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Interview] 김강민

집으로

착륙 준비를 위해 승무원들이 분주해지면 승객도 눕혀 둔 의자와 내려 놓은 창문을 정리하고, 안전벨트를 채운다. 여행지로 향하고 있다면 설렐 테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면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심과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복잡한 마음이 교차할 시간.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해에 태어난 김강민이 22년의 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상상 속 동물인 비룡으로, 적수가 없는 동물인 독수리로 날던 그가 드디어 인천 땅에 연착륙한 것이다. 고향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곳으로 돌아온 김강민. 비록 선수 생활의 끝을 고하러 왔지만, 여행과 마찬가지로 뭐든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는 법이다. 끝과 함께 새 시작을 알린 2025년 6월 28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Seohyeon Kim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선수 생활을 졸업하고 처음 만나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직접 소개 부탁해요. (6월 30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대학원생 김강민입니다. 은퇴 후에 가장 처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대학원 입학이었어요. 공부하며 비는 시간에는 KBO 전력강화위원이자 MBC Sports+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학업과 전력강화위원, 해설위원 일을 병행하고 있나요?
처음 KBO에서 전력강화위원을 제안하셨을 때는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시간을 얼마나 낼 수 있을지 몰라서 고사했어요. 그런데 은퇴한 후에도 야구장은 자주 다니려고 생각하던 참이었고, 전력강화회의도 경기 없는 월요일에 주로 열려서 참여하게 됐어요. 어찌 됐든 제게도 좋은 공부가 될 듯해서요. 그리고 해설위원은 야구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자리다 보니 기회가 왔을 때 하겠다고 했죠. 선수 입장으로 경기를 보는 거랑 중계석에서 바라보는 건 또 다르거든요. 방송사에도 학업에 집중해야 해서 원정 경기 출장이 어려울 거라고 말했는데,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 금요일 하루만 출연하는 걸 제안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현장 중계에는 참여하지 않는 거예요.

펜을 잡게 된 계기는 뭐예요?
은퇴 후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친한 형이 먼저 추천해 주셨어요. 은퇴 후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고 싶었는데 연수를 갈지, 뭘 하면 괜찮을지 고민하다가 “아… 학교나 갈까?” 했더니 “학교? 좋은데?” 해서 시작된 거죠. 그러더니 다음 날 인천대학교 스포츠과학부 교수님들 라인업을 보여주는 거예요. 추진력이 뛰어나시죠? 전 그냥 ‘공부를 하면 좋겠다’라고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친한 형님이 체육과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운동하며 느꼈던 걸 교수님께 브리핑하니까, 논문을 만들어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20년 넘게 야구만 해 오다가, 가만히 앉아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았겠어요.
세상에 쉬운 건 없죠. 근데 문제를 풀어야 하거나 시험을 준비하는 공부가 아니라, 지식을 쌓는 거라서요.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새롭게 배우는 이론과 제 경험을 결합하는 공부예요.

세 딸의 아빠잖아요. 은퇴 후에는 일상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선수 시절보다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긴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죠. (친구 같은 아빠일 느낌인데요.) 친구가 되고 싶은데 말을 너~무 안 들어요. 그래도 친구면 저를 좀 따라 줘야 하잖아요. (앞으로도 아이들의 체육 대회에 나갈 건가요?) 그때 논란이 된 이후로 이젠 숨어서 지냅니다. 우선 저도 그때만큼은 체력이 안 되고요. 최근에도 행사가 몇 번 있었는데, 더는 화젯거리나 논란이 되기 싫었어요. 그때 한 번만 실수로 남겨 둘게요.

#Butterfly

6월 28일에 은퇴식을 치르며 오랜만에 인천 SSG 랜더스필드 그라운드를 밟았어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선수들이 모두 입장하고 제가 잔디를 밟는 첫발에 감정이 훅 올라왔어요. 저도 그 정도로 이르게 눈물이 날지는 몰랐거든요. 속으로 ‘야, 이제 시작이야. 이거 아니야. 시작부터 왜 이러는 거야?’라고 되뇌면서 눈물을 삼켰죠. 이런 마음이 들었던 건, 제가 은퇴식을 못 할 수도 있었잖아요. 하더라도 그 장소가 인천이 아닐 수도 있었고요. 근데 인천 팬분들과 지금까지 절 응원해 주셨던 분들에게 인사하고 떠날 수 있는 자리가 무사히 마련됐다는 게 감격스러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문학 1루측에서 경기에 나선 게 무척 오랜만이었죠.
그 더그아웃에서 그라운드로 나서는 일이, 제가 지난 시간 동안 무수히 해 오던 것의 마지막이었잖아요. 그런 복잡한 마음에서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최지훈에게 글러브를 건네주며 했던 말은 뭐였나요?
되게 짧게 얘기했어요. “다치지 말고, 잘해”.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잖아요. 저는 선수를 볼 때, 능력치는 대부분 정해져 있다고 봐요. 어느 정도의 성적을 기록할 수 있다면 그 정도의 플레이는 꾸준히 할 수 있다고요. 근데 중요한 건 안 다쳐야 경기에 나올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지훈이한테도 많은 의미를 담아 짧게 말한 거예요. 다치지만 않으면 충분히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라서요.

최지훈이 처음에 달려오며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사실 주변이 소란스러우니 지훈이가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도 않았어요. 제가 다치지 말고 잘하라고 하니까 그냥 “넵!”하고 말았죠.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특별 엔트리에 등록되는 것도 고사한 이유가 있나요?
이런 인터뷰 기회가 있으면 꼭 얘기하고 싶었는데, 김재섭 대표님부터 마케팅팀 김재웅 팀장님까지 행사를 정말 세밀하게 준비해 주셨어요. 사실 특별 엔트리를 거절한 것도, 선수들의 경기 준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거든요. 몸이 안 받쳐 주기도 했고요. 원래 구단에서는 제가 중견수 자리에서 홈으로 송구하듯 시구하는 걸 제안해 주셨거든요? 팬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걸로 최대한 다양한 걸 준비해 보자고 의견이 모였어요. 그런데 공 던지는 연습을 해 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던진 다음 날 팔이 안 올라가고, 그게 그다음 날까지도 회복이 안 됐어요. 홈까지 던지려면 한 달은 준비해야 할 듯싶어서 외야 시구 제안은 고사했습니다.

은퇴식의 소감도 궁금해요.
사실 행사가 끝나고 난 뒤에도 고맙단 얘길 계속 해 왔는데 이게 다 전해질지 모르겠네요. 첫 번째로는 팬분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어떤 기발한 이벤트를 기획한대도 팬 여러분이 야구장을 가득 채워 주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끝까지 호응을 보내 주시지 않았다면 은퇴식은 멋있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인천 팬분들만이 아니라 한화 팬분들도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 주셔서 평생 기억에 남을 은퇴식이었어요. 두 번째로는 김재섭 대표님이랑 마케팅팀, 홍보팀 직원들이 행사를 잘 꾸며 주고, 당일에는 제 일정에 맞춰 따라다니면서 정말 고생하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서라도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 팀 선수들이 정말 고생했어요.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모두 최선을 다하는 게 보였고요. 특히 랜더스 선수들이 굉장히 이기고 싶어 하는 게 느껴져서 오히려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다친 사람 없이 경기가 끝나서 다행입니다.

기예르모 에레디아는 은퇴식 당일 경기에서 등장곡을 선수 김강민의 등장곡이었던 러브홀릭스의 ‘Butterfly’로 바꿨더라고요.
아휴… (손사래) 전 그 사실을 다음 날에야 알았습니다. 당일에는 입중계 라이브도 했고, 정신없이 다니느라 밥도 못 먹어서 2kg이 빠졌거든요. 그 정도로 바빴고, 경기 중에는 경기장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전혀 몰랐어요. 봤으면 고맙다고 얘기했을 텐데요. 사실 에레디아한테 참 고마워요. 저는 그 친구한테 특별히 잘해준 건 없다고 느끼거든요. 말 한마디 더 하고 장난치는 정도였는데 제가 떠난 뒤에 가끔 만나면 굉장히 반가워하더라고요. 오히려 멀어지면서 더 애틋해진 것 같아요. 만나면 꼭 “보고 시퍼써~”라고 하고요. 은퇴식 전에 라커룸에 가서 선수단하고 인사하는데, 에레디아가 계속 제 응원가를 부르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야, 진정해. 은퇴식은 내가 하는 거고 넌 시합해야지”라고 진정시켜도 저 멀리서부터 등장곡을 부르면서 와요. 잘해야 한다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첫 타석에서부터 병살타를 치더라고요? 기분 좋다고 까불 때부터 알아봤다. (장난)

그 주에 계속 비 예보가 있어서, 팬들과 마찬가지로 좀 초조했겠어요.
안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비 걱정을 하길래, 그것 때문에 은퇴식을 못 하게 되면 그것도 하늘의 뜻인 거라고 했죠. 날씨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제가 천막을 사서 문학 구장을 덮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럴 능력이 된다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만…? 그리고 운명이 저한테 나쁘게 작용할 거란 생각을 안 해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보고요. 그래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어요. 다행히 먹구름이 걷혔고, 오늘 하라고 날이 갰나 보다 싶었죠. 무사히 끝낼 수 있어서 하늘에도 감사해요.

#왕조의 중견수, 본능수비

딱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김강민의 야구 인생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예요?
당연히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이죠. 이번 은퇴식에서도 당시를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했잖아요. 저는 그때 감정이 가장 세게 올라왔거든요. 제 야구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돌이켜 보는 데서 오는 감격이었어요. 그때는 마냥 기쁘기만 했는데, 추억에서 오는 감동이 있죠. 사실 이런 퍼포먼스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좀 식상한 거 아닌가 했어요. 근데 주변에서 꼭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선수들이 나와서 그날처럼 홈플레이트 주변에 모여 있었잖아요. 선수단 속으로 들어갈 때 툭 터지고, (추)신수랑 껴안으면서부터는 완전히 눈물샘이 폭발했어요. 근데 영상을 돌려 보니까 저 혼자 울더라고요?

은퇴식에서도 2022시즌이 떠올랐겠어요.
선수뿐만이 아니라 스태프를 포함한 팀원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했던 시즌이었어요. 한유섬은 개막하자마자 미친 한 달을 보냈고, 외국인 투수가 한 명 부족한 상황에서 김광현이 그만큼의 역할을 했고요. 사실 제가 5차전 홈런 하나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크게 받아서 그렇지, 최정도 시리즈 내내 MVP를 받을 만큼 꾸준히 잘했잖아요. 추신수도 시리즈 전 경기에서 출루했고요. 그리고 최지훈과 박성한이 그해에 커리어 하이를 찍은 게 정말 놀랍죠. 쥐어 짜냈다고 표현할 만큼 우리가 예상했던 전력 그 이상의 성적을 낸 시기였어요. 그래서 유독 그때 그 멤버들이 다 애틋하고 고마워요.

특히 마음에 남은 동료도 있었나요?
신수가 SSG에 처음 온 2021년부터 추억이 정말 많은데, 따로 고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어요. 지금은 둘 다 선수 생활을 그만뒀지만, 최고참으로 있을 때 신수의 존재가 제게 큰 힘이 됐거든요. 팀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고 노력도 열심히 했고요. 제가 랜더스를 떠나게 됐을 때도 혼자 남은 신수가 마음에 걸렸는데, 신수도 제가 가는 걸 가장 속상해했어요.

OBS ‘돌아온 불타는 그라운드’에선 어린 시절의 본인보다 최지훈이 잘하고 있다며, 김강민 실책 모음을 보여 주라고도 했잖아요. 웃으며 지나갔지만, 어린 김강민은 실책의 순간을 어떻게 이겨 냈나요?
실책의 순간을 이겨 내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애초에 실책이 나올 만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싶었죠.

그때 인터뷰에서는 최지훈이 자책하고 있을 거라 예상하더라고요. 어린 시절에는 실책 후에 자책하는 편이었나요?
그럼요. 정말 힘들어했죠. 근데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베테랑이 된다고 봐요. 최지훈 선수의 퍼포먼스 자체는 굉장히 뛰어나거든요. 그런데 긴 시즌을 치르면서 잘할 때와 잘 안 풀릴 때의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조금 어린 나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프로에 데뷔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경험이 쌓이다 보면 지금보다 더 노련해질 거라 봐요.

그럼, 현역 중 최고의 퍼포먼스에 노련함까지 갖춘 외야수는 누구라고 보나요?
정수빈(두산 베어스)이랑 박해민(LG 트윈스)이요. 이 두 명은 갖고 있는 능력도 출중하지만, 경험을 토대로 단단해져서 노련해진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KBO 전력강화위원으로서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orld Baseball Classic, 이하 WBC)을 앞두고 외야수 딱 세 명만 뽑는다면요?
수비로 뽑으면 앞에 얘기한 정수빈, 박해민, 최지훈이요. 공격까지 포함하면 그 세 명 다 안 들어갈 수도 있지만요. (하하) 이건 농담이고요. 일단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가 있으니까요. 이정후를 중견수 자리에 확실히 뒀는데, 그다음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올해 성적도 중요하고,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나 주루 능력도 봐야 하고요. 부상 이력까지 전반적인 부분을 종합해서 추려 봐야죠. 연령 제한 없이 무조건 실력만 보고 팀을 꾸릴 거라, 저희 위원들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보나요?
새로운 체계와 발전이 필요하겠죠. 국제 경쟁력이라는 것도 어찌 됐든 리그의 질이 전체적으로 올라가야 같이 생긴다고 생각하고요. 선수들이 대표팀에 자부심을 가지려면 팀 자체가 강해야 하잖아요. 플레이어로서 능력치를 끌어올리면, KBO에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줘야죠. 그래야 선수들도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지 않을까 싶어요.

객관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솔직히 현재 성적은 뛰어나지 않다고 느껴요. KBO에서도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결과가 지금 당장 나올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선수들 개개인의 실력이나 역량이 올라와야 하니까 그걸 위해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고요. 선수들도 각자 자신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내년에 열릴 대회에서 우리 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해 봐도 될까요?
당연히 기대하셔야죠. WBC에서 무조건 만족스러운 성적을 낼 수 있게끔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현재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 드릴 수 있게요.

#운명처럼 다가온 왕조

앞서 언급됐던 ‘불타는 그라운드’는 시간이 지나고 돌려 본 적도 있나요?
가끔 쇼츠나 제 알고리즘에 뜨면 보긴 해요. 대구 본가에 갔던 영상도 있었죠. 그런 거 보면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박정권 감독과 조동화, 박재상 코치, 최정 등 한 시대를 주름잡은 선수들이 비슷한 시기에 전성기를 맞았다는 점에서 새삼 신기할 것 같아요.
저희만의 얘기긴 하지만, 사실 조동화 코치랑 박재상 코치, 저까지 셋이서는 2군에서부터 외야를 함께 봤어요. 우익수는 조동화 코치님, 좌익수에 박재상 코치님, 그리고 제가 중견수로 나갔잖아요. 당시 2군에 있을 때 같이 고생했거든요. 그런데 누가 먼저 1군에 올라가도 서로 라이벌이라고 느끼질 않았어요. 지금 봐도 그게 정말 신기해요. 어느 한 명이 부진해야만 내가 1군에 올라갈 수 있다고 여긴 적이 없어요. 일단 누구든 잘하길 바랐죠.

셋이 외야에 있으면 어떤 어려운 타구도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어요.
그렇게 함께 고생하다가 김성근 감독님이 부임하셨고, 그 세 명이 문학 외야를 지켰죠. 이번에 조동화 코치님이 은퇴식에서 ‘강민이가 센터에 있으면 편했다’라고 했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어떤 선수들보다 박재상-김강민-조동화 이 셋이 외야에 있으면 서로 마음이 잘 맞았어요. 내가 못 잡는 공은 다른 사람이 처리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못 잡는 공은 제가 꼭 잡아 내야 했고요. 우스갯소리로 서로의 숨소리만 들어도 어디쯤 왔는지 안다고 얘기하곤 했어요. (넓은 외야에서 관중도 있는데 숨소리까지 들려요?) 박재상 코치 숨소리가 좀 크긴 해요.

은퇴하면 김성근 감독과 왕조 시절 선수 모임에 함께할 수 있잖아요. 이건 어떻게 연락이 닿는 건가요?
은퇴하면 바로 단체 채팅방에 초대됩니다. 정근우 전 선수나 박재상 코치, 박정권 감독 같은 분들이 단체방에 새로운 은퇴자를 넣겠다고 하면 NC 다이노스 이호준 감독님한테 전화가 오죠. “어, 들어와” 이렇게요. 그렇게 그 모임에 합류하게 됩니다.

KIA 타이거즈 김도영이 가장 처음 좋아했던 선수로 김강민을 꼽았잖아요. 지난 170호(25년 6월 호)에서 그 이유를 물어봤더니 야구를 시작했을 때 중견수였고, 타격폼이나 짐승이란 별명이 멋있어서라고 하더라고요.
음~ 그래요? (씨익) 이유까지는 몰랐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쁘죠. 김도영 선수는 앞으로 대한민국 야구를 끌고 나가야 하는 선수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선수가 절 좋아했다고 하니까 뿌듯하네요. 안타까운 부상도 있었지만, 잘 이겨 내리라고 믿어요. 근데, 짐승보다 위에 있는 존재는 뭘까요? 야수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괴물은 대전에 있고… 아무튼 김도영 선수는 그런 과예요. 신체 능력 자체가 워낙 탁월해서 제가 찾지 못한 그 수식어를 뛰어넘는 선수로 보이고요. 예전의 제 타격폼을 좋아해 줬다고 하지만, 지금 김도영 선수의 자세가 메커니즘상으로도 훨씬 뛰어나요. 앞으로도 더 발전할 거라 믿고요. 어디가 한계인지 감히 제가 가늠할 수 없는 급의 선수인 것 같아요.

원조 미남 야구선수잖아요. 나를 이을 미남 선수를 꼽자면 누가 있을까요?
선수 생활하며 본 선수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KT 위즈 장진혁 선수가 진~짜 잘생겼어요. 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저는 지금껏 잘생긴 선수를 꽤 봤거든요. 예를 들면 이한진 전 선수도 로마나 아랍 계열이잖아요. 그런 느낌은 몇몇 봤는데 장진혁 선수가 제일 잘생겼고 옷태도 좋아요. 그리고… 음, 내가 눈이 높나? 따로 떠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네요. 진혁인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다르거든요.

은퇴를 결심하고 가장 기대됐던 점이 있었다면요?
큰 스트레스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거요. 요즘 여러 매체에서 스포츠 종목끼리 비교하며 뭐가 더 힘든지 가르려고 하잖아요. 솔직히 야구라는 종목 자체는 딱 한 경기만 놓고 비교한다면 다른 것보다 힘들진 않죠. 그런데 리그를 치르는 프로 스포츠라는 관점에서 비교하잖아요? 그럼, 프로야구는 어마어마하게 힘든 종목이 돼요. 한 시즌에 144경기, 일주일에 6경기를 치르잖아요. 이렇게 경기 수가 많은 게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어요. 공부해 보니, 심리적인 압박을 받으면 몸에 오는 충격도 꽤 크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을 다스리느라 머리도 쓰고, 몸도 써야 하는 게 정말 힘든 일이에요. 매일의 경기에서 결과가 나오고 그 성적에 스트레스가 따르는데, 다음날 또 경기가 있잖아요. 재정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시즌엔 정말 야구에만 몰입해서 살아야 했는데, 거기서 벗어났달까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어 온 만큼, 야구 내외적으로 후배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도 있을까요?
야구를 최우선으로 두되, 몸도 마음도 리프레시를 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건강한 취미 활동은 선수로서 커리어를 이어 가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시즌 내내 야구에만 둘러싸여 있으면 그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잖아요. 컴퓨터 게임도 좋아요. 요즘 어린 후배들은 피시방에 곧잘 가더라고요. 제가 최고참일 때 원정 호텔에서 밖에 나가는 선수를 마주치면 어디 가냐고 물어보거든요. 그럼 꼭 쭈뼛쭈뼛하면서 “저 피시방이요…”하는 애들이 있어요. 또 늦은 시간에 마주쳐서 어디 갔다 오냐고 물어보면 또 “피시방…”해요. 근데 저는 오히려 좀 더 오래 놀다 오지 그랬냐고 하거든요. 다음 날까지 어느 정도를 쉬겠다는 계획만 있으면 저는 그 또한 긴 시즌을 버티게 해 준다고 봐요. 물론 게임이 아니더라도 카페에서 차 마시는 것도 좋고, 여자친구랑 시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온전히 야구에 매달리는 게 능사인 시대는 지났어요. 내가 잘하고 싶다고 해서 마냥 잘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거든요.

마지막으로 지금껏 응원해 준 야구팬에게 인사하고 인터뷰 마칠게요!
은퇴식 이후에 첫 인터뷰로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많은 팬분이 제 은퇴식을 끝까지 지켜봐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행사의 완성은 여러분이 계셔서 가능했어요. 가득 찬 객석을 보니 감동이 두 배로 느껴졌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순간이 됐습니다. 더 나은 야구인이 돼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72호 (8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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