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에 화장품 히트' 네이처리퍼블릭, 전성기 끝나자 기업가치 뚝
서울 명동역에 내리면 초록빛 가든월로 꾸며진 건물이 보인다. 이 부지는 전국 땅값 1위를 기록한 노른자위로 화장품 기업 네이처리퍼블릭이 건물을 임대해 쓰고 있다. K뷰티 전성기를 상징하는 매장이었지만 지금은 땅값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한 병에 5000원도 안 되는 알로에 수딩젤 하나로 중국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브랜드숍 전성기를 누린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 2015년 프리 IPO(상장 전 투자유치) 성격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당시 기업가치는 약 6000억원에 달했다. 이로부터 9년 뒤 네이처리퍼블릭은 전환사채(CB)를 발행하기로 했다. 물밑협상을 거쳐 받아낸 잠정가치는 약 1000억원으로 과거 대비 크게 떨어졌다.
K뷰티 전성기 어디로 '불황형 흑자'
지난해 네이처리퍼블릭은 영업이익 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이익이 2 배 늘었지만 비용절감으로 얻어낸 '불황형 흑자'다.
지난해 매출은 1439억원으로 전년(1449억원) 수준에 그쳐 고정적으로 드는 비용을 줄였다. 회사는 판촉비, 광고선전비, 수출 제비용, 임차료, 운반비 등에서 15억원을 아꼈다.
전체 매출의 약 10%를 차지하는 온라인 판매 수익은 제자리걸음이다. 효자였던 수출액은 2022년보다 20% 이상 감소하는 등 상승세가 꺾였다.
전체 매출의 70%를 책임지는 오프라인 채널이 명맥을 이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현재 전국에 300여곳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비교적 통제가 쉬운 직영점 비중을 80% 이상 유지하면서 효율성을 높여왔다.
알로에베라 수딩젤, 진생로얄실크워터리크림 등 수년간 히트 상품에 의존해 스킨케어 제품에서 선방했지만 지난해에는 달랐다. 스킨케어 제품의 매출이 2022년 881억원에서 2023년 617억원으로 감소했다.
투자 유치 후 실적 개선 관건
지금은 '한물 갔다'는 평가를 받지만 2010년 중반에는 전성기를 누렸다. 회사 매출은 2013년 1717억원, 2014년 2552억원, 2015년 2848억원, 2016년 2618억원으로 증가곡선을 그렸다.
IPO의 밑그림을 구상하고 사전 투자 유치 차원에서 2015년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유진투자증권 등 다수의 증권사가 신주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당 신주 발행가액은 76만원이었다. 당시 액면분할 직전이었기 때문에 액면가는 5000원이었다. 현재 액면가(500원)로 환산하면 주당 7만6000원에 신주를 발행한 셈이다. 신주 발행 직후인 2015년 말 기준 주식 수에 7만6000원을 대입하면 당시 기업가치는 약 6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네이처리퍼블릭은 이달 말 서울 프라이빗에쿼티(PE)가 출자한 SPE스페셜시츄에이션스펀드1호로부터 150억원의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이 발행하는 CB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사채는 오는 2025년 4월부터 주당 1만2000원에 보통주로 바꿀 수 있다. 현 주식 수를 대입하면 기업가치는 약 1000억원인 셈이다. 회사는 2000억원의 밸류를 희망했으나 서울 PE는 실제 가치와 괴리가 크다고 판단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적자였다가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지만 미미한 수준이라 1000억원 이상의 밸류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1년 뒤부터 전환권을 행사하기로 한 것도 경영 개선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계약상 2026년부터 서울 PE 측이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어 실적 개선의 압박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6년 4월부터 3개월마다 네 차례에 걸쳐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이때 네이처리퍼블릭은 투자 원금에 연복리 5%를 추가로 얹어줘야 한다.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