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씨 직장인 심리학] “회사 사람들과 어디까지 가까워져야 하나?”…사무실에 부는 관계의 변화

2026. 5. 20.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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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복 트라이씨 심리경영연구소 공동대표
“일은 같이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친해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직장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회식은 선택적으로 참여하고, 사적인 대화는 최소화하며, 동료와의 관계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과거 조직에서 강조되던 끈끈한 관계와는 분명 다른 풍경이다.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 부족하다거나 동료애가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뀐 3가지 이유
과거에는 관계를 넓히고 깊게 만드는 것이 미덕이었다. 사람을 많이 알고, 친밀하게 지낼수록 조직 생활이 수월해진다고 믿었고, 실제 그렇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시간과 감정 소모가 하나의 비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런이유는 첫째, 관계의 지속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한 회사에 오래 다니고, 같은 사람들과 같은 팀에서 오래 근무하며, 인간관계도 장기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동료와 끈끈한 유대를 맺는 것이 승진이나 사내 정치력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투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공식이 깨졌다.조직개편이 잦아지고, 이직도 보편화됐다. 또 성과 중심의 문화가 강조되면서 특정 조직에서 끈끈한 인맥이 주는 장기적 보상이 불투명해졌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쓰는 것이오히려 손해보는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결과 깊고 오래가는 연결보다 너무 소모되지 않는 정도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둘째, 직장은 내 삶에서 일부일 뿐이다. 기성세대들에게 조직과 직장이 개인 정체성의 핵심이었다면, 지금의 직장은 자원을 획득하는 수단으로써 성격이 강해졌다.그러다 보니 인간관계 역시 회사 중심보다는 취미, 건강, 연애, 자기계발 등 삶의 다른 영역들 사이에균형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직장에서 지나치게 가까워지며감정을 소모하기 보다는 적당한 거리 안에서 기능적으로 협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셋째, 관계보다 내 정신건강이 더 중요해졌다. 예전에는 조직생활에서 불편함을 참고 버티는 것이 사회성이자 성숙함으로 여겨졌다. 상사나 동료의 무리한 요구나 불합리한 상황도 ‘원래 회사는 그런 곳’이라며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달라지고 있다. ‘가스라이팅’, ‘번아웃’, ‘정서적 착취’ 같은 개념에 익숙해지면서, 지금까지 참고 견뎌야 했던 감정 소모를 이제는 자신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납득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상황이나 불합리한 요구에 훨씬 민감하다. “내가 왜 참아야 하지?”, “내가 왜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야 하지?”라는 의문과 함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조건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필요하면 거리를 두고 선을 긋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피곤하다
그래서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친하다 vs 안 친하다’로 나누는 대신 ‘적당히 협력하되, 과도하게 얽히지 않는’ 방식을 선택한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깊고 친밀한 관계를 추구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조절하고 관리하려 하는 것이다.

문제는 관계의 거리를 설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너무 가까워지면 감정이 개입된다. 업무상 의견 차이가 개인적인 갈등으로 번지고,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면서 피로가 쌓인다. 반대로 너무 멀어지면 협업이 어려워진다.최소한의 대화만 오가는 관계에서는 신뢰가 쌓이기 어렵고, 중요한 순간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일이 틀어지기도 한다.

결국 핵심은 ‘적당한 거리’인데, 심리학자 입장에서 이 적당함의 기준을 제시하면

첫째, 나의 기준을 먼저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나는 어느 정도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어디까지 괜찮고, 어디서부터 피로해지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 기준이 없으면 상황에 따라 관계에 끌려다니게되는데, 결국 관계가 쌓일수록 에너지는 고갈된다.

둘째, 모든 사람과 친해질 필요는 없다. 특히 대부분의 직장 내 관계는 역할 중심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려면 자기 업무를 책임 있게 마무리하고,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며, 기본적인 약속이나 규칙을 지켜야 한다. 여기에 가벼운 일상 대화 정도가 더해지면 협업에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정말 높은 신뢰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관계의 질을 더 깊이 고려해야 한다.

셋째, 신뢰는 친밀감이 아니라 일관성에서 나온다. 물론 친밀감이 협업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필수 조건은 아니다.심리학에서는 신뢰가 형성되는 핵심 요인을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으로 본다.약속한 일을 지키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 때 신뢰가 쌓인다.

넷째, 관계에서의 선 긋기도 필요하다. 관계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경계를 설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부탁을 거절하거나 사적인 영역을 지키는 것이 관계를 해칠까 봐 부담이 되기는 한다.하지만 명확한 경계는 오히려 관계를 안정시킨다.기대와 역할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협업 방식
리더나 조직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를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어떤 조직에서는 달라진 방식을 관계 회피로 해석하고, 팀워크 강화 프로그램이나 유대감 형성을 위한 활동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대응이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분위기에 따라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친밀감을만들려고 하는 강제적인 시도가 젊은 직원들에게 또 다른 감정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째, 관계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수준의 친밀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를 내려놓아야 한다. 각자가 편안하게 느끼는 거리에서 협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업무 중심의 신뢰를 강화하는 것이다.개인적 친밀감이 부족하더라도 역할 수행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협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명확한 기준과 일관된 피드백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셋째, 필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협업을 하도록 보상이나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평소에는 적정 거리를 유지하더라도, 중요한 프로젝트나 위기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협력의 깊이가 높아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강제된 친밀감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와 공동의 성과에 대한 보상체계에서 비롯된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성전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법이며…거문고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서로 혼자이듯이…” 미국 작가인 칼릴지브란의말인데,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일터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 같다. 끈끈함과 지나친 결속을 강요하기 보다 서로의 독립된 경계를 인정해 줄 때, 역설적으로 건강한 관계와 공동의 목표를 향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트라이씨 심리경영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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