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층짜리 아파트의 그늘] (상) 원도심 재개발…그래도 떠난다

미추홀구·부평구 등 대형 단지 즐비
인구 증가·지역 발전 상관관계 불명
집값 치솟아 원주민 입주도 힘들어
상인 “젊은 사람 늘었단 느낌 없어”

수십년 세월로 낡아진 고만고만한 건물들 사이에 번쩍 솟은 번듯한 시멘트 덩이.요즘 인천 원도심에서 재개발을 거쳐 세워진 아파트들은 대개 이런 모습이다.

부자와 모녀의 정이 쌓인 동네 목욕탕, 꼬마들이 과자 몇 개 사면 덤으로 사탕 얹어주던 동네 슈퍼, 동네 백반집 일꾼들의 흥청거림과 상관없이 건설사들은 일대를 싹 다 밀고 자기들 취향대로 아파트 뚝딱 지어 판다.

길 건너 빌라와 4~5배 차이 나는 몸값에도 '신축' 프리미엄 보고 몰려든 이주민들은 빛바랜 주변 동네와 어울리지 못해 단지는 섬처럼 홀로 선다.

최근 부동산 급등기를 거치며 빠르게 진행되는 원도심 재개발·재건축이 어느 정도 세력을 형성했다. '낡아진 건물들 사이에 번쩍 솟은 번듯한 시멘트 덩이'가 인천의 바람직한 내일인지 살펴본다.

▲ 인천대로 한 육교에서 바라본 인천 도심 모습. 8차선 도로를 경계로 주거 환경이 크게 차이 나는 모습이다.

'어머니는 뒷집 명희 어머니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에 파셨어요?” “십칠만원 받았어요.” “영희네도 어차피 아파트로 못 갈 거 아녜요?” “무슨 돈이 있다구!” “분양아파트는 오십팔만원이구 임대아파트는 삼십만원이래요. 거기다 어느 쪽으로 가든 매달 만오천원씩 내야 된대요.”'

1970년대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쟁이 가족 이야기를 담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의 난쟁이들 처지는 현시대에도 일정부분 적용이 가능하다.

5년 전쯤. 정명희(가명)씨는 입주권을 팔아 8000만원 정도를 손에 쥐었다. 살던 부평구 빌라를 부수고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거기 들어가려면 4억원 이상이 필요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 몇억씩 대출받으면 나중에 갚을 엄두가 안 났고, 매달 수십만원 관리비도 살벌한 문제였다. 때마침 남편은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울적해하던 시기다.

“보상금 받아서 우리는 옆 동네 빌라로 갔지. 8000만원, 이런저런 빚들 해결하고 자식들한테 좀 나눠줬지. 그러고 나니 땡이대.”

미추홀구 주안동 일대는 인천 원도심에서도 재개발·재건축이 활발한 동네로 꼽힌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 자료상 2020년부터 지금까지 주안동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만 5개 단지, 3851세대에 이를 정도다.

경인로를 따라 준공된 아파트들 물결은 꼭 '병풍' 세워놓은 것 같다. 1990년대 후반 조성된 도심 택지들이 성냥갑 같다면 2020년대 초반 재개발 아파트들은 높고, 빼곡하게 짓는 바람에 건물 사이 빈틈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주안동 한 전통시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김석우씨는 신축 아파트들로 이득 보는 건 별로 없다고 알려줬다.

“글쎄 잘 모르겠다. 시장이 가진 특수성 때문에 그런가 젊은 사람들이 딱히 더 늘었다는 느낌은 못 받는다. 매출도 비슷비슷하다. 워낙 불경기라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아파트 입구마다 새벽 배송 행렬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구체화하기 어려운 '동네 번영과 재개발의 상관관계' 이슈 전에, 재개발이 원도심 인구 증가에 도움이 됐는지 따져보기 위해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 자료를 분석했다. 부동산테크 자료상 2020년부터 현재까지 인천에서 준공된 아파트는 총 68개 단지, 5만4121세대다. 1동, 2동 구분 없이 순수 '00동'으로만 따지면 31개 동에서 신축들이 들어섰는데 중구, 서구, 연수구를 뺀 원도심은 19개 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결론을 말하면 여기서 4개 동을 뺀 15개 동에선 인구 하락이 확인됐다. “사실 300만 도시 인천 실체는 신도시 유입에 있지, 원도심 재개발은 아직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해석해도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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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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