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후속으로 돌아온 한국인들이 사랑한 영화, 봤는데 뭔가 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리뷰: 낡은 권위와 디지털 파도 사이… ‘악마’는 더 이상 프라다만 입지 않는다

2006년, ‘세룰리안 블루’의 정의와 함께 전 세계 패션계와 직장인들의 심장을 관통했던 전설적인 작품이 20년 만에 돌아왔다.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에밀리 블런트라는 ‘드림팀’의 재결합만으로도 제작 단계부터 이목을 집중시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화려한 런웨이 뒤에 가려진 서늘한 시대적 자화상을 그려낸다.

종이 매체의 몰락, ‘런웨이’ 제국의 균열

이번 속편이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매체의 위기’다. 전작이 패션 잡지라는 권력의 정점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암투를 다뤘다면, 속편은 종이 잡지의 종말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선 구시대 권력의 고군분투를 조명한다.

전설적인 편집장 미란다 프리스트리(메릴 스트립)는 인스타그램 피드와 틱톡 트렌드에 밀려 광고 수익이 급락한 ‘런웨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는 단순히 한 잡지사의 위기를 넘어, 편집장의 심미안이 대중의 취향을 독점하던 ‘게이트키퍼(Gatekeeper)’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물 관계의 역전도 흥미롭다. 과거 미란다의 독설에 눈물짓던 제1비서 에밀리(에밀리 블런트)는 이제 글로벌 럭셔리 그룹의 막강한 임원이 되어 미란다의 생사여탈권을 쥔 ‘갑’으로 등장, 무너지는 활자 매체의 위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사라진 패션의 판타지, 약해진 악마의 카리스마

그러나 원작의 팬들에게 이번 속편은 일말의 상실감을 안겨준다. 전작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였던 ‘패션의 판타지’가 목격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스크린을 수놓았던 명품 브랜드들의 향연과 눈이 즐거웠던 스타일링은 디지털 시대의 실용주의와 가성비 논리에 밀려 그 빛을 잃었다. 화려한 오트쿠튀르 대신 데이터 알고리즘이 선별한 트렌드가 그 자리를 대체하며, 영화적 미장센으로서의 패션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절대 권력자였던 미란다 캐릭터의 변화다. 과거 오만함조차 실력으로 정당화하던 그녀의 카리스마는 급변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노장’의 모습으로 격하되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뇌하는 미란다의 인간적인 면모는 서사적 개연성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열광했던 ‘빈틈없는 악마’의 위용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서글픈 리얼리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지니는 가치는 그 ‘서글픔’에 있다. 영화는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미란다의 주름진 미소와 텅 빈 인쇄소를 통해 정직하게 기록한다. 앤디(앤 해서웨이)가 다시 미란다의 곁으로 돌아오는 설정 역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함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예우이자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만 하는 전문직 여성들의 연대로 읽힌다.

완벽하게 재단된 클래식 코트처럼 안정적인 연출을 보여주지만, 파격적인 트렌드 제시는 부재하다는 점에서 비평적 한계는 명확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전설의 화려한 복귀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 앞에 무력해진 권위를 인정하는 ‘성숙한 작별 인사’에 가깝다. 전작이 선사했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패션의 마법은 희미해졌으나, 그 자리를 대신한 리얼리즘과 매체 환경에 대한 통찰은 전문 평론의 영역에서 충분한 논의 가치를 지닌다. 미란다의 "That's all"이라는 대사가 여전히 서늘하게 들리긴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가슴에 남는 것은 승리의 쾌감이 아닌 20년 세월이 남긴 무거운 침묵이다.

위엄을 잃어가는 거장과 사라지는 종이 향기, 그 쓸쓸한 뒷모습에 대한 기록"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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