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변호사 30년, 김선수 전 대법관이 말하는 사명
전북 진안의 “전기도 안 들어오는 ‘깡촌’”에서 태어난 김선수 전 대법관(63)은 1985년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한 뒤 법률 잡지 〈고시계〉에 쓴 글에서 묻고 또 물었다. “(고시 합격에 따른 기득권을) 자신의 노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으로서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받아들여도 좋을까?” “사법부의 임무가 법의 공평한 적용이라고 할 때 ‘법’ 자체는 이미 항상 공평타당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활동하고자 사법시험을 본다고 할 때, 혹시 우리는 온정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1988년 변호사로 첫발을 뗀 김 전 대법관은 이후 30년을 노동 변호사로 살았다. 새내기 변호사 때 ‘변호인과의 접견이 제한된 상태에서 얻어진 피의자의 자백은 배제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서울대병원 노동자 1000여 명을 대리한 법정수당 청구소송은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기본 공식을 정립한 판결로 이어졌고, 서울민사지방법원에 노동전담부가 설치되는 계기가 됐다. 그가 대리한 노동자 중에는 수년간 법정을 오가며 부당해고를 다투다 정년이 지나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있었다. 2018년 판검사 경력이 없는 최초의 대법관으로 임명된 그는 “업무수행 역량에 대한 우려를 늘 염두에 두고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와 같은 집중력과 단순한 생활 방식으로 매 순간 온 힘을 기울였다(퇴임사 중에서)”. 지난 8월1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해 9월부터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활동하는 김 전 대법관을 9월11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노동 변호사로 오래 일했다. 몸소 경험한 ‘변호인’과 ‘대법관’은 어떻게 달랐나?
하루 일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8시10분쯤 사무실에 도착하고, 저녁 8시30분쯤 마을버스로 퇴근하며, 주말 중 하루는 출근하는 일상이다. 노동 사건의 법리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므로 업무 면에서도 별로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변호사로서는 완전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한 많은 주장을 해서 의뢰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나라도 더 끌어내는 게 목표라면, 대법원 판결은 유사한 사안에 원용될 수 있으니 그 효과까지 고려해서 정확하게 판단해야 하는 점이 다르다. 변호사 때는 담당 재판부의 법관들을 설득해야 했다면, 대법관으로 활동하면서는 동료 대법관들을 설득해 내가 원하는 결론에 함께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삶 자체가 ‘설득’으로 요약되는 것 같다.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나?
법리만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특히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건들은 법리적으로 양쪽 견해가 모두 타당한 측면이 있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전원합의체 사건의 토론을 마치고 표결에 들어가기 직전에 몇 쪽 정도로 내 의견을 정리해서 최종변론을 하듯이 낭독했다. 이 사건의 판결이 사회적·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받을지, 당신들(대법관들)이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사건에서는 이런 결론을 내는 게 그 약속을 지키는 게 아닌지 호소했다. 처음에는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서 ‘도대체 말이 되느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강한 표현을 써서 상대 진영을 동요시키려 했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소수의견이 되더라(웃음). 그래서 ‘쓰리 도(도대체·도무지·도저히)’는 가능한 한 쓰지 않기로 했다. 물론 대법관이 다른 대법관 주장 때문에 본인 의견을 바꾸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임했다.
대법관으로 6년 재임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내 의견이 다수의견이 됐을 때다. 두 사건이 특히 그렇다. 하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관련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폐기한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한국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노동자가 직장에서 적용받는 근로조건이나 복무규율)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동안 대법원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개정이라 하더라도 그 개정이 사회통념상의 합리성이 있으면 유효하다고 판단해왔다(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정년 연장을 이유로 직전 몇 년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이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므로 노동자 동의 없이 가능하다고 해석하겠다는 지침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거다. 적어도 자신에게 적용될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노동자가 참여할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는 게 민주주의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노동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바꿔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사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취업규칙으로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현행 취업규칙 제도 자체에 근본 문제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근로조건을 노사가 공동 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람 있었던 또 다른 사건은 무엇인가?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내가 주심으로서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하고 연구관들의 보고서를 토대로 해외 사례를 검토했다. 원고들이 겪고 있는 차별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문제라는 점, 사법부의 헌법적 책무 등을 토대로 대법관들이 치열한 토론을 거쳐 표결한 결과,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견해가 안정적인 다수의견이 됐다. 대법원장이 판결문을 낭독할 때 방청석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 나도 울컥하고 찡했다.
반대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국도관리원(도로보수원과 과적단속원으로 구성된 무기계약직) 차별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소수의견이 되었을 때다. 원고인 국도관리원들은 운전직·과적단속직 공무원과 같은 부서에 소속되어 그들과 같거나 비슷한 업무를 담당했고, (도로보수원이 운전직 공무원을 대신해서 운전을 담당하는 등) 서로 대체해서 근무하기도 했는데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급여에서 여러 차별을 받았다. 특히 국도관리원에게 가족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고 뼈저린 차별이다. 액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배우자(4만원) 외 부양가족 한 명당 2만원인데, 그것도 못 주겠다는 건 국도관리원의 가족을 ‘있지만 없는 존재’로 취급한 것이다. 국도관리원으로서는 공무원의 가족만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자신의 가족은 인간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며, 국가가 출산 장려를 요청하는 사회 구성원 또는 국민의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한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국도관리원만 성과상여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한 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에게 직장은 단순한 돈벌이의 장이 아니라 노동을 통해 자아를 성취하는 장이다.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한다면 충분히 성과도 같이 평가해 보상할 수 있는데도, 국도관리원들의 경우에는 열심히 근무해서 훌륭한 성과를 인정받아 긍지와 보람을 느낄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했다.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적어도 가족수당과 성과상여금만은 동일하게 지급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 원칙과 근로기준법 6조의 균등대우 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는데, 다수의견은 공무원의 이런저런 특수성을 들어 국도관리원들의 고용상 지위가 공무원과의 관계에서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고 봤다. 결국 7(다수의견) 대 1(별개의견) 대 5(소수의견)의 의견 분포로 내 의견은 소수의견이 되고 말았다. 너무너무 화가 났다. 울분을 담아 보충의견을 작성했다.
이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문에서 반대의견을 낸 김선수 대법관의 ‘보충의견’ 일부는 길지만 인용할 가치가 있다. 그는 이 보충의견을 “노동 사건을 담당하는 후배 법관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높이에 차이가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물통에 물을 채울 경우 가장 낮은 벽 부분으로 물이 흘러넘칠 것이기 때문에 그 물통으로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가장 낮은 벽 부분의 높이에 의해 결정된다. 그 물통이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벽 부분을 높여야 하며, 가장 낮은 부분을 그대로 둔 채 높은 부분을 아무리 더 높게 해보았자 그 물통이 저장할 수 있는 물의 양은 하나도 증가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벽 부분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노동법이다. (…)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포용력은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이 받는 대우와 존중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 다수의견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非)공무원들로서는 감히 비교 대상으로도 삼을 수 없는 공무원이라는 노동법을 초월하는 특권적인 선민 신분(選民 身分)을 새로이 창설하였다.”
정규직과 무기계약직·하청 노동자 사이의 임금 차별을 얘기하면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여도 우리가 훨씬 큰 책임과 의무를 진다’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항변을 듣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밝혔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한국노총 출신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이, 차별금지 사유에 ‘고용 형태’를 추가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 제6조를 개정하자는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왜 그걸 더불어민주당에서 바로 받아서 입법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법원으로서는 그 정도 내용만 입법이 되어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법을 해석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법원 설치를 준비한다고도 했는데, 임기 중에 정말로 도입한다면 최대 업적이 될 거다. 특히 부당해고를 다투는 노동자 입장에서 현재는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이라는 사실상 5심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기존 노동위원회는 (재판 전) 조정 역할을 하도록 하고, 노동법원은 노동법에 전문성이 있는 법관들로 채워 임기를 10년간 보장하면 재판의 전문성과 공정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파업에 대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전인 2023년 6월, 대법원이 파업 참가자별로 책임의 정도를 따져서 손해배상액을 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조선일보〉 사설은 “대법원이 정치를 한 것 아니냐”라고 비난했다.
공동 불법행위 사건에서 가담 정도에 따라 책임의 범위를 개별적으로 따지는 것은 많은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된 법리다. 파업 등 쟁의행위 영역에 이러한 법리를 도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해당 사건은 전원합의체 논의를 거쳐 모든 대법관들이 동의해 소부 판결로 선고했다. 그런데도 당시 주심 대법관에 대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등의) 개인적 비난이 빗발쳤다. 매우 부적절하다. 기물 파손과 같은 명백한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가 아닌, 단순히 노무제공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 영업손실 등에까지 손해배상 범위를 확대하면 헌법이 보장한 단결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다. 노란봉투법은 내가 변호사로 활동하던 2000년대 초부터 주장해온 내용이다. 조속히 입법 문제가 정리되길 바란다.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는 대법원 판결로 어느 정도 입법 효과를 달성한 것 아닌가?
대법원 판결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으므로, 법률로 근거를 명확히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소위 ‘간접 고용(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대신 하청업체 등 제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용하는 형태)’ 문제도 심각하다.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에는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지만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개정안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된 (HD현대중공업·CJ대한통운) 사건들이 대법원에 넘어와 있는데, 이 문제도 입법적으로 같이 정리해주면 좋겠다.
간접 고용을 하면 기업은 노동자 사용으로 인한 이득을 다 누리면서 책임은 하나도 안 지게 된다. 노동력 사용과 그에 따른 책임을 일치시켜가야 정의에 부합한다. 간접 고용의 심각성은 전 세계에 공통된 현안이다. 미국은 ‘공동 사용자(joint employer)’ 개념을 활용해 이를 규율한다. 일본에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면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실질적 지배력설’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 사용자 범위 확대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법률신문〉 인터뷰에서 “대법관은 필요할 때 선례 변경을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야말로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법의 고유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대법관은 기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식견을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시대의 변화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할 때는 담대하게 선례를 변경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은, 국가권력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회전하고 있을 때 수레바퀴와 함께 회전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톱니가 아니라, 수레바퀴의 외부에 존재하는 제동장치여야 한다. 사법부의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은, ‘다수결 원리’가 작동하는 국회와 정부를 통해서는 권익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보장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포용력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법원마저 강자와 다수의 편에 설 경우 사회가 한 쪽으로 경도되어 약자와 소수자의 희생이 강요될 우려가 있다. 법원이 확고한 자세로 균형을 유지해줘야만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평화와 행복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법대 아래의 구체적 현실을 이해하는, 판검사 경험이 없는 대법관이 적어도 부(部)에 한 명씩은 있었으면 한다. 되도록 소부는 남녀 동수로 구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수안 전 대법관이 2012년 퇴임사에서 말하지 않았나. “언젠가 여성 법관이 다수가 되고 남성 법관이 소수가 되더라도 여성 대법관만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라고.
각자도생의 시대에 사회 구성원의 행복이 왜 중요한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차별받아서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사회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인 나 역시 불행한 거 아닌가. 그런 사람이 없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왜 노동법에 꽂혔나?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노동을 하셨다. 아버지는 대한통운 소속으로 서울역에서 하역 작업을 했고, 어머니는 작은 동네 공장을 다녔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는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었다. 아예 노동 현장으로 취업하는 학생도 많았다. 나는 직접 현장에 들어가진 못하지만, 변호사로서 노동자들의 권익 보장에 기여하는 활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쭉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웃음).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