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AI 산업의 장기 승자 될 것”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 전 회장이다. 대만 타이난성 출신인 황 CEO는 9세 때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 간 후 오리건주립대와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AMD에서 설계담당자로 일했다. 그는 1993년 엔디비아를 창업했지만 설계한 반도체를 제조할 기업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엔비디아 반도체 독점 생산
이후 1995년 반도체업계 거물인 창 당시 TSMC 회장에게 "장래성을 보고 엔비디아 제품의 첫 칩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신생 스타트업의 32세 청년 사업가가 보내온 편지에 감명받은 창 회장은 직접 전화를 걸어 "우리도 장기적인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며 흔쾌히 요청을 수락했다. 황 CEO는 "TSMC가 없었다면 오늘의 엔비디아도 없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TSMC와 엔비디아의 협력관계도 끈끈하게 지속되고 있다.
TSMC가 글로벌 인공지능(AI) 열풍 덕분에 승승장구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반도체를 비롯해 애플, 퀄컴, 미디어텍의 고성능 칩을 일괄 수주하는 등 AI 열풍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TSMC는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반도체를 사실상 독점 생산한다. AI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고 엔비디아 주가가 상승할수록 TSMC 주가도 함께 올라가는 추세다.
무엇보다 TSMC 매출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TSMC의 올해 3분기(7~9월) 매출은 시장 예상을 뛰어넘어 7597억 대만달러(약 32조1700억 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한 액수로 분기 매출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이는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 평균치를 100억 대만달러(약 4200억 원) 이상 넘어선 기록이며, 2분기 매출(6735억 대만달러·약 28조5000억 원)과 비교해도 크게 증가한 수치다.
고공 행진하는 주가
TSMC는 앞으로도 AI 훈풍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중 무역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고 있지만 TSMC의 AI 반도체 매출은 여전히 높을 것"이라며 "미국 등 각국이 AI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AI 반도체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찰스 셤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는 물론 애플, 퀄컴, 미디어텍의 새로운 N3E(3㎚ 2세대 공정) 주문이 지속되는 등 AI 칩에 대한 강력한 수요 덕분에 TSMC 매출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매출 증가에 힘입어 TSMC 주가도 고공 행진하고 있다. TSMC 주가는 10월 17일 뉴욕증시에서 전 거래일보다 9.79% 오른 205.84달러(약 28만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가총액도 종가 기준 1조680억 달러(약 1464조4400억 원)로 집계됐다. TSMC의 시가총액은 7월 8일 장중 한때 1조 달러(약 1371조4000억 원)를 기록한 적은 있지만, 종가 기준으로 넘어선 적은 없다. 이로써 TSMC는 엔비디아에 이어 두 번째로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한 반도체 기업이 됐다. TSMC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은 3분기 순이익이 3253억 대만달러(13조8800억 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54% 급증한 것으로, 시장 예상치 3002억 대만달러(12조8000억 원)를 상회했다. 웨이저자 TSMC CEO는 "AI 관련 매출이 2024년에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우리는 AI 수요가 수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현재 시총 1조 달러 이상인 기업은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아마존,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 등 7곳이다. TSMC가 1조 달러 클럽에 합류하면 투자자의 관심이 더욱 커지고 기업에 안정성이 부여되면서 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TSMC 경영진은 향후 5년간 회사의 연평균 성장률이 15~20%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반도체 공급망에서도 TSMC의 성장세가 감지된다"면서 "TSMC가 AI 산업의 장기 승자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 역시 "TSMC의 2028년 전체 매출의 35%가 AI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TSMC의 목표주가를 1160대만달러(약 4만9000원)로 19% 상향했다. 브루스 루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에 보낸 메모에서 "AI에 대한 긍정적 정서가 커지는 가운데 TSMC는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며 "AI가 지속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TSMC가 주요 수혜자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미세 첨단 공장 계속 증설
그런가 하면 TSMC는 난쯔과학단지에 4공장(P4)과 5공장(P5) 증설 계획도 추진하고 있는데, P4와 P5 공장은 1.4㎚ 공정의 제품을 생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난쯔과학단지에는 TSMC의 최첨단 반도체 공장 5곳이 들어서게 된다. TSMC는 이외에도 북부 신주과학단지의 바오산 지역에 2㎚ 칩을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운데 최첨단 공정에 필요한 '하이 NA EUV' 노광 장비도 이달 말 도입한다. TSMC는 당초 예정했던 시기보다 1분기 이상 도입을 앞당기면서 초미세 공정을 놓고 주도권을 다투는 한국 삼성전자보다 한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TSMC가 내년에 첨단 패키징(CoWoS) 생산능력을 올해 대비 최대 3배 정도로 늘릴 것이라는 점이다. TSMC의 CoWoS는 엔비디아와 AMD 등이 AI 반도체를 제조할 때 개별 칩을 연결하기 위해 자체 개발한 패키징 기술이다. 이에 따라 TSMC의 내년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은 웨이퍼 기준 월 9만~10만 장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업계에서 예상했던 월 5만5000~6만 장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에 내년 연간 생산능력은 70만 장 이상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올해 TSMC의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은 연말 기준 월 3만~4만 장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TSMC는 첨단 패키징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대만 북부 먀오리 퉁뤄 지역과 남부 자이현 타이바오 지역에 2027년, 2028년 양산을 목표로 첨단 패키징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웨이저자 TSMC CEO는 "현재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이 고객 수요를 맞추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라 앞으로 공장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내년 상반기 4㎚ 칩을 생산할 예정인 TSMC의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1공장 수율이 지난달 말 70%를 넘어섰다. 이는 대만 남부 타이난에 있는 반도체 생산공장 팹18과 비슷한 수준이다. TSMC는 피닉스 1공장에 이어 2028년 나노시트 트랜지스터 구조의 2㎚ 공정 기술을 채택한 웨이퍼 생산 목적의 2공장과 2030년 2㎚ 이상의 최첨단 공정 제품 생산을 위한 3공장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TSMC는 AI 반도체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자 유럽에서도 공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TSMC의 질주가 순풍에 돛을 단 듯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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