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은 1만? 코스피, 쭉쭉 갑니다”
[비즈니스 포커스]

“사실은 1만까지도 봅니다.”
지난해 7월 ‘코스피 5000’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A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내놓은 답변은 ‘충격’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그는 “공식 석상에서는 5000 도달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실제 내부 분석 모델에서는 1만1000까지도 가능하다는 시나리오가 나왔다”고 말했다. 코스피가 겨우 3000을 넘었을 때였다. 시장에선 사상 최고치였던 2021년 7월의 기록인 3300선을 넘어 연내 4000선까지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을 때 증권가 한쪽에서는 이미 ‘코스피 1만 시대’ 기대감이 부풀고 있었다.
믿고 보는 반도체 연금 그리고 외국인?
무모해 보였던 예언은 불과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5월 11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24.24포인트(4.32%) 오른 7822.24로 장을 마감하며 ‘꿈의 8000피’ 고지를 목전에 뒀다. 한국 증시 역사상 전례 없는 기록이다.

예측조차 상승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10월 27일 장중 4000선을 처음 넘어선 코스피는 3개월 만인 올해 1월 5000선을, 다시 한 달 만인 2월 25일 6000선을 차례로 격파했다. 그리고 6000 돌파 이후 단 47거래일 만에 7000피를 넘어섰다. 5월 11일 종가 기준으로 '8000피' 시대까지는 이제 단 177.76포인트만을 남겨뒀다.
시장의 눈높이는 이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NH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은 연간 예상 밴드 상단을 각각 9000과 8600으로 상향 조정했으며, 다수의 리서치센터가 하반기 전망 발표를 앞두고 지수 목표치를 일제히 끌어올리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이익 모멘텀의 지속과 저평가 업종의 가치 재평가가 맞물린다면 ‘1만피’도 실현 가능한 목표란 분석이 나온다. JP모건은 11일 보고서에서 한국을 아시아 지역 최선호 시장으로 유지하며 코스피 목표치를 강세장 시나리오에서 1만 포인트로 예측했다. 기본과 약세장 시나리오도 각각 9000과 6000선이다.
현대차증권도 연말 코스피 목표치를 9750으로 상향 조정하며, 최고 1만200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론적으로 실적의 지속성만 담보된다면, 길게 보면 코스피 1만 포인트 이상 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정도”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쏠림 현상이 나타나며 과열 양상을 띠고 있지만 시장의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8000선 안착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연말에는 8000에서 9000선 사이를 터치하는 흐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광풍의 중심에는 단연 반도체가 있다. 과거 한국 증시는 고유가 국면에서 무역수지 악화와 함께 속절없이 무너지는 공식을 반복해 왔다. 이번엔 다르다. 전문가들은 AI발 반도체 랠리가 고유가 충격을 상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이란 전쟁 위기가 고조된 지난 3월에도 국내 반도체 무역수지 흑자에서 원유 무역수지 적자를 뺀 수치는 약 183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가격 상승률이 유가 상승률을 압도하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iM증권 박상현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업황 사이클을 고려할 때 흑자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하반기에도 강한 상승 모멘텀이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JP모건은 "한국은 전 세계 시가총액 기준 상위 20위 안에 드는 종목 2개(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은 여전히 이 지역에서 가장 선호하는 시장으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지수 견인의 또 다른 축은 국민연금이다. 5월 6일 기준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17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넉 달 만에 지난해 전체 수익과 맞먹는 250조원 이상의 수익을 거둔 것이다.
이번 성과엔 올 1월에 기계적 자산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한 조치가 원인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자산 배분 원칙에 따라 자산군별 비중, 즉 국내 주식 비중이 목표 범위를 벗어나면 주식을 팔아치우는 ‘기계적 매도’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강달러 상황에서 국내 주식으로 해외 주식 이전을 확대하던 정부는 지난 1월 국내 주식 투자 비중 한도 적용을 상반기까지 전격 유예하며 족쇄를 풀어주었다. 결과적으로 이 조치는 신의 한 수가 됐다. 현재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당초 목표(14.5%)에서 상향된 목표치인 14.9%를 크게 웃도는 약 2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5월 말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2027~2031년 중기 자산 배분안을 확정한다. 현재의 강세장을 구조적 변화로 판단하는 기류가 우세한 만큼 국내 주식 투자 목표 비중을 상향 조정해 증시의 하방 지지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학계에서도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구조적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2.4배를 기록하며 독일(1.92배)과 일본(2.01배)을 넘어섰다”며 “코스피가 고질적인 저평가를 벗어나 프리미엄 구간에 진입한 만큼 현재 65% 수준인 위험자산 비중을 75%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외국인의 ‘역대급’ 공세도 화력을 더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저조한 가상화폐 시장 대신에 해외 개인투자자들이 압도적인 성장성을 보여주는 한국 증시로 대거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SNS상에서는 “코인하던 친구들이 이제 일요일 밤(한국 장 개장 시각)이면 한국 주식을 매매한다”는 글이 퍼질 정도로 열풍이 뜨겁다. 외국인 개미들이 SK그룹의 지배구조와 NAV 할인율을 분석하는 등 ‘K-주식’이 하나의 거대한 투자 밈(Meme)으로 자리 잡으며 코스피 1만 시대를 향한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되고 있다.
‘외국인 통합계좌’ 제도의 전면적 활성화라는 제도적 혁신도 한국 증시에 낙관적이다.
과거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을 사기 위해서는 복잡한 사전 등록 절차를 거쳐야 했으나 이제는 해외 증권사가 자국 투자자의 주문을 통합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삼성증권과 미국 대형 온라인 브로커 IBKR의 협업 등으로 미국 현지 개인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직접 쇼핑하듯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러한 제도적 접근성 개선은 유례없는 ‘불장’과 맞물려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타 대형사들도 외국인 통합계좌 서비스 개시를 준비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외국인 거래대금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포스트 반도체’ 주도주는?
상승장의 주인공은 오늘도 내일도 반도체다. 삼성전자의 올해 연간 순이익 전망치는 약 294조원으로 4분기에는 분기 순이익만 88조원에 달하는 가파른 우상향 곡선이 예상된다. SK하이닉스의 기세는 더 무섭다. 시가총액 1000조원을 돌파하며 ‘160만닉스’ 시대를 열었지만 2026년 예상 순이익 대비 선행 PER은 약 5배에 불과하다. 경쟁사인 마이크론(10배)의 절반 수준인 만큼 목표주가 200만원 시대가 열렸음에도 여전히 저평가 영역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5월 27일로 예정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등장은 이러한 우량주로의 수급 쏠림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연초 이후 가파르게 상승한 ‘삼전닉스’의 투자 전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분석한다.
KB증권은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메모리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AI 추론 시대의 핵심 수혜를 입을 것이라며 목표주가 36만원을 제시했다. JP모간(30만원), 노무라증권(32만원), 화타이증권(35만6000원) 등 국내외 주요 증권사들 역시 장밋빛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목표주가 200만원 시대가 열렸다. 노무라증권이 목표가를 234만원으로 상향 조정한데 이어 미래에셋, 다올, 한국투자증권 등도 일제히 200만원 이상을 부르고 나섰다.
반도체 랠리의 강력한 파트너는 전력 인프라 업종이다. 글로벌 빅테크들의 AI 설비투자(CAPEX) 가이드라인이 상향되면서 AI 데이터센터가 직면한 가장 큰 숙제인 ‘전력난’이 이들 기업에 거대한 기회가 되고 있다.
변압기와 전선 수요가 폭발하며 제룡전기, 서전기전 등이 상한가를 기록하고 광통신 장비 기업인 머큐리가 급등하는 등 인프라 섹터 전반에 훈풍이 불고 있다. AI 시대가 지속되는 한 2028년까지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뒷받침된 구조적 성장이다. 칩(반도체)이 뇌라면 전력망은 신경계라는 점에서 반도체와 함께 1만 시대를 이끌 핵심축으로 평가받는다.
증권업종은 외국인 통합계좌라는 제도 혁신을 등에 업고 주도주 대열에 합류했다. 그간 기관 중심이었던 외국인 수급이 통합계좌를 통해 글로벌 개인투자자들로 확산될 전망이다. 삼성증권과 IBKR의 협업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외국인 개인투자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되면서 간접적으로 국내 증시가 활성화되는 2차 파급효과까지 감안하면 이번 통합계좌 서비스 확대는 증권업에 유의미하게 긍정적인 내용”이라고 진단했다.
2차전지, 기계·조선도 주목해야 할 섹터다. 4월 한 달간 외국인이 가장 공들여 지분을 늘린 곳은 2차전지, IT하드웨어, 상사·자본재(방산), 철강(포스코홀딩스), 에너지 순이다. 시총 상위 섹터로 국한해서 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2차전지 관련 섹터와 종목에 무게추를 뒀다. 기관은 기계와 조선 섹터를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순매수 2~3위다.
김준영 iM증권 애널리스트는 “탄탄한 실적 스토리와 수급 뒷받침을 고려할 때 4월을 주도했던 기계, 2차전지, IT하드웨어 등은 5월의 짧은 조정을 거친 뒤 재차 신고가 랠리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단, 이번 랠리의 리스크는 미중 정상회담과 금리다.
전문가들은 다가오는 미중 정상회담이 반도체 랠리에 단기적으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희토류 공급을 받는 대가로 중국에 첨단 칩 장비 접근권을 일부 허용할 경우, 장기적으로 섹터 내 가격 하락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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