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 막던 골키퍼 유연수, 슛 쏘는 사격수로 변신하다

김양희 기자 2024. 12. 16.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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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333333;">[‘찐’한 인터뷰]</span> 프로축구 선수에서 장애인 사격 선수 도전
프로축구 골키퍼에서 장애인 사격 선수로 변신하는 유연수.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축구 선수가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 영향이었다. 태권도 학원에 다니던 그에게 아버지는 축구 선수를 권했다. ‘축구 선수’는 아버지의 어릴 적 꿈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말, 그에게는 태권도 도복 대신 축구공이 주어졌다. 운동장에서 신나게 공을 갖고 놀았다. “재밌는 놀이 같기도” 했다. 초등학교에서 첫 골을 넣고 우승했을 때는 너무 기뻤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프로까지…축구가 그의 평생 업인줄 알았다. 2022년 10월18일,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프로 3년차, 그의 나이 24살 때였다.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병원 침대 위였다. 제주 유나이티드FC 팀 동료들과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잠을 잤을 뿐이었다. 그런데 혈중알코올농도 0.117%의, 만취 운전자가 차를 들이받았다. 피해 차량에 5명이 타고 있었는데 중상을 입은 이는 유연수, 그뿐이었다. “처음 눈 뜨고 몸이 안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을 때 ‘큰일 났구나’ 싶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평생 누워만 있거나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옆에서 어머니가 ‘이제 축구를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이 축구였는데, 그게 사라진다니까 너무 마음 아팠어요.”

1~2주 동안 계속 눈물만 계속 났다. 부모님, 누나도 다 같이 울었다. “내 잘못도 아니고 타인의 과실에 의해 제 삶이 무너진 거잖아요. ‘왜 나였을까’라는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그런데 어느날, 나날이 수척해 가는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망가진 그의 몸보다 그게 더 속상하고 아렸다. “아버지도 ‘이제 그만 울고 제2의 인생을 생각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정신 차리고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어요.”

유연수(오른쪽)가 지난 7월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 쿠팡플레이 시리즈 토트넘과 팀 K리그의 경기에 앞서 신영록(왼쪽)과 함께 시축한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고 두 달 뒤 휠체어 타는 법을 숙지했다. 3~4개월 뒤에는 혼자서도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됐다. “부모님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 생각했어요. 언제까지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제가 몸이 커서 제 몸은 저밖에 이길 수 없거든요. 저 자신한테만은 더 냉정해지자 마음 먹었죠. 그래서 조금 더 빨리 적응하고 병원 밖으로 나온 것 같기도 해요.”

2023년 11월11일. 그는 제주 유나이티드가 마련한 은퇴식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 울지 않으려고 꾹꾹 참았는데 그라운드를 밟고 전광판에 자신의 축구하는 모습이 상영되자 눈물이 쏟아졌다. “제 축구의 시작과 끝이 스쳐 갔어요. 축구 동료들과 팬분들께 ‘잘 지내고 있다’고 웃어주고 싶었는데 눈물이 안 날 수가 없더라고요.”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좋았다. “다들 골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막았을 때의 그 희열감”이 너무 좋았다. “내가 골을 안 먹으면 최소한 비긴다”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골문을 지킬 수가 없다. 이제 축구는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하는’ 스포츠를 다시 만들었다.

유연수는 2일부터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에 입소해 사격 기본자세를 익히고 있다. 이전까지 휠체어농구, 조정, 탁구, 펜싱, 배드민턴 등을 접해봤는데 사격에 제일 관심이 갔다. 12일 이천선수촌에서 ‘한겨레’와 만난 유연수는 “골키퍼는 90분 경기 내내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 집중력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스포츠가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사격이었다”면서 “16년 동안 단체 스포츠(축구)를 해서 개인 스포츠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프로축구 골키퍼에서 장애인 사격 선수로 변신 하는 유연수.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아직 기본자세만 하고 있지만 훈련 도중 땀이 엄청 난다. 오전, 오후 2시간씩 하는데 끝나면 진이 다 빠질 정도다. “3일 처음 총을 들었을 때는 조금 어색하고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사격 선수용 휠체어도 아직 기다리고 있고, 사격복도 3~4번은 수선해야 한다고 하고요. 총을 잡고 숨 고르는 연습도 해야 하고, 총구도 컨트롤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실탄을 쏘기까지 3~4개월 정도는 계속 기본 자세를 익혀야 한다고 하는데, 사격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지루하고 힘들어도 열심히 해봐야지요. 골키퍼도 기다림의 시간이 길거든요. 귀찮고 힘들다고 미루다 보면 결국 은퇴 시기만 빨라질 거예요.”

그는 스스로를 “백지”라고 표현했다. “백지는 그냥 채워넣으면 되잖아요. 사격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하나도 없으니까 다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운동해 봤으니까 여러 경험 속에서 좋은 것은 취득하고, 아닌 것은 빨리 버릴 수 있을 거예요. 축구 선수 때도 형들 조언 들으면서 성장해 가는 저 모습을 보면 참 좋았거든요. 사격도 여러 선배들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축구 선수 때 마냥 동경하던 국가대표 꿈도 다시 꾸고 있다. 2028 로스앤젤레스(LA)패럴림픽 때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하고 싶다. 2024 파리패럴림픽 때는 현장에서 다른 이들을 응원했던 그다.

유연수는 16일 비디에이치(BDH) 파라스에 입단했다. BDH파라스는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 파리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장을 맡은 배동현 창성그룹 부회장이 설립한 장애인 전문 실업팀이다. 팀 승리를 위해 ‘슛’을 막아내는 ‘골키퍼 유연수’였다가 10.9점 만점을 ‘슛’하기 위한 명사수로의 변신을 꾀하는 셈이다.

“많이 긍정적인 성격”이 자신의 장점이라는 유연수의 말로 인터뷰를 갈음한다. “골키퍼 때 실수를 해도 빨리 잊어버리고 내 것을 하는 편이었어요. 비장애인 때 운동했던 것처럼 정말 많이 노력하다 보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마음 편히 웃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당당하게 개척해가는 새로운 도전자가 되어 보겠습니다.”

이천/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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