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화 전 머니투데이 기자]
전봉준 투쟁단, 8년만에 서울 입성
시민과 연대, 130년 만에 '한' 풀다
수만명 시민과 농민들 함께 어울어져'
이 땅의 지킴이'를 시민이 지키려 나서
농민과 시민의 연대, 이 시대 희망 제시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엄마, 시위 또 나가?"
"응. 나가야지. 농민들이 소중한 트랙터를 몰고 저 멀리에서 며칠 동안 추위에 떨며 왔을 텐데, 어제 밤새도록 차벽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길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다잖아. 시민들도 농민들 지켜준다고 밤새 떨면서 같이 자리를 지켰다고 하더라. 다들 동상 안걸릴까 걱정이야. 다음 타자들이 나서 바통을 이어받아야 밤샌 사람들이 들어가서 좀 쉬겠지.“
"왜 엄마가 나가야 해? 그게 왜 엄마여야 하냐고?"
"그건... 엄마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나서야 경찰들이 강력 진압을 안하니까. 농민들만 두면 진압을 심하게 하거든..."
지난 일요일(12월22일) 오후. 자신도 불안함을 느꼈는지 둘째 아이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집회참여를 만류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전날부터 내내 휴대폰의 유튜브를 통해 전국농민회총연맹(약칭 전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행진단들이 4박5일에 걸쳐서 서울로 올라왔으나,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막혀 더 이상 행진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계속 마음이 쓰이던 차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같이 응원하고 지지해주면서 상황을 바꾸어보려고 애쓰고 있다는데, 여의치 않아 농민들과 함께 날밤을 새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 속에서 농민과 시민들은 얼마나 추위에 떨까 하는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계속 떠나질 않았다.

농민들과 함께 추위에 떨었지만
<전봉준 투쟁단>은 지난 16일 경남 진주와 전남 무안에서 각각 동군, 서군 출정식을 열고 트랙터 30여대와 화물차 50여대를 끌고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대통령 관저로 가는 길이었는데,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차벽에 막힌 것이다. 일부 농민과 시민들이 추운 날씨 속에서 버티다 저체온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다는 안타까운 소식마저 전해지자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우리의 땅을 지키는 농민에게 평소 빚진 마음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서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다른 일로 지방에 내려가 있었던 터라 서울로 복귀하는 것이 늦기도 했고 벌써 일요일 오후가 되어 있었다. 먼 길 다녀온 여독이 풀리지 않았고, 기온은 더욱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음을 다지며 함께할 각오를 하고 남태령으로 출발했다.
<전봉준 투쟁단> 일행이 남태령 고개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집회장소가 낯설었으나 일단 남태령역으로 향했다. 경찰과 <전봉준 투쟁단>과의 대치가 어디서 이뤄지고 있을까 막연했지만 근처에 오니 그런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다.
4호선 남태령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는 20대 젊은 친구들이 많았는데, 살짝 보이는 이들의 휴대폰마다 ‘트랙터 시위 현장’이 동영상으로 나오고 있었다. 같은 목적지를 가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집회하러 가는 사람들이구나' 바로 알아차렸다. 지하철에서부터 집회 가는 동지들을 만나게 되니 벌써부터 가슴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남태령에 울려퍼진 나눔, 배려, 연대의 목소리
남태령역에 내리자마자 집회현장이 어딘지 따로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수만명이 이르는 엄청난 인파들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곧 합류했다. 인근에 식당이나 편의시설이 없는 탓인지 퀵배달 오토바이들이 지나가면서 피자, 핫도그 등을 배달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선결제 응원이 이어지면서, 어젯밤 밤샘 집회를 하거나 새벽부터 현장을 찾은 시민들을 위해 먹거리 나눔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에게도 떡과 빵이 건네졌고 누군가 핫팩도 주었다. 여기저기 나눔의 손길 탓인지 더욱 가슴이 따뜻해져서 추운 줄도 모른 채 함께 구호를 힘차게 외치고 있었다.
현장을 찾은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경찰서에 가서 "차벽을 열어달라"고 항의하며 협상한 것이 잘되었는지 행진이 곧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와 모두가 환호했다. 그러나 행진이 더디게 진행되어 30분 넘도록 기다려야 했는데,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행진이 시작된다"는 스피커 소리가 들려왔다. 수만 명의 집회 인파 속에 20대 여성들이 주로 제일 많았는데, 밝고 젊은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행진을 시작하자 인파에 가려 보이지 않던 트랙트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0여 대의 트랙터와 50여 대의 트럭들이 도로 옆에 일열로 서있었고, 농민들도 앞장서기 시작했다.

연대의 행진, '윤석열 퇴진' 한 목소리
가슴이 울컥해 눈물을 훔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이 광경을 보면서 눈물을 훔쳤고, 트랙터 곁에 서있던 농민들도 울고 있었다.
이 엄동설한 추위에 가장 아끼는 트랙터를 끌고 올라와 차벽에서 28시간을 떨어야 했던 농민들의 심정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져왔다. 그 농민들이 누구인가? 우리의 소중한 밥상을 책임지는 이 땅의 지킴이들이요, 먹거리 안보의 주역들이 아닌가? 첨단기술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먹을 것 없이 우리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항상 뒷전으로 취급받았다. 농민들의 헌신과 고생이 한꺼번에 감정이입되면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행진하는 중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8년전 '백남기 농민운동 시민지킴이'로 활동했을 때 인연을 맺었던 충북 한 농민회장님의 모습이었다. 8년전 모습과 겹쳐지면서 반가움에 눈물이 더 났는데 그 분도 울고 있었다. 처음엔 악수만 하려 했는데 너무 감격스러워 자연스럽게 얼싸안고 같이 울었다.
그 사이 세상을 떠났던 농민 두 명의 얼굴과 백남기 선생님의 모습도 떠올랐다. 한강 작가의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기도 한다'는 말이 맞구나 싶었다. 그들이 지금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함께 우리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뭉클해졌다.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8년전 우리는 농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리라 기대했는데, 아직도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였다. 고맙고 미안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연대할 수 있음이 기뻤다. 복합적인 감정으로 행진하는 내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 대열이 행진을 시작하는 것을 본 후 벅찬 가슴을 안고 시민들과 함께 사당역에서 용산 한강진역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이탈 없이 그대로 줄을 맞춰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 안에는 남태령에서 집회하던 시민들로 가득찼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도 계속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는데, 전동차 안에는 소리가 울려서 시끄러울 수 있다는 지적이 있자 이내 조용해졌다. 민주시민의 품격인 듯, 우리들은 그렇게 질서정연하게, 혹시나 밀려서 다치지는 않을 까 서로를 배려하면서 그렇게 한강진역까지 이동했다.
남태령을 넘어 서울로 들어온 '동학의 혼'
한강진역에 도착해보니 이미 마중 나온 시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환하게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농민들의 트랙터가 용산으로 오기만을 기다렸다.
20~30분이 흘렀을까? 드디어 남태령에서 건너온 트랙터 10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세상이 떠나갈 듯 일제히 환호성이 울렸다. 대통령 사저 앞까지 행진하는 트랙터 10대에는 <전봉준 투쟁단>이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었는데, 마치 동학농민혁명의 우금치 전투 130년의 한을 푸는 듯 했다.
옛날 동학농민군은 우금치를 넘지 못하고 패배했지만, '농민-시민 연합군'은 우금치에서 남태령을 넘어 용산까지 입성했다. 동학농민의 한을 푼 것 같아 가슴이 한없이 뭉클해졌다. 8년전 농민들이 박근혜 탄핵을 위해 트랙터 시위를 했을 때에는 서울로 입성하는 것에 실패했었다. 이번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강추위 속에서도 벌벌 떨면서 농민들을 지켜준 덕에 8년 전에 뚫지 못했던 벽을 처음으로 넘어선 것이다. 이것이 K-민주시민들의 파워가 아니겠는가?
몇 시간의 공식적인 집회가 끝나고 난 뒤에도 시민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다들 가슴에 감격이 넘치고 감동이 흘러서 계속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환호하고 있었다. 남태령 전투를 농민과 젊은 시민들의 응원봉과 연대의 힘으로 이긴 것이다.
"130년 전 동학농민군들의 한이 좀 풀리셨을까?"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도 울고, 시민들도 함께 울고 웃고,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다.

평범한 시민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
나처럼 평범한 시민들이 주말에 가족과 같이 쉬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나가게 되는 그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분노만은 아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지켜주고 연대해주고 싶은 마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야 한다는 마음, 계엄령 혹은 지난 5.18광주와 같은 비극을 다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감정이었다.
세상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움직여야 바뀐다고 믿는다.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경찰들이 볼 때에도 딱히 강력하게 진압할 명분이 없다. 우리는 가진 거라곤 뜨거운 가슴과 응원봉 뿐이니 말이다.
탄핵안 가결 이후 정치권에선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이 계속 거부권을 남발하고, 윤석열을 향한 경찰과 검찰 수사도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조국 사태 때 그 서릿발처럼 압수수색하고 잡아들이던 혹독한 냉기는 어디 갔단 말인가? 그냥 쇼만 하는 것처럼 보여서 영 미덥지가 않다.
이런 시기에 트랙터를 가지고 5박6일간 서울을 행진하던 농민들의 결기가 우리들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되었다. 농민을 지켜주고 연대하던 시민들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서 나는 다시금 '희망'이라는 단어를 써본다.
※ 정영화는 40대 중반으로 곧 50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이다. 30대 초반까지 경제지(머니투데이) 기자로 활동했었다. 그러다 작가, 명상수행 등을 거쳐 현재 동국대 미래융합원에서 명상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