덱스가 멸치 잡자 60년 전 노래 깔렸다...젊은이가 즐기는 촌스러운 옛날 문화, '영트로'
복고 주 소비층, 40·50에서 20·30으로 바뀌어
'진심 성함이 알고 싶다. 음악 (작업한 사람) 누구시냐.'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이렇게 tvN 예능프로그램 '언니네 산지 직송' 배경 음악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사연은 이렇다. '언니네 산지 직송'은 옛 '음악다방' 같다. 1화엔 스웨덴 팝그룹 아바의 '페르난도'(1976)를 시작으로 밴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1978), 건아들의 '젊은 미소'(1983) 등 1990년대 이전에 나온 노래 15곡 이상이 곳곳에서 흘렀다. 유튜버 덱스(본명 김진영·29)가 남해에서 갓 잡아 올린 멸치를 그물에서 탈탈 털어낼 때 배경 음악으로 밴드 애드 포의 '빗속의 여인'(1964)이 깔리는 식이었다.
김세희 '언니네 산지 직송' PD에 따르면, 제작진은 대부분 1990년대생이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들을 어떻게 알고 선곡했을까. 김 PD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출연자인 염정아씨가 찍은 영화 '밀수'를 보는데 어디서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옛 노래들이 반갑더라"며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부터 '1970~1980년대 음악을 많이 찾아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고, 옛 음악 자료 카톡방을 따로 만들어 수시로 옛 노래를 추천하면서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언니네 산지 직송' 고정 출연자 네 명 중 두 명은 1990년대생(안은진과 덱스)이다. 이들이 여러 마을을 찾아가 특산물을 수확하고 그 재료로 밥을 지어먹는 게 프로그램의 줄기다. 90년대생이 주축이 된 제작진이 △2030세대 △옛날 음악 △지방 소도시의 '촌스러움'을 버무려 새로운 복고풍 콘텐츠를 내놓은 것이다.
임영웅·혜리·비비의 공통점 '영트로'
20, 30대가 선도하는 복고 문화인 '영트로(Young+Retro)'가 K콘텐츠 산업을 확 바꾸고 있다. 가수 비비(25)는 추억 속 간식거리인 양갱을 소재로 예스러운 왈츠풍 리듬에 맞춰 노래 '밤양갱'을 불러 올 상반기 음악 시장을 강타했고, K팝 아이돌그룹인 (여자)아이들은 지난여름 발매된 음반 '아이 스웨이'의 카세트테이프 버전을 내놨다. 그룹 걸스데이 출신 배우 이혜리(30)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춤을 좋아하는 여고생들의 좌절과 희망을 다룬 영화 '빅토리'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영트로 바람'을 한층 달궜다.
청년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옛 문화를 호기심에서 즐기는 것을 넘어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거나 스스로 그 기획의 전면에 나서는 게 요즘 K콘텐츠 산업 속 '신(新)복고'의 양상이다. 김성윤 동아대 융합지식과사회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복고의 유행은 달리 생각하면 요즘 대중문화가 혁신의 한계 상황에 놓였다는 뜻"이라며 "'영트로'는 청년 세대가 문화적 새로움을 찾기 위한 일종의 탈출구"라고 이 흐름을 바라봤다.
임영웅(33)은 '영트로' 유행을 이끄는 대표 주자다. CGV에 따르면, 임영웅 공연 다큐멘터리 영화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을 극장에서 보기 위해 올해 8월 28일부터 9월 24일까지 약 4주 동안 표를 산 50대 비중이 44.5%에 달했다. 10대부터 50대까지 전 연령대 통틀어 가장 높다. 최근 개봉한 화제작 '베테랑 2'를 극장에서 가장 많이 본 세대는 30대(28.6%)다. 20, 30대가 주 고객인 극장에 50대 관객이 티켓 구매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임영웅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유행한 전통 트로트를 변주해 내놓은 음악으로 중·장년 세대를 사로잡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가 10, 20대 중심으로 이뤄졌던 대중문화 소비 시장의 저변을 넓혀 놓은 데 따른 변화다.
40대와 50대? 복고 주역이 20대와 30대인 이유
복고 문화 소비의 주류 세대로 20, 30대가 급부상하면서 영트로 열풍이 더 거세졌다. 10~60대 중 복고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즐기는 세대는 20대(71.4%)와 30대(57.2%)로 나타났다.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8월 전국 만 13~5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2014년 똑같은 주제로 진행한 설문에선 복고 문화를 주로 향유하는 세대가 40대(56.3%)와 50대(34.2%)였다. 9년 전보다 복고 문화 주 소비층이 확 낮아진 것이다.
청년 세대가 옛 문화를 즐기는 건 기성세대의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통해 즐거움을 찾으려고 적극적으로 복고 코드를 소비한다. 김헌식 중원대 사회문화대 교수는 "유튜브 등을 통한 알고리즘 추천 중심의 콘텐츠 소비는 획일화되는 단점이 있다"며 "반면 복고는 청년 세대에게 의외의 문화 발견의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20대와 30대의 복고 소비가 점점 더 뜨거워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취업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각박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바람과 △인공지능(AI)을 비롯해 급변하는 정보기술(IT)로 인한 피로도 '영트로' 유행의 배경으로 해석된다.
트렌드모니터 조사에 따르면, 청년 세대가 복고 문화에 가장 호감을 느끼는 분야는 음악(40.4%)이다. 지난 21일과 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 일대에서 열린 '서울 레코트 페어'엔 옛 LP를 사려는 20, 30대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어떤 옛 음악이 요즘 다시 '발굴'되고 있을까. 한국일보가 멜론 등 10개 음원 플랫폼의 음악 사용량을 조사하는 써클차트에 의뢰해 올 상반기(1월 1일~6월 30일) 가장 많이 스트리밍(재생)된 20세기 노래를 조사한 결과, 가요와 해외 음악 통틀어 혼성그룹 코요태의 '순정'(1999)을 가장 많이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2위는 프로젝트 그룹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1999)가 차지했다. 외국 노래로는 15년 만의 재결합 소식으로 최근 세계 음악 시장을 달군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의 히트곡 '돈트 룩 백 인 앵거'(1995)의 재생수가 1위였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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