.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거다. 인생 자체가 삽질이자 긴 여행인 것. 너무 많은 정보와 관계, 일에 지친 사람들이 계속 있는 한 여행은 언제나 필요하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25분 내외의 형식으로 해남-군산-부산-속초- 대전- 서울- 제주- 경주를 다닌다. 토요일 딱 하루, 당일치기 여행을 졸졸 따라가 봤더니.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은 기본 덤으로 여행까지 다녀온 기분이다. 각 여행지마다의 다양한 재미 요소와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 유명 관광지는 없고, 현지인만 알 식당이나 장소라 조용하고 편안하다.
번아웃이 온 적 있다면 공감할 이야기가 가득하다. 박하경의 가벼운 가방처럼 잡념을 비우고, 추억은 채우고, 돌아오면 되는 거다. 여행지에서 뭔가를 해야 하고 봐야 한다는 강박 없이, 계획대로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이 아닌. 그저 발길 따라 걷고, 먹고, 멍 때리는 여행. 우연이 거듭되다 만들어 낸 필연에 웃음 짓고, 과거의 약속을 지키러 떠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유유자적 여행을 다룬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의 이종필 감독이 연출했다. 오랜만에 반가운 ‘심은경’부터, ‘선우정아’의 묵언 연기, 무용전공자 다운 한예리의 춤사위, <러브레터>가 생각나는 구교환 등도 등장한다.
무엇보다 손미 작가의 대사가 가슴에 콕 하고 박힌다. 손미 작가는 동네 서점에서 만난 국어 교사가 매주 토요일마다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니지 않으면 스스로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했던 일화에 영감받아 이야기를 썼다.
일상의 소소함과 특유의 잔잔함이 무기인 일본 스타일이다. 분위기면에서 <리틀 포레스트>, <카모메 식당>, <안경>, [고독한 미식가], [심야식당],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작품도 떠올랐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한다면 금방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개봉작이 점차 길어지고 무거워지고 있는 상황,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OTT 시리즈의 범람에서 무해한 시리즈다. 각각 연결되어 있지 않아 어느 회차를 골라 보든 상관없다. 국어 선생님 박하경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만남을 그렸다. 그날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위로받고 싶거나 동경하고 싶을 때 꺼내 볼 수 있다.
에디터: N잡러, 사진: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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