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프로젝트] 평범한 운전 실력, 얼마나 키울 수 있을까?-3편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세 번째 시간. 레벨 3 프로그램을 수강하기 위해 다시 한번 충청남도 태안으로 향했다. 국산 준중형 스포츠카의 대표주자 아반떼 N과 원 없이 달리며 서킷을 더욱 빠르게 공략하는 법을 배웠다. 과연 이번에도 평균 이상의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까?


글|사진 서동현 기자(dhseo1208@gmail.com)

‘레벨 1과 2의 수준 차이가 이 정도라고? 그럼 레벨 3는 얼마나 어려운 거야?’ 585마력 전기차에 휘둘려 정신이 혼미했던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걱정이 가득했다. 무려 4시간 넘게 진행할 다음 프로그램이 기대되면서도 자신 없었다. 단순히 즐기고 돌아가기엔 교육의 퀄리티가 높았고, 진지하게 임하자니 나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집중력을 높여서 드라이빙 스킬을 최대한 흡수하는 수밖에. 단단한 스포츠 버킷 시트에 몸을 구겨 넣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시동을 걸어 차고 밖으로 이동. 사방이 고요했던 지난 회차와 다르게, 이번엔 등 뒤에서 강렬한 팝콘 사운드가 귀를 자극하며 흥을 돋웠다. 출력이 비교적 낮아도 좋다. 힘과 재미가 무조건 비례하진 않으니까.

연습만이 살 길, 짐카나&트레일 브레이킹

지난 두 프로그램은 간단한 슬라럼으로 시작했다. 레벨 3는 다양한 코스로 꾸민 짐카나로 스타트를 끊는다. 슬라럼→더블 레인 체인지→8자 원선회→더블 레인 체인지 구간을 통과한 후 급제동을 걸며 피니시 라인을 지난다. 말로 풀면 간단한데, 실제로 출발선에 서면 머리가 복잡하다. 수십 개의 콘이 바닥에 흩어져 있어 연습 주행으로 경로를 미리 외워야 한다.


특히 연습을 많이 요구했던 구간은 8자 원선회다. 최단 경로가 눈에 보이는 슬라럼과 달리, 원선회 코스는 콘을 중심으로 그려나갈 원의 직경을 직접 정해야 한다. 중심에 가깝게 붙으면 거리를 줄일 수 있고, 크게 돌면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콘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진입할지도 드라이버의 판단에 달렸다. 정답에 근접할 방법은 단 하나. 반복 학습뿐이다.

인스트럭터가 준 힌트는 ‘탈출 가속’이었다. 원의 중심을 향해 들어간 뒤, 점점 큰 곡선을 그리면서 다음 구간을 바라보면 최대 가속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래서 시선 처리가 중요하다. 미리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코스를 이탈할 확률이 높다. 머리·손·발이 쉴 틈 없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야만 최단기록을 달성할 수 있다.

다음 교육은 ‘트레일 브레이킹’이다. 지금까진 주로 운전대를 정렬한 채 제동했다면, 트레일 브레이킹은 코너 진입과 제동을 동시에 하는 기술이다. 포인트는 ‘무게중심을 활용한 접지력 향상’이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무게중심이 앞으로 이동한다. 이 무게가 앞바퀴 접지력을 적당히 높이면, 앞머리를 수월하게 돌리면서 최대 속도로 코너를 통과할 수 있다.


트레일 브레이킹은 저속과 고속 코너 두 가지 상황을 연출해 연습했다. 이번에도 명확한 제동 시점은 없다. 코너 진입 속도에 따른 브레이킹 시점을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 부드럽고 꾸준한 제동력을 유지하면서 코너의 정점(이하 CP, Clipping Point)에 다가가는 훈련도 거듭했다. 서킷에서 이를 얼마나 적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인데, 개인적으로 세 번의 프로그램 중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가속 직전 브레이크 페달을 부드럽게 떼는 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어서 고속 주회로에 진입했다. 길이 4.6㎞의 4차선 도로로, 양쪽 끝 구간을 기울여 고속으로 꾸준히 달릴 수 있는 트랙이다. 맨 바깥 차선의 최대 경사는 무려 42°. 두 발 딛고 서 있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가파르다. 시속 200㎞ 이상도 거뜬히 받아내는 장소지만, 이날은 시속 150㎞ 이하로 달리면서 아반떼 N의 고속 안정성에 집중했다.


곡선 구간 사이에 자리한 1㎞ 넘는 직선 코스. 멀리선 바닥이 매끈해 보이지만, 실제로 달리면 은근한 굴곡들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노말 모드와 N 모드를 오가니 서스펜션 감쇠력 변화가 확 와닿았다. 노말 모드에선 충격이 들어와도 바퀴와 차체가 적당한 시간차를 두고 움직인다. 그래서 엉덩이와 허리도 부담이 없다. 반면 하체를 단단하게 조이는 N 모드에선 보다 직관적인 노면 피드백을 경험할 수 있다.

언더스티어(Under Steer)를 극복하라!

서킷에 입장하기 전, ‘언더스티어(Under Steer)’를 더 극적으로 만날 수 있는 젖은 노면 서킷을 찾았다. 한 바퀴 길이는 1.6㎞로 꽤 짧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가장자리에서 나오는 물로 인해 노면이 상당히 미끄럽다. 바짝 마른 노면에서처럼 운전했다간 여지없이 밖으로 튕겨나간다. 대신 가속 페달을 살살 달래면 안전한 상황에서 언더스티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언더스티어는 코너링 시 앞바퀴 그립이 떨어지면서 원하는 궤적보다 커다란 원을 그리는 현상이다. 이를 멈추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기만 해도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접지력이 살아난다. 그럼에도 언더스티어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그냥 빨리 지나가면 되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이 동력 손실을 일으키고 레코드 라인을 망친다.


젖은 원선회 코스에서도 언더스티어 체험을 이어갔다. N 모드로 바꾸고 주행 안전장치를 끄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밀려나기도 했다. 브레이크 없이 가속 페달만으로 그립과 언더스티어의 경계선을 알아가는 게 교육의 핵심. 언더스티어는 앞바퀴굴림 차종에서 더 쉽게 발생하는데, 전륜구동 모델 오너라면 안전한 운전을 위해서도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하다.

3.4㎞ 트랙에서 담금질하는 운전 테크닉

지금까지 배운 모든 기술을 응용할 마른 노면 서킷에 도착했다. 레벨 1의 B 코스와 레벨 2의 A 코스를 합쳐 길이는 3.4㎞. 코너 개수는 16개로 늘어난다. 단순히 ‘두 트랙을 붙였다’라고 표현하기엔 변수가 있다. A 코스와 B 코스의 연결부를 지날 때 완전히 새로운 서킷에 입장하는 기분이 든다. 이전에 코너였던 구간이 직선으로 펼쳐지면서 낯선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주행 모드는 ‘N’. 계기판 중심에 엔진 회전계가 큼직하게 나타나고 오일 온도와 냉각수 온도, 터보 부스트 압력 등 다양한 정보가 나타났다. 중앙 모니터에서도 N 메뉴를 누르면 중력가속도를 비롯한 여러 그래픽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중앙 디스플레이는 쳐다보지도 못했다. 레벨 3의 주행 템포는 만만치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각 코너에서의 트레일 브레이킹부터 신경 쓰였다. 재가속 지점과 CP를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진 오른발이 머뭇거렸다. 이 서킷은 코스를 완벽하게 외우지 않으면 나의 위치를 헷갈리기 쉽다. 서로 비슷하게 생긴 헤어핀 코너도 있고, 주변에 마땅한 지형지물이 없어서다. 프로그램 시작 전 실내에 있는 레이싱 시뮬레이터로 구조를 익혀두길 권한다.


다만 최고출력 280마력, 최대토크 40.0㎏·m의 아반떼 N은 숏 코너가 많은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트랙에서 충분한 성능을 뽐냈다. 파워트레인보다 인상적인 기능은 N 트랙 센스(NTS). 굳이 시프트 패들을 건드리지 않아도 코너 진입 전 똑똑하게 기어 단수를 내린다. 수동으로 조작해보려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인스트럭터를 따라가기 바빠 변속은 NTS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e-LSD가 만드는 코너링 안정성도 놀랍다. 헤어핀을 조금씩 빠르게 지났는데, 뚜렷한 한계 시점을 알아채기 힘들었다. 가속 페달을 짓밟으며 코너를 탈출할 땐 언더스티어를 억제한다. 스티어링 휠 조작 실수로 균형을 잠시 잃어도 막강한 타이어 그립이 자세를 보완했다. 랩이 늘어날수록 교육용으로 참 괜찮은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반떼 N의 매력에 취할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30분 넘게 달렸는데도 인스트럭터의 피드백이 끊이지 않았다. 집중력을 약간이라도 놓치면 CP에서 멀어지거나 언더스티어에게 혼쭐이 났다. 인스트럭터는 타이어 마찰음에 귀 기울이고 온몸으로 무게중심을 느끼라고 강조했다. 항상 아쉬운 건 시간이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이미 4시간을 소화했지만, 이날따라 유독 나의 운전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레벨 1~3까지의 도전이 끝났다. 점수는 75점. 첫 수업을 마친 후의 기분과 레벨 3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의 감정은 천지차이다. 처음엔 본격적인 서킷 교육을 받는다는 생각에 들뜨기만 했다. 그런데 두 번의 심화 과정을 거치면서 욕심이 생겼다. 제한적인 시간 안에 모든 가르침을 흡수하고 싶었다. 종종 의욕이 넘쳐 실수를 연발했고, 그럴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자책했다. 과몰입이 이렇게 무섭다.

그래도 ‘레벨 3 수료증’을 얻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이제 ‘현대 N 어드밴스드’ 또는 ‘제네시스 드리프트 레벨 1’이라는 상위 클래스에 뛰어들 자격이 있다. N 어드밴스드는 계측기를 활용한 피드백으로 서킷 주행 테크닉을 끌어올리며, 드리프트 레벨 1은 G70를 타고 카운터 스티어와 드리프트 기술을 연마한다. 어느 쪽이든 분명 후회 없는 선택이 될 듯하다. 나처럼 운전을 좋아하고 서킷에 관심이 있다면,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에 참가하기를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