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버리고 논산으로…배우 차인표가 증명한 ‘진짜 사나이’의 무게

1994년 대한민국은 이른바 ‘차인표 신드롬’으로 들끓었다.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색소폰을 불고 검지손가락을 흔들던 신인 배우 차인표는 단숨에 당대 최고의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연예계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급격하고 거대한 인기였다.
그 인기의 정점에서 차인표는 대중의 예상을 뒤엎는 파격적인 선택을 내렸다. 바로 미국 영주권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대한민국 육군 현역 입대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병역 기피를 위해 편법을 동원하던 일부 연예계 세태 속에서, 그의 행보는 사회적으로 거대한 울림을 주었다.

차인표는 과거 미국에서 5년여간 거주하며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다. 1993년 2월 귀국해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인 1994년 곧바로 스타덤에 올랐다.
사건의 발단은 1994년 7월, MBC 드라마 카레이스키의 해외 촬영을 위해 출국을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당시 병무청은 그가 미국 영주권자라는 이유로 병역 기피 우려가 있다며 출국을 제한했다. 영주권 지위를 유지하며 국내 활동을 이어갈 수도 있었고, 미국으로 돌아가 병역을 피할 수 있는 통로도 열려 있었다.
그러나 차인표는 꼼수나 편법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훗날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군대에 가지 않으려면 편법을 쓰거나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당당하게 살고 싶었기에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병역은 당연한 의무였다.”

그는 출국 제재 직후 미련 없이 미국 영주권을 반납했고, 1994년 12월 1일 충남 논산훈련소를 통해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차인표의 군 생활 역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입대 후 이등병 신분이던 1995년 3월,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추며 연인으로 발전한 배우 신애라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군 당국이 규정에 따라 지급한 9박 10일의 청원휴가를 받아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훈련소 생활 중 일화도 유명하다.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했던 그는 이등병 시절 얼차려로 팔굽혀펴기 100개 지시가 내려지자, 속으로 ‘사회에서 매일 1,500개씩 운동했는데’라며 겉으로만 힘든 척 숨을 고르기도 했다는 일화를 밝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후 차인표는 경기 성남의 육군 군수관리학교에서 번역병으로 근무하다가, 국방부 국방홍보원으로 차출되어 군 관련 영화 및 문화 홍보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현역 복무 기간이었던 26개월을 단 하루의 잡음 없이 꼬박 채우고 만기 전역했다.

차인표의 이러한 행보는 이후 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후배 연예인들(연정훈, 앤디, 옥택연 등)이 자진 입대를 선택하는 데 거대한 이정표 역할을 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발생한 대형 연예인 병역 기피 사건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차인표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바른생활 사나이’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가장 화려한 전성기 시절, 손에 쥔 부와 명예 대신 국방의 의무를 선택했던 차인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영주권 포기 일화가 최고의 모범 사례로 회자되는 이유는, 그가 보여준 선택의 순수함과 당당함이 지닌 가치가 퇴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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