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MBC 제2회 개그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던 이옥주는 1990년대 내내 연예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여러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며 승승장구했지만, 바쁜 스케줄 속에서 어느 순간 지쳐갔다.
하루 다섯 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소화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

그녀는 방송 외에도 ‘영어회화’가 특기일 정도로 영어를 좋아했다.
‘영어 공부를 하려면 외국인을 만나서 배우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들어 남편 토머스 거슬러 씨를 소개받았다.

영어를 가르쳐주던 거슬러씨와 가까워졌고, 서로를 알아가며 연인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국적과 문화의 차이 탓에 양가의 반대가 심했다.

특히 유도선수 출신이었던 이옥주의 아버지는 쉽사리 승낙하지 않았다.
다행히 직접 만나본 뒤 남편의 성실함과 가정적인 성격에 결국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1998년 6월, 최불암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이옥주는 1999년 첫째 아들 대니를, 2000년 둘째 아들 타미를 낳았다.
아이들의 교육과 혼혈 자녀에 대한 편견을 걱정하며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로 이주를 결정했다.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살아가는 그곳에서 아이들은 조금 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옥주 부부의 가족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편 토머스는 결혼 전부터 "언젠가 입양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달은 이옥주는 결국 입양을 결심했다.
그리고 2년간 엄격한 심사를 거쳐 2006년, 생후 9개월 된 한국 아기 '재키'를 가슴으로 품었다.

처음 입양한 딸 재키를 만났던 날, 이옥주는 출산 때처럼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후 3일째부터 위탁모의 품에서 자란 재키를 품에 안았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낯선 환경에 당황한 아기는 울음을 터뜨렸고, 이옥주는 그런 재키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가족이 된 셋째 딸 재키는 어느덧 훌쩍 자라 이제는 18살이 됐다. 최근에는 운전면허까지 따고 한창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으로 엄마와 티격태격 부딪히는 날도 많지만, 두 사람은 그럴 때마다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곤 한다.
입양이라는 특별한 인연이 오히려 모녀의 애틋함을 더 깊게 만들었다.

“입양은 어려운 선택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나는 과정이에요. 서로 배우고 채워주며 진짜 가족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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