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처분 기다리던 피해자 전학·극단 선택… 회복 골든타임 놓쳐
징계 확정 전까진 가해자 지도 어려워
이미 학급 바뀌거나 상급학교 진학 땐
형식적인 징계로 전락… 실효성 잃어
제대로 피해 회복 안돼 무력감만 커져
상당수 피해자 분리 안된 채 학교생활
징계 미뤄지는 사이 2차 가해도 빈발
불복절차 기간 피해자 권리 보호 시급
분리교육 가능한 기반부터 마련돼야
‘출석정지 5일’. 학폭 신고 5주 뒤인 2021년 10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징계가 나왔다. B군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A군이 5일간 학교를 비운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A군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이었다. B군 측은 재심을 청구했고, 이듬해인 2022년 2월 A군에게 전학 처분이 내려졌다. B군은 또 버텨야 했다. A군이 전학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학교는 매일 가야 했고 매일 A군을 봐야 했다. B군은 같은 해 5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를 떠났다. 법원이 지난해 8월 A군의 소송을 기각했지만, B군은 이미 전학 간 뒤였다.
19일 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에 따르면 B군이 학폭 신고를 결심하기까지는 5개월, 학폭위 처분이 나오기까지 5주, 재심 결과가 나오기까지 4개월, 그리고 학폭위 처분이 이행되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에 가해 학생을 선도하고 피해 학생을 회복시킬 ‘골든타임’을 놓친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학폭 사건을 맡아온 노윤호 변호사는 “징계를 받는 가해 학생은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잘못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걸 느껴야 하는데, 너무 시간이 지나버리면 징계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징계가 미뤄지는 사이에 가해 학생이 2차 가해나 (다른 학생에게) 추가 가해를 저지르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학폭 행정소송의 지난한 과정을 견디는 사이 피해 학생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학폭 피해자를 대리해온 박상수 변호사는 “피해 학생은 학폭위 처분을 기다리다가 전학을 가거나, 자퇴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셋 중 한 가지를 택한다”고 말했다. 끝내 가해자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피해 학생이 폭력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을 갖게 되기도 한다. 박 변호사는 “피해 학생이 ‘다음에는 학폭 가해자로 올 거예요’라고 얘기한 경우도 있었다”며 “법의 도구 아래에서 무기력해져 ‘어차피 아무것도 없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심각한 문제”라고 씁쓸해했다.
박 변호사는 “가해자가 제기한 행정소송이나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에서 피해자도 목소리 낼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 재판부가 피해자 입장도 고려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가해자와 분리를 원하는 피해자가 별도의 공간에서 분리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물적·인적 기반을 마련하고, 피해자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도 했다.
노 변호사는 별도의 학습공간에는 동의했지만, 피해 학생이 아닌 가해 학생이 분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폭위가 1심 재판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학급교체나 전학 같은 가·피해자 분리가 필요해 징계가 내려진 상황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라면 가해 학생이 그 정도는 감수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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