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수첩] 수입차 1위 넘보는 한국지엠, '정통 아메리칸 스타일'은 통할까?

한국지엠은 작년 26만 4000대를 팔았다. 르노코리아(16만 9000대), 쌍용차(11만 3000대)를 많게는 10만 대가량 큰 격차로 앞선다. 세계 자동차 산업이 최근 몇 년 쉼없이 겪은 고충, 지엠 글로벌 사업의 권역별 성과에 비하면 한국지엠 실적은 낮게 평가할 것이 아니다.

국내 시장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지엠은 작년 3만 7000대를 팔았다. 쌍용차, 르노코리아에 이어 꼴찌다. 국내 생산차와 수입한 차를 섞어 파는 한국지엠 내수 비중은 마이너 3사 가운데 가장 낮은 14%다. 같은 방식의 르노코리아는 31%, 사정이 다른 쌍용차는 생산차의 60%를 국내에서 팔았다. 국내 완성차 3위권 기업인데도 한국지엠을 낮게 평가하는 건 이렇게 내수 비중이 낮은 탓이다.

한국지엠이 지난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제시한 목표를 의례적 허세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로베르토 렘펠 한국지엠 사장은 이날 "부평, 창원, 보령 공장 생산능력을 연간 50만 대 수준으로 극대화하겠다."라고 말했다. 내수 목표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미국산 완성차의 국내 사업 확장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렘펠 사장은 "북미는 픽업트럭, SUV가 강세를 보인다. 지엠은 미국 시장에서 매우 강세를 보인다. 굉장히 훌륭한 SUV와 트럭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런 동일한 점이 한국에도 전이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했다. 50만 대 생산을 목표로 공장 가동률을 높여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동시에 수입차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양동(Two track) 전략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전략에서 주목할 것은 수입차 시장이다. 한국지엠은 쉐보레와 캐딜락 브랜드에 이어 연내 GMC 브랜드의 국내 사업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GMC는 픽업트럭, SUV 전문 브랜드다. 쉐보레가 완성차로 수입해 판매하는 모델도 볼트 EV와 볼트 EUV를 제외하면 대표적 다목적 차량인 픽업트럭과 SUV다.

한국지엠이 노리고 있는 다목적 차량 시장이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은 전략이다. 지난해 전체 승용차 판매량은 116만 대로 이 가운데 다목적형은 70만 4000대를 기록했다. 국내 승용차의 연간 수요에서 다목적 차량이 차지한 비중은 2025년 38%에서 2019년 처음 50%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60%를 넘어섰다.

트럭과 버스 등을 함께 계산하면 작년에 팔린 승용차 10대 가운데 7대가 SUV, CUV, 픽업트럭 등 다목적 차량이었다. 다목적형 차량이 대형화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지엠에는 유리한 상황이 되고 있다. 지난해 팔린 다목적형 차량 가운데 중대형 이상 SUV와 픽업트럭, CDV는 32만 대로 전체 판매량의 절반에 육박했다.

쉐보레 수입 모델, 캐딜락 그리고 GMC는 중대형 SUV와 픽업트럭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한국지엠과 수입차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수입 브랜드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이기도 하다. 한국지엠이 대형 SUV와 픽업트럭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도 높다. 50만 대 생산보다 수입차 상위권 도약을 더 현실적으로 보는 이유다.

한국지엠은 지난 2019년 완성차를 들여와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했다. 첫 해 3270대, 2020년 1만 2000대로 급성장했지만 코로나 이슈로 2021년 8900대, 지난해 9000대에 그쳤고 한국수입차협회가 분류하는 28개 업체 가운데 7위에 머물러 있어 아직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한국지엠은 이날 제시한 목표에 크게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트레일블레이저와 글로벌 신차로 생산 목표를 달성하고 쉐보레 트랙스, 캐딜락 리릭, GMC 시에라 등 멀티 브랜드의 신차와 전기차 볼트 시리즈로 내수 시장을 공략하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시장 기대도 크다. 일본과 독일산이 시장을 지배해 오면서 획일적으로 고착화한 수입차 시장을 정통 아메리칸 스타일로 다변화하면 우리나라의 도로 풍경과 자동차 문화의 스펙트럼도 그만큼 화려하고 다양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