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Interview] SSG 랜더스 운영팀 남기남 파트너
기록의 가치
근래 대한민국에는 꾸미기 열풍이 불었다. 다꾸(다이어리), 폰꾸(휴대전화), 폴꾸(폴라로이드 사진), 집꾸(인테리어), 탑꾸(탑로더, 포토카드 등을 넣는 비닐류 보관함) 등 그 분야도 다양했다. 하지만 이번 호 ‘더그아웃 인터뷰’에서는 꾸미기 시리즈의 새 지평을 연 이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가 즐기는 꾸미기는 바로 ‘공꾸’다. 알록달록한 기념구들이 형형색색 장관을 이루는 그의 SNS가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건 이미 오래된 일. 덕분에 야구계 명필로 소문난 그의 기록은 단순히 야구공에 멈추지 않는다. 정규시즌 144경기, 공식 기록에서는 보이지 않는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도 모두 그의 손을 거치고 있다. 구단을 위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기록을 남겨 온 SSG 랜더스 운영팀의 남기남 씨를 만나 봤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Yoonjeong Jeon Location Incheon SSG Landers Field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읽을 팬들에게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10월 14일 인터뷰)
SSG 랜더스에서 연봉과 장비를 담당하고 있는 남기남 파트너라고 합니다.
8년 전 37호에서(2014년 5월 호) 본지와 이미 만난 적이 있었잖아요. 이번에 섭외 요청이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솔직히 선수도 아니고 일반인이 인터뷰 두 번 잡히면 가문의 영광이죠.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금 인스타그램 프로필이 그때 촬영한 거더라고요.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프로필 다 당시 찍어주신 사진으로만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SK 와이번스였는데 로고가 SSG 거로 바뀌어 있던데요?) 딱 그 부분만 구단 사진 작가님께서 살짝. (웃음) 아무튼 살면서 찍었던 사진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어요.
#그의 1년, 그리고 11년
정규시즌 우승을 축하합니다. 구단의 일원으로서 올해의 SSG를 평가하자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시즌 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한 해거든요. 이런 좋은 성적이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니니 기회가 왔을 때 꼭 우승하려고 하고 있죠. 아직 한국시리즈 4승이 더 남았거든요. 저희 관점에서 평가하자면야 선수들이 가진 기량 이상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고 생각해요. 김광현 선수가 복귀해서 기대했던 만큼 해준 것도 있고, 신구 조화도 잘 됐고요. 팀 전체적으로 하려는 의지가 강해서 이뤄낼 수 있었던 거죠.
몇 년 전 인터뷰했을 당시와 업무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가요?
업무가 아마… 추가된 것 같은데요? (웃음) 그 당시에는 연봉 관련 일만 했는데 지금은 장비도 같이 맡고 있어요. 근데 장비 쪽은 신입 사원이 들어와서 곧 놓으려고 해요. 연봉 쪽에만 집중하려고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처음 접하는 팬들을 위해 주로 하는 업무를 소개해주세요.
몇 년 전에 ‘스토브리그’라는 야구 소재 드라마가 방영했는데 거기 나오는 조병규 씨(한재희 역) 역할이라고 생각하시면 쉬워요. 선수들의 연봉을 담당하고요. 팀의 전 경기를 다 쫓아다니면서 플레이마다 고과를 줘요. 시합 때는 감독님 옆에서 어드바이스를 드리고요. 시합이 끝나면 시합 때 매긴 고과를 컴퓨터에 입력해요. 시즌이 끝난 뒤 그걸 토대로 연봉 금액을 산정해서 선수들과 협상을 합니다.
곧 맞게 될 비시즌에는 주로 어떤 작업을 하나요?
시즌 종료와 동시에 정규시즌 144경기 동안 기록한 고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는 작업을 해요. 그 작업이 끝나면 윗분들의 결재를 받고 나서 12월부터 1월까지 연봉 협상을 진행합니다. 이게 쉽게 안 끝나요.
선수단을 비롯해 구단의 각종 부서나 팬들까지 코로나19로 인해 낯설고 어려움이 많았잖아요. 운영팀에게는 어떤 영향이 있었나요?
사실 운영팀은 현장 업무거든요. 현장에서 2년 동안 무관중으로 게임을 하다 보니까 이게 연습 경기인지 정식 경기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올해는 아시겠지만, 저희 팀이 관중 수 1위를 했고요. 그러다 보니 이제야 야구 하는 분위기가 납니다. 그런 야구장에 있으면 소속감이 더 생긴다고 해야 할까요. 2년 동안 소위 그들만의 리그를 뛰다가 팬분들이 찾아와주시니 KBO리그의 존재가 한 번 더 느껴지는 듯하네요.
공식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 정성적인 부분들도 고과에 많이 반영된다고 들었는데요. 예를 들어 어떤 점들이 있는지 가능한 선에서 몇 개만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안타에 대한 플러스 점수, 실책에 대한 마이너스 점수가 있어요. 근데 저는 그에 대해 KBO리그 공식 기록원 관점이 아니라 우리 구단 입장, 선수들의 입장에서 봐요. 비록 공식적으로는 상대 수비 실책으로 기록됐어도, 제가 볼 때는 충분히 안타성 타구였다면 그런 부분을 파악해두죠. 반대도 있어요. 안타로 기록됐지만 제가 볼 땐 분명 실책으로 인한 출루일 때도 있죠. 1루까지 열심히 뛰는 것,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슬라이딩하려고 손을 뻗어 헌신하는 부분들도 다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일일이 따라다니는 거거든요.
공식 기록원과 구단 기록원의 기록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지금 저도 KBO 공식 기록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록해요. 다만 저는 판정을 못 할 뿐이죠. 저는 판정이 나온 부분에 대해 우리 구단의 시각으로 선수들 편에 서서 자체적인 판정을 내리는 거예요. 일부 구단은 공식 기록을 토대로 연봉 금액을 정하기도 해요. 근데 저희는 제가 매년 모든 경기를 쫓아다니며 연봉 협상을 했거든요. 아무래도 공식 기록 외의 정성적인 평가가 비중 있게 들어간다는 특징이 있죠. 사실 그 부분이 선수들한테 잘 먹히는 편이라, 제가 몇 년 동안 계속 연봉 협상을 1, 2등 안쪽으로 빨리 끝내고 있어요.
개인 통산 기록으로는 남지 않는 가을야구 데이터도 고과에 동일하게 반영되나요?
팬들이 오해하시는 부분인데요. 고과는 정규 144경기에 대한 거예요. 즉 연봉은 올 시즌 144경기 플레이에 대한 보상이죠.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치는 전혀 반영하지 않고요. 그런 기대치가 들어가는 건 FA(자유계약선수) 협상이고, 제가 담당하는 건 한 시즌을 평가하고 보상해주는 겁니다. 포스트시즌은 별개입니다.
예민한 업무를 맡고 있어 선수 개개인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죠. 그건 여전히 유효한가요?
그 인터뷰를 했던 게 8년 전인데 지금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제가 올해로 11번째 협상을 마쳤는데요. 그러다 보니 그런 상태가 점점 쌓이죠. 사실 연봉에 대해서는 만족이라는 게 없거든요. 떨어진 이는 물론이고 오르는 이도 원망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런 걸 전부 아울러야 하는 직책이라 선수들과 친해질 수가 없죠. 친해져서도 안 되고요.
그에 대해 서운하거나 아쉬운 점은 없나요?
통역들이나 다른 업무를 맡는 사람들이 선수들과 한잔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진들을 보면 팀에서 소외되는 느낌이 들긴 해요. 그래서 이 직책을 안 하고 싶을 때도 가끔은 있는데요. 근데 또 제가 국내 최장수 연봉 협상자거든요. 이 타이틀을 끝까지 지켜 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스토브리그’ 드라마를 보면 연봉 협상 과정에서 감정적인 대화가 오가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요. 이런 것도 실제로 있는 상황인가요?
많죠. 많고… 드라마를 보면 협상할 때 실무자하고 단장님, 운영팀장까지 셋이 같이 들어오거든요. 근데 실제로는 무조건 실무자와 일대일로만 해요. 드라마처럼 진행하면 하루에 다 끝낼 자신이 있어요.
연봉 협상은 실제로 어떤 분위기에서 이뤄지는지 궁금해요.
요즘에는 에이전트 시대가 도래해서 에이전트를 많이 만나요. 그들과 서너 번 정도 만나 충분히 의견을 전달하고 선수들이 들어와서 사인하는 방식인데요. 에이전트를 만나는 게 장단점이 좀 있어요. 선수들이 격한 반응을 표출할 만한 걸 그들이 대신해주니까 아무래도 직접 듣는 것보다는 마음에 상처를 덜 받죠. 반대로 제가 삭감에 대한 이유를 선수들한테 설명하는 것과 에이전트한테 설명하는 것도 감정이 다르거든요. 서로 수요가 맞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꾸미기 시리즈의 혁신
근래 ‘공꾸’한 기념구를 SNS에 올리는 게 화제가 됐어요. 처음 공에 글을 적기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사실 입사하고 나서부터 계속했어요. 근데 저번에 인터뷰할 당시는 SNS가 그렇게 활성화돼있지 않았을 때였죠. 그땐 인스타그램을 잘 안 했지만 기념구 글귀는 쓰고 있었고요. 작년쯤부턴가 아들이 아빠가 야구장에서 일하는 걸 인지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자랑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아들한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SNS를 사용하게 됐어요. 나이가 어려서 가입은 못 하지만 엄마나 아빠를 통해서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시작한 건데 의외로 팬들이 많이 보셔서 놀랐어요.
단순히 데뷔 첫 승, 첫 홈런뿐 아니라 생일 축하 등 굉장히 다양한 일들이 적히던데요. 공에 적을 만한 일을 선정하는 기준이 따로 있나요?
시즌 중간에 생일이 있는 선수들은 생일 기념구도 써 주고요. 기록이 세워졌을 때도 써 주고요. 아무래도 제 인스타그램 팔로워 중에 저희 팀 팬이 상당히 많거든요. SSG 팬분들이 제 인스타그램을 보시고 이 기념구가 선수와 팬 사이 중간 지점 역할을 한다고들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들의 소식을 알릴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는데요. 그러다가 결혼하거나 아기가 생겼을 때처럼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축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에 축하 문구나 아기 태명, 혈액형, 몸무게까지 써 주기도 하거든요. 나아가 만남, 결혼, 출산 등 일들도 기념하고요. 실제로 아는 분께도 그렇게 기념구를 해 드린 적이 있는데 돌잔치 때 진열해 두셨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기념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해요. 경기 중 기념할 만한 일이 생기면 선수들이 먼저 찾아오는 편인가요?
근데 제가 연봉 담당자라 선수들과 소통이 친근하게 이뤄지는 편이 아니어서요. 일단은 제가 많이 찾아보고 물어보죠. 이거 써 줬으면 좋겠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반대로 질문한 것처럼 ‘이거 저도 써 주시면 안 됩니까’ 하는 선수들도 있죠. 그러면 흔쾌히 써 주고요.
직접 꾸며 준 공에 대한 당사자들의 반응은 어떤 편인가요?
좋은데요. 반응은 좋은데 좋은 거에서 끝나는 거죠. (웃음) 얼마만큼 좋은지까지는 모르는데, 가끔가다가 그 공을 카카오톡 프로필로 며칠 해 두기도 해요. 그럼 저는 기분 좋죠.
SNS를 보니 초기에는 검은 펜만 사용하다가 해가 갈수록 글씨에 색도 더해지고 화려해지던데요.
이건 지금도 고민하는 부분인데요. 제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공밖에 없거든요. 그만큼 보기에 질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같은 기록이어도 좀 더 특이하게,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취지에서 고민도 하고 펜도 정말 많이 샀어요. 시간 날 때마다 문구점에 가서 괜찮은 펜이 뭐가 있을까 해요. 안 그래도 종이에 쓰는 글씨는 자신 있는데 야구공에 글씨 쓰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펜이 번지기도 하고요.
첫 승 공처럼 하나밖에 없는 공은 펜을 댈 때 정말 떨리겠어요.
생일이나 결혼 같은 축하 공은 적다가 틀리면 새 공에 하면 되거든요. 첫 승 공 같은 건 제가 ‘원공’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건 정말 긴장돼요. 실수하면 다시는 못 얻는 공이니까요. 이거 은근히 스트레스예요. 글씨를 쓰기 전에 양옆 간격은 맞을지 고민하고 시뮬레이션하면서 엄청나게 망설이거든요.
공에 기록과 함께 적히기도 하는 한 줄 문구는 누가 정하는 건가요?
멘트는 제가 고민하기도 하는데 사실 저희 와이프가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줬어요. 제 멘트는 너무 아저씨 같다면서… 생일이나 결혼, 돌잔치 축하 문구를 몇 개 골라주고 그랬죠. 그리고 선수가 고를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이흥련 선수가 결혼할 때는 직접 골라 왔죠.
지금까지 적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념구가 있을까요?
얼마 전이죠. 이건 무조건이에요. (정규시즌 우승 기념구군요!) 인터뷰 시점이 지금이라서 그 공이 제일 기억에 남는 건데, 만약 통합 우승을 거둔 뒤라면 그 공이겠죠. (그 우승 공은 경기 마지막 공에 쓴 거예요?) 이게 상황에 따라 어떤 공을 쓰게 될지가 달라져요. 어떤 공을 원해도 그 공에 못 쓰는 상황이 생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를 감안해서 ‘이 공이 정말로 이 상황에 가장 걸맞은 공인가’를 파악하고 작성하죠. 근데 이번에는 창단 후 첫 우승이니까 무조건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공으로 한 거죠.
#걸어온 길, 걸어갈 길
고등학교 재학 때까진 선수였다고요. 어릴 적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뭔가요?
기억하기로는 제가 생각하고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어요. 마침 그때가 KBO리그가 막 출범하던 시기기도 했고요. 이상하게 저는 그때까지 다른 꿈을 꿔본 적이 없어요. 그저 ‘야구선수가 돼야겠다’ 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다른 꿈을 꾸게 된 거죠. ‘선수가 아니라 기록 쪽을 한번 해 보면 좋겠다’ 하고요.
기록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뭐였나요?
고등학교 때 저희 감독님 지인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당시에 감독님과 친하셨던 분이 공식 기록원을 지내신 분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록 분야를 접하게 됐고요. 그때부터 ‘선수로 성공하지 못하면 저걸 꼭 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럼 진로를 변경한 이유는 아무래도…
야구를 잘했으면 선수가 됐어도 나쁘지 않았을 듯한데, 일단 야구를 잘하지 못했고요. 기록원이라면 좋아하는 야구도 계속 접하면서 기록을 스스로 판정하는 매력적인 일도 할 수 있으니까 선택했어요. 그래서 아직도 제가 처음으로 공식 경기를 기록했던 날을 잊지 못해요.
8년 전 인터뷰에서 잠깐 나왔던 얘기 같은데요. 그때 감정이 여전히 선명하다고요.
제 첫 공식 기록이 전국체전이었는데요. 그때 주자 만루에서 고의사구로 1점을 주는 장면이 있었죠. 그때 타자가 김태균 선수였어요. 기록하면서 되게 당황스러웠죠. ‘왜 만루에서 고의사구를 주지?’ 근데 그렇게 안 하면 무조건 몇 점을 더 뺏긴다고 생각했나 봐요. 이게 아직도 제 머릿속에 남아 있네요.
기록원 일을 접고 잠시 고향으로 떠났을 때 구단에서 연락이 와서 구단 기록원이 된 거잖아요. 다시 마음이 가게끔 한 기록원이라는 일에는 어떤 묘미가 있었나요?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살아야 했는데. 2, 3년 동안 다른 일을 할 때 제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어요. 물론 와이프를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요. 이건 누구나 똑같을 거예요. 어떤 일을 하는데 정말 힘들고 돈도 못 벌지만, 마음만은 행복한 일이 있어요. 사업할 땐 돈도 잘 벌고 가족과 함께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어요. 사실 그때 기록원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 것도 온전히 스스로 결정한 게 아니었거든요. 여러 사정이 겹쳐서… 미련이에요. 미련이 남았던 거죠. 와이프한테도 그렇게 설득했어요. “나 지금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잠깐 가서 일 년이라도 해 보고 그만두면 다시는 미련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허락받은 거거든요. (근데 벌써 11년째네요.) 하하하.
구단에 와서 기록했던 경기를 전부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언제였나요?
올 시즌 개막전이요. 윌머 폰트 선수가 9이닝 퍼펙트를 했으니까요. 제가 공식 기록원을 했던 시기부터 해서 지금까지 총 만 경기는 봤을 것 같거든요. 1경기에 3시간씩 잡아서 3만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그동안 한 번도 퍼펙트를 본 적이 없었어요. 이걸 우리 팀 선수가 해내다니 대단한 일이었죠. 퍼펙트를 기록하면 기록지가 상당히 깨끗하거든요. ‘드디어 이렇게 깨끗한 기록지를 구경해보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고요. 그 뒤로 팀이 10연승을 하면서 올 시즌이 정말 잘 풀린 것도 있어요.
지금의 일을 하며 가장 기쁘거나 보람찬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아마 저희 팬들이 알아주실 거 같은데요. 우리 구단은 11년 동안 연봉 쪽에서 잡음이 없었어요. 선수들도 항상 이해를 잘해주고요. ‘연봉 협상을 못 끝내서 나중으로 넘어간다’ 이런 경우가 종종 나오는데 저희는 그런 적이 없었어요. 늘 힘들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다행히 별일 없이 깔끔하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분은 좋죠.
구단 기록원이나 운영팀 업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이거… 결혼하시고 들어오셔야 하는데. 연애하실 때 들어오면 무조건 헤어지는데. (웃음)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이건 감안하셔야 할 거예요. 긴 이동 거리도 있고, 다 같이 다녀야 하고, 버스도 밤늦게 타고 다니고요. 본인이 야구에 가지고 있는 실제 열정이 속으로 생각한 거의 2배 이상은 돼야 버틸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아시겠지만 저희는 남들 쉬는 날 무조건 경기를 하고요. 주변 사람들 결혼식도 못 가요. 그런 걸 감수해서 본인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일까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면 좋겠네요. (굉장히 현실적이네요.) 가족들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정말로요.
인터뷰를 보게 될 야구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공을 쓰기 시작하면서 팬분들이 부탁을 자주 하세요. 특히 야구를 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이 아이들 기념구를 써 달라고 하시거든요. 제가 바빠서 못 써드릴 때도 있지만 최대한 많이 써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도 그렇게 적어두기도 했고요. 또, 앞서도 얘기했지만 제가 선수와 팬의 중간 다리 역할이 된다는 표현에 감동했어요. 앞으로도 이런 역할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고요. 언제든지 연락해 주시면 SSG든 타 팀이든 상관없이 언제든지 적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올 한 해는 정말 빨리 지나갔다고 해야 할까요. 기쁘고 보람찬 한 해였습니다. 팀 성적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역시 야구는 팬들이 있어야 해요. 팬분들도 함께 좋아해 주시고, 선수들도 그걸 아는 만큼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거고요. 항상 너무 감사드립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 더그아웃 매거진 139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9호 (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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