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콤비의 V10’ 김원호–서승재, 일본 마스터스 우승으로 단일 시즌 10번째 정상

배드민턴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 김원호–서승재 조가 일본 구마모토에서 또 한 번 역사를 새로 썼다. 2025 BWF 월드투어 슈퍼 500 일본 마스터스 남자복식 결승에서 일본의 미도리카와 히로키–야마시타 교헤이 조를 2-1(20-22, 21-11, 21-16)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올 시즌 열 번째 정상에 올랐다. 이미 ‘황금 콤비’라는 별칭이 익숙한 두 사람에게 이번 우승은 단순한 또 하나의 타이틀이 아니라, 단일 시즌 역사를 뒤흔드는 상징적인 이정표다.

1게임은 홈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일본 조의 기세가 더 강했다. 김원호–서승재 조는 먼저 11점을 선점하며 흐름을 가져오는 듯했지만, 중반 이후 두 차례 4연속 실점을 내주며 16-20까지 몰렸다. 특유의 끈질김으로 20-20 듀스까지 따라붙었지만, 마지막 두 랠리에서 내리 실점을 허용하며 20-22로 첫 게임을 내줬다. 32강부터 준결승까지 ‘무실 게임’으로 결승에 올라온 흐름만 보면 다소 예상 밖의 출발이었지만, 이들의 진짜 강점은 여기서부터 드러났다.

2게임부터는 완전히 다른 경기였다. 선취점을 따낸 뒤 곧바로 5점을 연속 득점하면서 초반에 분위기를 가져왔고, 이후 날카로운 드롭샷과 강력한 스매시를 섞어 쓰며 점수 차를 크게 벌렸다. 경기 운영에서도 한 수 위였다. 상대의 수비 위치를 끝까지 흔드는 코스 공략, 네트 앞과 코트 후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배치 플레이가 살아나며 21-11, 10점 차 완승으로 손쉽게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승부처는 3게임이었다. 김원호–서승재 조는 8-6 상황에서 긴 랠리를 연달아 가져오며 6연속 득점에 성공, 단숨에 더블 스코어 가까이 벌려 버렸다. 김원호가 미끄러지며 몸을 던져 올린 셔틀콕이 대각선 끝라인에 꽂히고, 이어 서승재의 연속 드롭샷이 성공할 때마다 일본 관중석의 탄식과 한국 벤치의 환호가 교차했다. 21-16, 마지막 포인트가 결정되는 순간 두 선수는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시즌 10번째 금메달을 확인했다.

이번 일본 마스터스 우승으로 김원호–서승재는 2025 시즌 국제대회 성적을 금메달 10개, 준우승 2회, 동메달 1개라는 놀라운 수치로 채웠다. 출전한 16개 대회 중 13개에서 메달을 따냈고, 그중 10번을 정상으로 마무리했다.

우승 리스트만 봐도 무게감이 다르다. 시즌 개막과 함께 말레이시아 오픈(슈퍼 1000)을 시작으로 독일 오픈(슈퍼 300), 전영 오픈(슈퍼 1000), 인도네시아 오픈(슈퍼 1000)을 연달아 제패했다. 여름에는 일본 오픈과 세계선수권, 중국 마스터스(이상 슈퍼 750)에서 우승했고, 국내 팬들 앞에서는 코리아 오픈(슈퍼 500) 정상에 올랐다. 여기에 프랑스 오픈(슈퍼 750)과 이번 일본 마스터스까지 더해지며 시즌 V10을 완성했다.

BWF가 현재의 월드투어 체제를 정비한 2018년 이후, 단일 시즌 10승 고지는 매우 특별한 기록이다. 복식 선수 기준으로는 2022년 혼합복식의 정쓰웨이–황야총 조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남자복식으로 좁혀 보면 사실상 사상 첫 사례다. 단·복식을 통틀어도 2019년 남자단식의 모모타 겐토가 세운 11승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단순히 ‘잘하는 팀’의 범주를 뛰어넘어, 한 시즌을 통째로 지배한 ‘얼굴’이 된 셈이다.

두 선수의 스타일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대비가 오히려 완벽한 시너지를 만든다. 서승재는 후위에서 상대를 몰아붙이는 파워형 공격수다. 왼손잡이 특유의 각도, 높은 타점에서 꽂히는 스매시, 스매시와 하프 스매시, 커트와 드롭을 자유롭게 섞어 쓰는 패턴 플레이 덕분에 어느 랠리든 ‘마무리 옵션’을 쥐고 있다. 순간 스피드와 코트 커버 능력도 뛰어나, 수세 상황에서도 한번에 흐름을 뒤집는 역습이 가능하다.

반대로 김원호는 앞선에서 경기를 설계하는 ‘전위의 장인’에 가깝다. 네트 위에서 버티는 감각, 짧은 드라이브 랠리에서의 손목 스킬, 상대 공격을 한 번 더 끌어내서 역으로 찌르는 컨트롤이 탁월하다. 후위에서도 안정적인 수비와 연결로 서승재가 다시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준다.

이번 일본 마스터스 결승에서도 이 장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1게임을 내주고 시작한 2·3게임에서 김원호는 네트 앞에서 적극적으로 랠리의 리듬을 바꾸며 일본 조의 스매시 루트를 차단했고, 그 순간마다 서승재가 후위에서 강하게 마무리했다. 특히 3게임 중반, 길게 이어지던 랠리가 김원호의 차분한 리시브와 서승재의 폭발적인 스매시로 끝날 때마다 일본 조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졌다. 이 조합이 ‘세계 1위’라는 명찰에 어울리는 이유다.

일본 구마모토에서의 우승은 시즌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프롤로그’이기도 하다. 다음 달 17일부터 21일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HSBC BWF 월드투어 파이널스가 바로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월드투어 파이널스는 한 해 동안 가장 높은 포인트를 쌓은 8팀만 초청받는 ‘왕중왕전’ 성격의 대회다. 한 시즌을 지배한 선수들만 모여 다시 한 번 진짜 1위를 가리는 무대인 만큼, 타이틀의 상징성과 무게는 일반 슈퍼 1000 대회 이상이라는 평가도 많다.

이미 슈퍼 1000·750·500·300, 세계선수권까지 두루 석권한 김원호–서승재에게 남은 마지막 퍼즐은 ‘파이널스 우승’이다. 일본 마스터스에서 10번째 우승을 채운 지금, 항저우에서는 ‘최강의 시즌을 완성하는 한 장의 트로피’에 도전하게 된다. 시즌 막판 체력과 컨디션 관리, 상대들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자신들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김원호–서승재의 시즌은 한 팀의 성적을 넘어, 한국 배드민턴 전체의 위상을 상징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 두 선수는 이미 2016년 이용대–유연성 조 이후 9년 만에 남자복식 세계랭킹 1위에 올랐고, 그 자리에서 오히려 더 강해졌다.

한때 남자복식은 유럽과 동남아 강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지만, 2025년 현재 남자복식의 기준점은 분명히 ‘김원호–서승재’다. 전영 오픈, 인도네시아 오픈, 일본 오픈, 프랑스 오픈 같은 전통의 강한 무대에서 잇달아 우승컵을 들어 올린 기록은, 단순한 ‘일시적 상승세’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이들의 여정이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파이널스, 그리고 내년 시즌까지 이어질 또 다른 도전들이 남아 있다. 일본 구마모토에서 완성한 시즌 V10은, 어쩌면 훗날 “그때부터 진짜 전성기가 시작됐다”라고 회자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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