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경찰·구청 모두 혐의 부인…유족 "진실 밝혀달라"

CBS노컷뉴스 박희영 기자 2023. 3. 1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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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서부지법서 경찰·구청 관계자 각각 첫 준비기일 열려
공판준비기일 출석해 형사책임에 문제 제기…허위공문서 혐의 부인
방청석서 지켜보던 피해자 유족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살인"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왼쪽), 박희영 용산구청장. 황진환·류영주 기자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주요 책임자인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총경)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이 모두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17일 오전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서장,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 등 경찰 관계자 5명의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은 향후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미리 검찰과 변호인이 쟁점 사항을 정리하고 필요한 증거와 증인 신문 계획 등을 세우는 절차다. 피고인들의 출석 의무는 없고, 변호인이 혐의 인정 여부를 밝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날 구속 상태인 이 전 서장과 송 전 실장을 비롯한 경찰 쪽 피고인은 전원 출석했다.

피고인들은 지난해 핼러윈 데이를 앞둔 10월 29일 법령과 매뉴얼 등 주의의무에 따라 사전 대응 의무를 소홀히 하고 당일 조치도 미흡해 사상자를 발생시킨 혐의를 받는다.

특히 이 전 서장은 핼러윈 축제 기간 경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안전 대책 보고에도 사전 조치를 하지 않고, 이태원 참사 당일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등 지휘를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로 지난 1월 구속기소됐다.

또 참사 당일 오후 11시 5분쯤에야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음에도 48분 전인 오후 10시 17분 도착했다는 허위 내용의 경찰 상황보고서가 작성된 데 관여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서장이 사고 발생 2시간 전부터 위험한 상황임을 인지하고도 인파 관리에 나서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핼러윈 인파에 대비하기 위해 서울경찰청에 경비기동대 지원을 요청했다는 이 전 서장 주장도 허위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이날 법정에서 이 전 서장 측 변호인은 "도의적·행정적 책임을 떠나 형사상 책임까지 지는 것에 대해 법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허위공문서 작성 관련 사실관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게 맞느냐"는 판사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송 전 실장과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를 받는 정현우 전 용산서 여성청소년과장,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받는 생활안전과 경위도 이날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송 전 실장은 참사 당시 현장 책임자로서 지휘 및 보고를 소홀히 하고, 112 신고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을 받는다.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2차 공청회에서 유가족 진술인 조미은, 최선미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윤창원 기자


이날 법정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유가족들도 출석했다.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한 피해자 유가족은 "저희가 원하는 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과"라며 "경찰서장으로서, 상황실장으로서 왜 (대응을) 못했는지. 참사 전에 신고가 79건이나 나왔다. 신고내용 인지 못 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인지한다는 건가. (신고가 이어지면) 당연히 보고하고 조치해야지 뭐 하셨느냐. 현장만 나갔어도 이렇게 안 되지 않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故) 이지한 배우 어머니 조미은씨도 "어떻게 죄가 있다고 스스로 말하겠느냐. 저라도 이 자리에서는 도의적 책임이 있지만 형사적 책임은 없다고 하겠다"며 "보고 못 받았다고요? 13만 명이 모인 축제다. 길을 가다가 경찰 도움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압사당해 죽은 아이 부모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살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 대책 없이 숨을 못 쉬어서 그 자리에서 모두 사망한 159명을 위해 판사님의 깊은 판단이 넓게 작용하기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지난 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의원 질의를 받고 있다. 윤창원 기자


재판부는 이날 박희영 구청장 및 유승재 부구청장, 문인환 전 용산구 안전건설교통국장, 최원준 전 용산구 안전재난과장 등 용산구청 관계자 4명에 대해서도 공판준비기일 절차를 진행했다.

이날 구속상태인 박 구청장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지만, 역시 구속상태인 최 전 과장과 불구속 상태인 유 부구청장, 문 전 국장 등 피고인 3명은 법정에 모습을 비췄다.

박 구청장 등은 재난·안전 관련 1차적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및 소관 부서장으로서 핼러윈 축제 기간 이태원 일대에 대한 실효적인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 시행하지 않았고,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적절히 운영하지 않고 경찰·소방 등 유관기관과의 협조체계도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는다.

아울러 인파가 몰려 압사사고 위험성이 감지됐을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당직실 등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었음에도 적시에 인력 배치나 도로 통제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참사가 일어난 뒤에는 재난 대응 및 수습 등의 조치를 적절히 하지 않았다는 혐의도 받는다.

용산구청 전경. 용산구 제공


그러나 용산구청 관계자들 역시 이날 법정에서 공소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구청장 측 변호인은 "인과관계 관련성이나 구체적 주의의무가 제시되지 않았고, (이태원 참사) 예견 가능성, 회피 가능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공소장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다"며 본 재판 전 한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을 열겠다고 밝혔다. 이 전 서장 등 경찰 관계자들의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다음 달 10일, 박 구청장 등 구청 관계자들의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다음 달 17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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