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동반자, 그가 받은 우정의 증표들

서정민 2026. 5. 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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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피나스의 ‘Lemniscate’. [사진 헤레디움]
예술가와 컬렉터의 관계는 단순히 ‘판매자’와 ‘구매자’라는 경제적 논리를 넘어 ‘미학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반자’로 정의할 수 있다. 특히 컬렉터는 예술가의 고독한 실험을 지지하며 심리적·물리적 토대를 제공하고 기꺼이 예술가의 긴 여정에 동행하는 존재다. 그래서 때때로 미술사 연대별 구성보다, 한 컬렉터의 소장품을 살펴보는 일이 더 흥미롭기도 하다. 이 컬렉터는 왜, 그때, 이 예술가의 비전을 선택했을까.

5월 17일부터 7월 26일까지 대전의 복합문화예술공간 헤레디움(HEREDIUM)에서 열리는 ‘이봉 랑베르: 예술가의 곁에서’ 전시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헤레디움과 콜렉시옹 랑베르(컬렉션 랑베르)가 공동 기획한 전시로, 프랑스의 선구적인 컬렉터 이봉 랑베르(Yvon Lambert)의 소장품 4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 포스터 속 남자가 이봉 랑베르. [사진 헤레디움]
랑베르는 현대 미술계의 유명한 갤러리스트이자 컬렉터다. 그는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딜러를 넘어,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읽고 작가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60년대 중반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건 갤러리를 연 이후 당시에는 생소했던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랜드 아트(대지 미술) 등을 프랑스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사이 톰블리, 솔 르윗, 로버트 라이먼 같은 거장들이 초기에 그와 함께 성장했다.

랑베르는 2012년에 50여 년에 걸쳐 수집한 방대한 양의 현대 미술품(약 550여점 이상)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이 컬렉션은 현재 남프랑스 아비뇽의 18세기 저택인 드 코몽 호텔에 상설전시되고 있는데 이를 ‘컬렉션 랑베르’라고 부른다.

헤레디움에는 랑베르가 믿고 지지했던 예술가들 장-미셸 바스키아, 솔 르윗, 사이 톰블리, 다니엘 뷔렌,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낸 골딘 등 17명 작가의 작품 40여 점이 회화·조각·설치·사진 등 다양한 형식으로 전시된다. 모두 1960년대 이후 예술의 개념과 형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며 다양한 매체와 공간에서 예술의 한계를 확장해온 실험가들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랑베르가 ‘예술가와 컬렉터의 이상적인 관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는 점이다. 예술가들과의 긴밀한 관계는 랑베르 컬렉션의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기도 한데, 그가 구매한 작품들은 단순히 수집된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과의 협업과 우정 속에서 생성되거나 확장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브라이스 마든은 랑베르의 아파트에서 작업을 제작했고, 장-미셸 바스키아는 개인적인 선물과 드로잉을 남겼으며, 낸 골딘은 랑베르를 위해 슬라이드 쇼 작업을 제작했다. 말하자면 랑베르 컬렉션은 단순한 작품의 집합이 아니라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관계와 시간의 축적이 담긴 특별한 기록이다.

오토니엘의 ‘채플 프로젝트’. [사진 헤레디움]
“결국 그(장-미셸 바스키아)는 한 달 동안 파리에 머물렀고, 나는 무척 기뻤다. 전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체류가 결코 편안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그는 호텔에서 쫓겨나야 했는데, 밤새 방을 바꾸며 모든 것을 부수고 벽을 다시 칠했기 때문이다. 크리용 호텔은 지금쯤 독특한 스위트룸을 가질 기회를 잃은 셈이다. 방을 다시 수리해야 했고 나는 그의 ‘사고’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마약이 그의 일상의 일부였지만, 그는 매일 선물을 들고 갤러리에 왔다.”(이봉 랑베르)

사진가 낸 골딘의 슬라이드 쇼 ‘All By Myself’(1994) 역시 랑베르와 관계가 깊다. 랑베르는 낸 골딘을 사진가가 아닌 예술가로 받아들였으며 개념미술 이후 “이미지와 서사를 재구성하는 동시대 작가 세대의 핵심 인물”로 인식했다고 한다.

“나는 낸에게 슬라이드 쇼를 꼭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작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프랑스 국가에 기증된 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작업은 그녀가 마흔 살 무렵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종의 기록이며, 배경에는 어사 키트의 독특하고 애잔한 목소리가 흐른다. 내가 이 작품을 갤러리에서 전시했을 때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지금도 나는 그것을 진정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보면 눈물이 난다.”(이봉 랑베르)

올해 90세가 된 랑베르는 2014년 상업 갤러리를 닫고, 현재는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서점 및 출판사를 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물론 그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예술서적과 아티스트 북이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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