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다…나를 믿고 거세하라” JMS 뺨때리는 ‘그놈들’ [사색(史色)]
※콘텐츠에 자극적인 사진과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19세 미만이거나, 심약하신 분들에겐 일독을 권하지 않습니다.
[사색-13]
“천국에 가고 싶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믿음을 증명하세요.”
“어떻게 하면 되죠?”
“‘성기’를 자르십시오. 그것은 죄악의 징표입니다.”
“...알겠습니다. 신의 나라로 갈 수 있다면.”
이곳은 1760년 러시아 서부의 오룔입니다. 평화롭던 마을에 홀연히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바가지 머리를 한 남자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이렇게 외쳤지요. “나를 따르라, 천국으로 들어갈지니.”
신자들의 세가 제법 불어났을 무렵. 그가 사람들에게 성경의 한 구절을 반복해 읽게 합니다. 마태복음 19장 12절입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스콥시를 주창한 남자는 18세기 러시아 서부 지역에 살았던 콘드라티 이바노비치 셀리바노프. 농민이었지만 종교에 관심이 많던 그는 성경을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경지까지 이르렀습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진 구절은 앞서 말한 마태복음의 19장 12절이었습니다. 짬이 날 때 마다 성경을 읽고 자신만의 ‘공상’을 펼쳤지요.
극단적인 성기 절제가 신도 확장에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남자의 경우는 고환만 제거하거나, 여성은 유두만 제거하는 방식도 허용합니다. 여전히 극단적인 교리였지만 셀리바노프의 언변에 신도들은 늘어가기만 했습니다.
삶이 고단한 농민과 가난한 도시민이 표적이었습니다. 수년 만에 5000명에 가까운 신도들이 모였지요. 사회적으로 묵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도 스콥시 종파의 사람들이 묘사돼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사법 당국이 나섰습니다. 1772년 셀리바노프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그는 도망쳤지요. 정신병원에도 가둬보지만 1802년 끝끝내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그 사이 신도들은 불어났지요. 추종자들은 셀리바노프가 예수처럼 수난을 받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재림”이자 러시아 황제인 ”차르“로 칭했습니다. JMS 정명석이 성범죄로 감옥에 갇힌 것을 예수의 수난으로 비유했다고 하지요. 사이비 교주들의 논리는 하나같이 닮았습니다.
스콥시는 계속해서 세를 불려 1900년대 초반 10만명까지 늘어났습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한 소련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스콥시는 마침내 쪼그라들었지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불행이라고 해야할까요. 이 종파는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고스란합니다. 성기절제를 욕망하는 심리를 가리키는 ‘스콥틱 증후군’이 이들 명칭에서 따왔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이 유럽 사회를 지배하는 시기에는 사이비 종교가 나타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교황-주교-신부로 이어지는 철저한 수직체계가 다른 교리를 주장할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성경 해석에 이견이 있을 경우 성직자들의 대회의 격인 ‘공의회’가 열렸습니다. 한번 공의회 판단이 나오면, 유럽 전역 성직자들은 이를 곧이 곧대로 따랐습니다.
정통 가톨릭과 해석을 달리하는 교단이 세를 넓혀가도 금세 정화가 됐었지요. 각국의 군주들이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중세의 ‘성왕’ 루이9세는 카다리파를 집단 학살하기도 했었지요.
개신교는 교황청이 독점하던 ‘성경의 해석’을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만인사제설’을 꺼내들었지요. 하느님 과 인간을 이어줄 중간 버팀목으로서의 성직자 개념을 버렸던 것입니다. 일종의 ‘종교적 민주주의’가 이뤄진 셈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 ‘선지자’라면서 개인 숭배를 내세우는 JMS같은 조직 역시 이같은 성경해석의 자유로부터 생겨납니다. 이들 또한 성경을 자신들만의 논리로 해석해 사람들의 마음(과 몸과 돈)을 빼앗았습니다.
스콥시 또한 러시아의 성군으로 통한 표트르 대제가 분파주의자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부여하면서 생겨났지요. 사이비종교가 ‘자유’에 기생해 암약한 지독한 아이러니였습니다.
짐 존스라는 1954년 ‘인민사원’(People’s temple)이라는 종교 집단을 창교했습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사회주의와 기독교를 교묘히 섞은 종교단체였지요.
조직이 커지자, 그 역시 변해갑니다. 신도의 소득과 재산을 모두 바치게끔 해 평등하게 나눠가지는 급진적인 교리를 내세운 것이었습니다. 흑인의 총기소지를 주장하는 흑표당과 협력하거나, 찬송가로 공산주의 노래인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지요. 미국 사회에서 인민사원을 향한 비판이 거세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미국 의회가 존스타운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하원 의원이었던 레오 라이언이 진상 조사를 위해 가이아나로 향했지요.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구출해달라“는 여러 신도를 목도합니다.
라이언 의원과 진상 조사단이 그곳을 떠나려 하자, 무차별 학살이 시작됩니다. 무장한 신도들이 조사단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습니다. 라이언 의원과 그의 보좌관, NBC 기자 돈 해리스 등 5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짐 존스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시신이 발견됐지요. 부검 결과 그 역시 이 음료를 먹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망자는 918명, 이 중 어린이가 276명이었습니다. 9.11테러 이전까지 최다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었지요. 광신의 끝은 죽음이었음을 증명한 셈이었습니다.
<네줄요약>
ㅇ과거 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사이비종교가 거의 없었다. 교황의 말씀을 무조건 따랐기 때문이다.
ㅇ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파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이단도 독버섯처럼 번졌다.
ㅇ18세기 러시아에서 유행한 기독교의 한 종파인 스콥시는 ‘성기를 절단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ㅇ이성과 끝임없는 ‘사색’만이 사이비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정X석 X새끼.
<참고문헌>
ㅇ나이토 히로후미, 기독교로 읽는 세계사-바티칸은 어떻게 역사에 군림했는가, 역사산책, 2021년
ㅇ니콜라스 V.랴자놉스키· 마크 D. 스타인버그, 러시아의 역사, 까치, 2011년
ㅇ로라 엔젤슈타인, 이단에서 해악까지-후기 짜르 러시아의 자기거세자들,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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